그는 새로운 눈으로 별을 바라보았다. 그는 별에서 영원성을 발견하고 우주의 광대함에서 하나님을 보았다.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자신은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한 지극히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었다. 알퐁스도데는 그의 작품 속에서 "만약 당신이 산속에서 밤을 지새워본 적이 있다면, 모두들 잠들어 있을 때 어떤 신비로운 세계가 고요함 속에서 가만히 눈뜨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별을 바라보는 이유는 무한한 우주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존재를 그 우주공간 안에서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으로 무심히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의 신비가 우리의 가슴속까지 스며들 뿐 아니라 열린 귀로 우주의 맥박과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린 왕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볼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계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다 무궁무진한 삶의 터전을 이룬다. 우리가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올바른 균형과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
인간은 두 단계에 걸쳐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먼저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드신 후에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왜 한 번에 만들지 않으시고 두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까? 인간이 다른 피조물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인가? 인간이 단순히 흙으로 만들어졌다면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기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와 영적인 기운이 몸을 가득 채우고 감쌀 때 인간은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난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하는 영적인 존재이다. 빵만으로 배부를 수 없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생기를 잃어버리면 우린 다시 흙으로 빚어진 비천한 존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영적인 존재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생기를 잃어버린 채 육적인 존재로 살 것인가? 이는 당신의 선택이다.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욕구와 갈망을 무시하고 먹고 살기에 급급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사는 자는 하늘을 보지 못하고 흙에서 태어나 땅만 보고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보라! 땅에 속한 자기 되지 말고 하늘에 속한 자가 되어 현실 너머에 있는 저 높은 세계를 바라보고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하라! 찬란하게 빛나는 너의 미래를 영혼에 새겨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를 언약의 증거로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수많은 별들을 약속의 증거로 주셨다. 별보다,별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마음에 별이 빛나는 사람, 영원을 사랑하는 사람, 창조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영원히 빛나는 존재이다.
돼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넘어져 거꾸로 뒤집어져서 하늘을 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늘을 올려 다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하늘을 보지 못하는 슬픈 돼지처럼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지 못하고 살던 그에게 그 날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황홀한 밤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별들을 하나씩 가슴에 새겼다. 초 대형 스크린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눈부시게 화려한 영상이 그의 가슴에 새겨져 깊은 감동을 주었다. "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어. 너는 별같이 빛나는 사람이야!"라고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브라함은 별들을 바라보며 깊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걱정과 근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그는 인간을 억누르는 장벽의 울타리를 부수고 나와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는 자기 몸에서 나는 아들을 기대하는 대신 충성된 종 엘리에셀을 후손으로 생각했다. 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물려 받았지만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기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셋방살이나 면하고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을 했다. 하나님은 그가 한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약속하셨지만 그에게 그런 큰 꿈은 없었다. 작은 공간에 머물러 있던 그가 바라본 밤하늘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왕 꿈을 꾸려면 큰 꿈을 꾸어야 하지 않는가? 호랑이를 그리려고 하다 잘 못되면 고양이라도 그리지만 처음부터 고양이를 그리려고 하다 잘못되면 아무것도 못 그린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갖지 못해 속을 끓이며 사는 그에게 하나님은 밤하늘의 별처럼 그의 자손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세상을 대표하는 아버지이며 세상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주셨다. 이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고개 숙이지 말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하늘을 보며 걷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