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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교리를 설명한 간테 수사
페드로디간테(Pedro de Gante: c 1486~1572 4.19)는 1523년 코르테스가 뉴스페인 식민지를 세운 다음해에 발렌시아의 12 사도보다 1년 앞서 신천지에 도착했다. 1486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프란더스에서 황제 챨스 5세의 친척으로 태어난 간테는 신천지에 발을 디딘 후 그림으로 현지인들에게 교리문답을 설명하면서 복음전파에 앞장섰다.
간테 수사는 신천지 최초의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성직자가 되었다. 간테 수사는 뉴스페인의 테노치티틀란과 텍스코코, 그리고 트락사칸 부족을 상대로 전교했다. 이후 나후아티와 인근 현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된 간테 수사는 젊은이 중심으로 교리를 전파하고 뉴스페인 최초로 많은 교육기관과 의료시설을 세웠다. 그의 그림으로 풀어가는 교리문답은 성공을 거두어 많은 현지인을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인도했다.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간테 수사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벨기에인들은 간테 수사를 벨기에 역사상 99번째로 위대한 인물로 선정했다.
낯선 신천지에 들어선 성직자들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언어와 풍습이 다른 인디안들의 이방인에 대한 적의도 대단했다. 조상대대로 전해져 온 전통신앙과 인신공양을 존중하는 인디안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달하는 것은 목숨을 건 투쟁이었다.
나무가지와 갈대로 엮은 초막에서 풀뿌리와 나무열매, 그리고 옥수수, 칠면조, 토끼고기로 연명하며 선교사들은 인디안들의 오랜 전통 교리서를 불태우고 인신제물 같은 악습타파에 목숨을 바쳐가며 전교했다. 이처럼 죽음을 각오한 성직자들의 전교로 점차 이교도의 땅에는 '진정한 십자가'라는 의미의 베라크르즈(Vera Cruz)나 성루이스(Saint Louis)라는 이름을 단 교회나 건물 그리고 도시가 태어났다.
땅 끝까지 복음전파에 나선 12 사도들
1524년 5월 14일 마야의 땅 베라크루즈 항구에 마아틴디발렌시아 사도가 이끄는 12명의 사도들이 들어서면서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이교도의 땅에 하느님의 복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갔다. 멕시카 테노치티틀란 제국을 정복한 코르테스는 이 사실을 스페인 황실에 보고한 후 이곳 인디안들의 다신교 풍습인 인신제물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당장 돼지나 소, 말, 양같은 가축을 보내줄 것을 청했다. 그리고 프란시스코와 도미니크 수도회에 하느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할 사도들을 파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 코르테스의 청원에 따라 로마 교황청은 미아틴디발렌시아 신부를 지도자로 하는 12명의 사도를 이교도의 땅에 파송했다. 애초 후앙갈피욘 사제가 12명의 사도단을 조직하고 손수 참여하려 했으나 사정상 마아틴디발렌시아 사제가 지도자가 되었다. 이들은 프란시스코 교단 프란시스코디로스안젤레스 총재로 부터 청빈과 순결 그리고 죽음도 거역하지 않는다는 순명을 서약한 순명서를 받은 후 낯설고 물설은 이교도의 땅 신천지로 향했다.
근 한 달 후인 5월 14일 베라크루즈에 도착한 12 사도단의 지도자 마아틴 디 발렌시아와 프란시스코 디소토, 마아틴 디 꼬루나(마아틴 디 제수스라고도 함), 후안 후아레스, 안토니오 디 시우다드 로드리고, 토리비오 디 베나벤테모토로니아, 가르시아 디 시스네로스, 루이스 디 푸엔살리다, 후안 데리바스,프란시스코 히메네스, 안드레스 디 꼬르도바 수사, 후안 디 팔로스 수사 등 12명의 사도들은 316마일 거리의 테노치티틀란으로 향했다. 후안디팔로스 수사는 베르난도디라토레 신부대신 선교단에 참여했다. 이들은 6월 18일 테노치티틀란에서 뉴스페인 최고 통치자 헤르난코르테스의 환영을 받았다.
코르테스 동맹 부족 트락사칸에서 전교 시작
12 사도들은 우선 코르테스와 동맹관계를 맺었던 트락사칸 부족 마을에 본부를 마련했다. 이곳에는 1년 전부터 프란시스코 교단의 페드로디간테 수사가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12 사도 일행은 간테 수사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들 12명의 사제들은 예수님으로 부터 땅 끝까지 전교하라는 부름을 받고 떠난 초기 사제들처럼 열정과 사명감에 싸여 고난과 순교를 각오하고 각각 목적지로 떠났다.
