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연안을 향해 떠난 두 범선으로 부터 전혀 소식을 들을 수 없던 코르테스는 사라진 두 범선과 선원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코르테스는 살인자는 찾아내어 복수하고 선원들이 살아있다면 구해 오기로 마음먹었다. 코르테스는 당시 카스티요 제국에서 통용되던 10만 황금 듀카트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범선 두 척을 건조했다. 디에고디베체라(Diego de Becerra)가지휘하는'컨셉션(Concepcion)호와 헤르난도디그리얄바(Hernando de Grijalva)가 지휘하는 라자로(St.Lazaro)호는 1533년 11월 3일 콜리마의 만자니로를 떠났다. 그리얄바 선장은 코르테스가 처음 아즈텍의 땅 베라크르즈에 상륙할 때 코르테스에게 통역 아귈라 신부의 존재를 알려준 탐험가 겸 뱃사람이다.
두 범선은 1533년 12월 10일 콜리마인근 바다에서 헤어졌다. 거만하고 오만한 성격의 베체라 선장은 그리얄바 선장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북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남쪽으로 향하던 그리얄바는 베체라 선장이 뒤따르지 않자 근 3일 동안 인근 바다를 수색했다. 그래도베체라의 범선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배를 찾아 코르테스 다시 출항
오만한 선장 베체라는 항해 중 한 선원을 명령 불복종이라는 이유로 교수형에 처했다. 컨셉션호의 항해사 겸 두번째 지휘자는 시메네(Ximenez)였다. 평소 베체라 선장의 폭압에 불만을 참아오던 선원들은 시메네와 함께 폭도로 돌변했다. 시메네를 앞세운 선원들은 일제히 선장 베체라에게 칼을 겨누었다. 그리고 저항하는 선장 베체라를 살해했다. 상급 선원들은 폭도들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칼날에 중상을 입었다.
컨셉션호를 탈취한 시메네는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미초아칸(Michoacan)해안에 이르러 부상당한 상급 선원을 하선시켰다. 부상당한 선원을 보살피라고 동행한 프란시스코 신부 3명도 함께 하선시켰다. 강제 하선당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폭도 '시메네' 유럽인 최초로 낯선 땅에 상륙
시메네는 다시 범선을 북쪽으로 몰았다. 바다 한 가운데 어느 지점에 이르자 서쪽 먼 바다 한 가운데에 꼬리처럼 길게 늘어진 육지가 보였다. 좀더 가까이 이르자 해변에는 야자수가 긴 몸을 부드러운 바다바람에 흔들고 있었다. 폭도 시메네가 모는 범선은 연안을 오르내리며 마땅한 정박지를 찾았다. 그리고 1535년 오늘의 케이프 풀모(Cape Pulmo) 북쪽에 닻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폭도 시메네 일행은 최초로 오늘의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nia) 반도에 발을 디딘 유럽인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Baja'는 스페인어로 '아래', '낮은'의 의미이다.
시메네 일행이 닻을 내렸을 때 현지인의 저항은 없었다. 연안에 오른 시메네를 비롯한 폭도들은 이리저리 낮선 땅을 헤집고 다녔다. 얼마 후 마주한 거의 벌거벗은 현지인들은 낯선 외지인들에게 특별한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현지인들은 배고픈 몸짓을 하는 시메네 일행을 근처 초막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물고기를 조리한 음식을 내놓았다.
한편에서는 맨살을 드러낸 현지인 여인들이 큼지막한 푸른 조개에서 영롱한 빛깔의 진주를 채취하고 있었다. 여인들은 불길에 진주조개를 던진 후 조개가 입을 벌리면 진주를 채취했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시메네 일행은 그간의 허기를 달래고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현지인들에게 진주를 거래할 의사가 있음을 몸짓으로 전달했다.
어느정도 기력을 회복한 폭도들의 마음에는 음심이 싹텄다. 오랜 뱃길에서 해결하지 못한 본능이 서서히 꿈틀거렸다. 더구나 반라의 여인들의 건강한 몸이 눈 앞에서 어른거리자 순간 음심은 공격으로 변했다. 폭도들은 비명을 지르는 반라의 여인을 겁탈했다. 그리고 채취한 진주를 약탈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여인들의 비명소리에 놀라 주위에 있던 건장한 체구의 현지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공격했다. 순간 폭도들과 현지인 간에 죽고죽이는 혈투가 벌어졌다.
현지여인 폭행하고 진주 탈취하다 피살되다
시메나도 칼을 들고 현지인과 결사적으로 혈투를 벌였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무시한 채 칼을 휘두르는 폭도들에게 달려들었다. 점차 폭도들도 하나, 둘씩 마른 땅 위에 몸을 뉘었다. 몇 명의 현지인을 넘어뜨린 시메네도 더이상 버틸 수 없어 현지인이 휘두른 몽둥이를 머리에 맞고 비명을 남기고 쓰러졌다.
현지인과 대치 중이던 젊은 폭도 2명은 넘어지는 시메네를 보았다. 그리고 순간 달아나는 것만이 사는 길임을 알았다. 두 사람은 정박한 범선이 있는 해안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범선이 정박한 해안에 이른 두 폭도는 돛과 닻을 올린 후 먼 바다로 배를 몰았다. 다행히 여인들을 겁탈하며 손에 쥔 진주는 그대로 있었다. 두 폭도는 햇빛에 영롱한 진주를 바라보며 며칠만에 구즈만이 장악한 뉴갈리시아의 해안에 도착했다.
또 다시 코르테스의 범선을 압류한 구즈만
구즈만은 폭도들이 몰고 온 코르테스의 컨셉션호를 압류했다. 그리고 그 범선을 인근 해안 탐험에 이용했다. 코르테스는 즉각 구즈만을 비난하고 범선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구즈만이 응하지 않자 코르테스는 보병과 기마병을 이끌고 누노디 구즈만이 있는 뉴갈리시아로 진격했다. 일촉즉발 전운이 감돌자 안토니오디멘도자 총독은 양측에 자제할 것을 종용하고 구즈만에게 순순히 압류한 범선을 코르테스에게 돌려줄 것을 권했다. 결국 최고 재판소도 구즈만에게 압류한 범선을 코르테스에게 돌려주라고 판결, 코르테스는 범선을 되찾았다. 그리고 법원은 코르테스와 구즈만에게 임의로 바다에 나가지 말라고 권했다. 그러나 황금과 진주가 풍부하다는 섬을 정복하려는 코르테스에게 법원의 명령은 귀에 닿지 않았다. 돌아온 2 선원은 코르테스의 엄한 문초를 받았다. 선장 베체라를 살해하고 부상당한 선원과 사제를 낯선 땅에 유기한 죄목으로 어떤 처벌을 받았는 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때부터 코르테스를 비롯한 구즈만과 선원들은 멕시코 해안 서쪽에 자리한 진주가 많이 나온다는 너른 땅을 캘리포니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당시 인기소설 '에스프랜디안의 개척'이라는 흑인여왕이 다스리는 전설속의 아마존의 흑인 여전사들의나라 캘리포니아가 당연히 이 섬 (* 필자주: 이후 프란시스코 디우요아는 1539년 일대를 탐험하고 섬이 아니라 반도라고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