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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Nov
80년 전 피닉스는 왜 4월에 감사절 축제를 했을까?작성자: 아리조나타임즈 조회 수: 52
80여 년 전 피닉스의 추수감사절에는 가을 단풍도, 풋볼 경기도 없었다. 당시 축제는 옥수수와 펌킨 풍작이나 마켓에 가득한 터키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 대신 주민들은 다운타운에 보여 생명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원, 물에 대한 감사를 했었다.
1941년은 오랜 가뭄이 끝난 해였다. 가뭄기간은 1400년대 밸리의 호호캄 문명이 붕괴될 때, 또는 현재 남서부에서 겪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1911년 테오도어 루즈벨트 댐이 완공된 후 피닉스는 일관성없는 자연의 강우량을 견딜 수 있는 기반시설을 얻은 것으로 보였다. 밸리의 주요 저수시설이 된 댐은 급속도로 채워졌고 댐의 방수로는 1920년까지 4차례 범람했다.
그러나 그 해에 강수량은 평균 이하였고 그 후 거의 20년 간 가뭄이 이어졌다. 극심한 가뭄이 피닉스에 물 위기를 가져오면서 잔디는 누렇게 변하고 공공 수영장에는 물을 채울 수 없었다. 루즈벨트 레이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물을 준비해가야 했다.
다시 하늘이 열린 건 1940년 말이었다. 충분한 비가 내리면서 피닉스는 10월에 물사용 제한 규정을 철회할 수 있었으며 비는 다음 해 3월까지도 충분하게 내렸다. 남는 물은 솔트리버와 버디리버의 솔트리버 프로젝트 작은 저수지 다섯 곳과 루즈벨트 레이크를 채우고도 남아 홍수가 나기도 했다.
당시에는 지역에서 농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 따라서 저수지 물의 양은 곧 솔트 리버 밸리의 번영을 의미했다.
가뭄 종식을 축하하기 위해 시드니 오스본 당시 아리조나 주지사는 1941년 4월 26일 "물 감사의 날"을 선포했다. 축하하는 사람들에게는 웨스턴 스타일이나 멕시칸 피에스타 복장이 권장됐다. 흥겨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주최 측에서는 밸리 하이스쿨과 대학으로부터 500명의 뮤지션들을 모아 전에 없던 최대 규모의 밴드를 조직했다.
다운타운 축제에는 5만 명이 모여 연설, 음악, 댄스를 즐겼다.
당시 인구는 6만5천 명이었다. 센트럴 에브뉴는 500명이 식사 할 수 있는 거대한 마차 식당이 됐다.
루즈벨트 댐 모형과 함께 폭 24피트, 높이 16피트의 무대가 허드 빌딩 앞에 세워졌다. 아리조나의 풍부한 수자원을 상징하기 위해 모형 배수로로 물이 부어졌다.
아리조나 스테이트 페어그라운드에서도 축제가 열렸다. 아리조나 스테이트 교사 컬리지에서 뽑은 킹 넵튠이 삼지창을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웰컴 워터 투 아리조나' 쇼에서는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가운데 댄스 공연을 하며 행사는 밤 12시 이후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 교회들은 비가 많이 내린 기간에 감사하는 특별예배를 드렸다. 예배 참석 인원 등 자세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