사도들이 처음 대한 고난은 낯선 언어와의 소통이었다. 수천년 동안 전쟁의 신, 해의 신, 바람의 신과 특히 깃털 달린 뱀의 신에게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쳐온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현지인의 말을 익혀가며 이들의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간테 신부가 실천한 것처럼 그림으로 교리문답을 설명했다. 실제 12 사도들의 현지인 전교는 지상의 온갖 악행과 하느님의 자비가 벌리는 싸움터에서의 하루하루와 같았다. 그러나 현지인과 한 몸이 되어 생활하자 이들 인디안도 점차 사도들에게 마음을 열면서 하느님의 복음은 점차현지인들에게 파고 들었다.
12 사도의 지도자 마아틴디발렌시아 사제 (Fr Martine de Valencia: ca1474 ~ 1534 3.21 테노치티틀란에서사망)는 이베리아 반도의 돈후앙의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일찍 전교에 뜻을 두고 산티아고 현의 마요르칸 수도회에서 서품한 마아틴은 발렌시아로 파송되어 이후 발렌시아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산타마리아 델베로갈에 수도원을 건립했다. 1523년 마아틴은 로마를 방문하고 후앙갈피욘(Fr Juan Galpion)대신 신천지 뉴스페인으로 전교를 떠나는 12 사도의 지도자가 되었다. 1524년 7월 2일 트락사칸 부족 마을에 성직자 위원회를 설치한 마아틴 사제는 이어 복음의 보호소를 설치하고 초대소장이 되어 복음전파에 매진했다. 각기 다른 부족마을에서 전교하는 사제들처럼 마아틴 사제도 현지인언어를 익혀가며 현지인 언어로 강론과 교리교육에 열중했다. 점차 언어에 익숙해 지자 마아틴 사제는 후임자들을 위해 나후아티 언어사전을 편찬하는가 하면 현지인을 위한 고해성사 안내서도 작성했다.
앙숙인 일부다처 추장 전교시키고 평생 친구가 되다
그리고 그는 매일을 참회의 삶을 살면서 동료사제들의 모범이 되었다. 교육기관도 세워 트락사칸 젊은이들의 교육에 앞장섰다.
8년의 세월이 흘렀다. 마아틴 사제는 동쪽 내륙에 사는 부족을 상대로 전교하기로 했다. 마아틴 신부는 8명의 사제와 함께 코르테스가 마련한 선편으로 자포텍에 이르러 테쿠캍테펙으로 이전하여 선교하려 했다. 그러나 코르테스가 약속한 선편은 마련되지 않았다. 다시 테노치티틀란에 돌아온 마아틴 사제는 말년을 나후아티말로 "평평한 지역"이라는 트랄마나칼(Tlalmanacal)의 나후아트 마을에서 보냈다. 그리고 근처 동굴에 은거하면서 명상과 기도로 매일을 보냈다. 한편 마아틴 신부는 지역을 다스리는 추장 퀘찰마카친을 전교시켜 토마스라고 영세하고 전통신앙인 다신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이때 추장은 옛습관인 일부다체제를 버렸다. 마아틴이 1534년 3월 21일 사망하자 추장 토마스는 마아틴의 유해를 그가 만든 보우트로 테노치티틀란까지 운구했다. 마아틴 사제는 1532년 트랄마나칼에 완공된 산루이스 오비스포 프란시스칸 성당에 안치됐다. 12 사도 중 대략 기록에 남은 사도들의 일생은 다음과 같다.
12 사도 중 일원인 프란시스코디소토( Fr  Francisco de Soto: ca 1500~1563)  신부는 원래 음악 작곡가겸 오르갠 연주자였다. 신천지에 복음을 전하는 12 사도가 된 소토 신부는 이교도 전교에 일생을 바쳤다. 마침 북미대륙 중앙에 있다는 전설속의 7개 황금도시 탐험대에 연루된 마르코스디니자 신부가 1558년 3월 25일 영면하자 그 후임으로 프란시스코 교단 뉴멕시코지역 관구장이된다.
후앙후아레즈(Fr Juan Juarez)는 척박한 최북단 치와와(Chihuahua) 지역에서 순명을 받들어 전교했다. 그는 제2교구의 거룩한 복음소 책임자로 소임을 다하고 이후 가르시아디시스네로스 신부에게 직책을 인계했다. 토리비오디베나벤테(Fr Toribio de Benavente Motolina : ca 1482 이베리아 반도의 자모라에서 탄생~1568년 멕시코시티에서 사망) 신부는 뉴스페인의 프란시스코 교단의 수호자로 불리운다. 도착 직후 주로 트락사칼란 부족의 영토를 중심으로 전교했다. 그는 청빈과 선행을 몸소 실천하며 생활하여 현지 부족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뉴스페인의 인디안 역사"라는 저서를 집필했다. 선교 사제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교도의 땅에는 하느님의 자비가 점차 전파되고 인디안들이 수천년간 온갖 잡신들에게 인신제물을 바치던 악습은 바닷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리고 10년 후 테페악(Tepeyac)산에 성모님이 발현하시면서 온 나라에 하느님 복음이 기적처럼 전파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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