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여인과 결혼에 젊은 전사들 분개
1799년 러시아 황제 파벨 1세는 알래스카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관리하기위해 네델란드의 동인도 회사를 모방한 러시아-아메리카 (RAC: Russia America Co.)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에 모피무역 독점권을 주었다. 모피무역으로 거부가 된 알렉산드로 바라노프를 책임자로 임명하자 그는 자연 알래스카의 초대총독이 되었다. 바라노프는 이후 알래스카 남동쪽 싯카 (Sitka) 섬에 또 다른 정착촌을 세우면서 틀링깃트 (Tlingit)부족과 1802년 2년 가까이 사활을 건 전투를 벌였다. 틀링깃트의 젊은 이들은 러시아 정착민 사냥꾼들이 틀링깃트 부족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는데 자존심이 깎였다. 또한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사냥도구를 파괴하자 틀링깃트 족들은 러시아 정착민을 상대로 들고일어났다. 이 전투는 1804년까지 근 2년간 계속되었으나 결국 바라노프의 대승으로 끝났다.
러시아-아메리리카 회사 총책임자 겸 알래스카 총독이 된 바라노트는 러시아 령 아메리카의 수도인 코디액 섬이 한대성 기후로 겨울철에는 몹시 춥자 새로운 이주지를 찾아나섰다. 바라노프 총독은 기후가 보다 양호하고 안전한 새 이주지를 물색했다. 마침 알래스카 최남단 연안의 싯카만 안의 한 섬을 발견했다. 이후 바라노프 총독은 이 섬을 자신의 이름을 따 바라노프 섬 (Baranov Island) 이라고 불렀다. 바라노프 섬은 옛부터 틀링깃트족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들 부족의 고향이었다. 바라노프는 틀링깃트족의 저항을 우려하여 이주 전 이들 부족에게 사례금까지 넉넉하게 주었다.
1777년 7월 7일부터 코디액에 거주하던 100여명의 러시아 정착민, 알류트 족 700여 명, 또다른 부족 300여명이 기후가 온화한 싯카 만의 바라노프 섬으로 이주했다. 이주 초기에는 틀링깃트 족은 이주자들을 반겼다. 바라노프는 이곳에 군대막사, 창고, 대장간, 경비초소, 목욕탕 등 부대시설을 지어 작은 도시를 꾸몄다. 그러나 양측의 호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적개심으로 변했다. 양측은 서로가 야만인이라고 멸시했다.
방화후 모피 약탈하고 정착민 포로로 생포
틀링깃트 족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러시아 남성들이 원주민 틀링깃트 족 여인들을 아내로 삼는 것이었다. 틀링깃트 젊은 전사들은 러시아 인들의 이같은 처사는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러시아 인들이 총으로 위협한 후 강제로 부역을 시키고 공공연하게 공물을 요구하는 것도 이들을 분노케 했다. 이같은 러시아 인들의 처사는 인근에서 가장 용감하다고 알려진 틀링깃트 족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틀링깃트족의 습격은 1799년 겨울철이 접어들면서 시작되었다. 틀링깃트 부족의 젊은 전사들은 사냥할 때 사용하는 날카로운 창이나 활을 들고 러시아인 정착촌을 습격했다. 이들은 정착촌을 불태우는가 하면 방어하는 군인과 병사들을 활과 창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용감한 전사들도 신식무기인 장총으로 맞서는 러시아인들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얼마 후 틀링깃트 전사들은 황급히 패퇴했다.
새해가 들어서자 바라노프는 소수의 러시아 인과 알류트 인을 남겨두고 코디액 섬으로 되돌아갔다. 얼마 후 영국과 미국의 모피상들이 틀링깃트 족에게 머스킷 장총과 무역독점권을 갖고 협상을 벌인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간헐적으로 공격하던 틀링깃트족은 1802년 러시아 정착촌을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틀링깃트 부족들은 러시아 인과 알류트 원주민을 무차별 살해하고 생존자는 포로로 끌고가고 정착촌을 불태웠다. 그리고 정착민들이 보유한 값비싼 비버모피를 약탈하는가 하면 연안에 정박중인 선박에 불을 질렀다. 다행히 일부 러시아 정착민은 숲속으로 달아나 목숨을 구했다.
포로 구하고1만 루불 요구하는 영국상선
마침 코디액으로 향하던 영국 상선 유니콘 호가 노보 아르한겔스크을 방문중 틀링깃트 족의 습격사건을 목격했다. 선장 바비 (Barbe)는 선원들을 지휘하여 틀링깃트 족에게 포로로 잡힌 러시아 인 3명, 얄류트 인 5명과 기타 원주민을 구하고 약탈해간 다량의 비버 모피를 되찾았다. 그리고 바비 선장은 코디액의 러시아 당국에 이번 사건의 전모를 알리고 되찾은 포로들의 몸값으로 1만 루불을 요구했다. 러시아 당국은 협상끝에 요구액의 20%를 지불했다.
틀링깃트 족들은 러시아 인들이 다시 공격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틀링깃트족의 지도자를 겸한 주술사는 해안 높은 곳에 망대를 세우고 하루 내내 러시안 인들의 침공을 살폈다. 그들은 만약에 대비, 해안가 야산에 초소를 세우고 백병전을 치를 전사들을 배치했다. 틀링깃트족들은 대포공격에 대비하여 고지대에 특수 진지를 만들고 해안가에는 적의 침공을 저지할 수 있는 굵은 목책을 세웠다. 그러나 러시아 인들은 규모가 큰 순양함 네바 (Neva)호로 공격해왔다.
네바 호는 1801년 영국에서 건조된 상선 테임스 (Thames) 호였다. 러시아는 1802년 영국 상선 2척을 매입했다. 러시아는 그중에서 테임스의 선명을 네바로 바꾸었다. 선체길이 61미터, 450톤의 네바 호는 해군에 소속되어 갑판에는 14문의 대포를 장착하고 수병 43명이 승선한 순양함이 되었다. 네바 호는 1803년 러시아 최초 세계일주임무를 받고 북아메리카로 항해중이었다. 바라노프는 틀링깃트 족 소탕에 이 네바호를 끌여들었다.
저항하는 원주민 포격으로 제압
1804년 9월 말 네바 호와 에르마크 호 그리고 범선 2척과 250여척의 카약이 싯카 해변에 몰려들었다. 동원된 러시아 병력은 150여명의 수병과 알류트 족 보조병 400내지 500여명. 러시아 함대의 포격은 10월 1일 시작되었다. 네바 호에서 불을 뿜은 함포는 해안주변에 쌓아올린 틀링깃트 족의 요새를 붕괴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함포소리와 함께 함포가 불을 뿜자 틀링깃트족이 애써 만든 요새에는 굉음소리와 함께 횐 먼지만이 가득했다. 포격을 시작한 지 4일 후 러시아 수병과 알류트 족 보조병이 아무런 저항없는 연안에 상륙했을 때 주위에는 함포사격에 사망하거나 부상한 틀링깃트 전사들만 널부러져 있었다. 러시아 측의 완벽한 승리였다. 네바 호는 얼마 후 퇴각했다. 바라노프는 바라노프 섬인 노보 아르한겔스크를 다시 점령했다. 러시아 내륙으로 흘러든 틀링깃트 부족은 그후 러시아측에 부역한 부족들을 공격했다.
1805년 틀링깃트 전사들은 야쿠타트 마을을 공격하여 러시아 인 14명과 200여명의 얄류트 인을 살해했다. 이들의 저항은 1858년까지 계속되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