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도 사라에게 뭐라고 이야기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는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 갔다가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는 다급한 마음에 아무 생각없이 사라를 바로 왕에게 바쳤다. 그에겐 사라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가장이 살아야 가족을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죽으면 모두에게 불행이 닥칠 것으로 생각했는 지 모른다. 큰 불행을 막기 위해 아내가 희생을 하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아닌가? 롯도 기름지고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때문에 아브라함과 헤어졌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상당부분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인간 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
자기만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의 탐욕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아브라함은 사라가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자는 제안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는 그녀의 선택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하갈과 잠자리를 같이했다. 그 후 하갈이 자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하여 임신여부를 진단해보니 양성으로 임신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자식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아브라함은 하갈을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사라의 전략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지만 마냥 쾌재를 부를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속을 썩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식이 없는 집 안에 아이를 갖게했으니 하갈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당연지사이지만 그녀는 선을 넘는 행동을 했다. 주인인 사라를 무시하고 경멸하며 툭하면 언성을 높이고 대들며 마음대로 행동했다. 주객이 전도되어 누가 윗사람이고 아랫사람인지 구분이 되지않는 상황이 벌어지자 사라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갈의 도를 넘는 행위에 충격을 받은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즉각적인 중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차일피일 시간을 끌며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않았다. 급기야 아브라함과 사라의 부부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부부싸움을 했다. 보다 못한 사라는 자신이 총대를 메고 위계질서를 잡기 위해 자기방식으로 하갈을 다루기 시작했다. 집안 일을 책임지고 맡아서 처리하는 아내의 역할은 한 사람으로 족했다. 두 사람의 아내가 사이좋게 책임을 분담하고 공동 운영자가 될 수는 없었다. 집 안의 평화를 위해 그녀를 내쫓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고 판단한 사라는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학대하기 시작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법칙으로 앙갚음이라도 하듯 철저하게 그녀를 응징했다. 사라는 목적을 위해 1회용 반창고처럼 한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하갈을 이용했다. 인격을 존중하거나 존엄성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녀를 대하지 않았다.
사라는 인간의 평등이나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진보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의 위치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군대에 조금 일찍 입대하여 한 계급 높은 사람이 나름대로 군기를 잡는다고 밤마다 아랫사람들을 불러내어 기합을 주고 괴롭히는 것처럼 사라는 밤마다 하갈을 불러내어 벌을 주고 대문 앞에서 보초를 서게했다. 하갈은 집을 떠나지 않는 이상 직속상관인 사라의 명령을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그녀는 짐을 챙겨 여행용 트렁크 하나를 들고 집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사라의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 하갈을 힘들게 괴롭히면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녀는 대기업의 사업계획을 세우는 전략가나 마케팅 전문가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매사에 용의주도했고 디테일에 있어서도 빈틈이 없이 치밀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처럼 하갈은 사라를 경멸하고 저주한 대가로 집에서 쫓겨나 광야에서 방황하는 신세가 된다. 그녀는 집을 나갔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사람처럼 그녀는 광야에서 방황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고향인 애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갈 곳이 막막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장소는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어릴 때 소꿉놀이를 하며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죽마고우들이 눈에 아른대는 고향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흘러 들어온 이민자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다. 그녀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버리고 다시 애굽으로 가는 것은 몸에 기름을 붓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자살 행위였다. 더구나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는 것은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을 버리고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차다 못해 터트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녀는 아브라함에게 속한 사람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