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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총애로 과테말라 총독이 된 알바라도
당시 탐욕과 공명심에 불타는 탐험가들 사이에는 공명을 다투는 모함과 질시가 심했다.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를 성공리에 정복한 알바라도 역시 황실을 둘러싼 경쟁자들의 모함을 받았다. 알바라도는 약탈금액의 20%를 황실에 바쳐야 되는 세금을 불성실하게 신고했다는 죄목으로 황실에 소환되었다. 코르테스도 함께 소환되었다.
어느날 알바라도는 황실 정원을 산책 중이었다. 마침 황제도 측근들과 함께 정원을 지났다. 멀리서 유난히 흰 얼굴에 아름다운 붉은 머리결을 한 미남이 황제의 눈에 띄었다. 처음보는 청년이었다. 황제는 신하에게 "저렇게 아름다운 청년은 누구인가"라고 물은 후 알바라도를 궁성으로 초대한 후 친견했다.
1527년 12월 18일 황제는 알바라도를 과테말라 총독에, 그리고 2일 후에는 대장군이라는 군에서는 최고의 직책도 내렸다. 총독이 된 알바라도는 더 이상 코르테스의 지휘를 받지않게 되었다.
1532년 알바라도는 황실에 태평양 연안 남쪽지역 탐험을 청원했다. 그러나 그의 탐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곳은 이미 프란시스코피자로가 점령한 피자로의 영토였다. 양측사이에는 일촉즉발의 전쟁상태에 이르렀으나 극적인 타협을 보았다. 알바라도는 피자로에게 그가 타고온 함선과 말, 화약, 탄약 그리고 병사를 합당한 금액에 넘기고 과테말라로 돌아왔다.
과테말라의 29번째 주민으로 등록한 까브리요는 푸에르또 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 인근 나코(Naco)라는 마을로 이주했다. 택지45,000 제곱피트, 그리고 84,000 제곱피트의 농경지를 배급받은 까브리요는 이곳에 옥수수같은 곡물을 재배하는 농장과 과수원을경영했다. 현지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간단한 양식만 지급하고 현지인을 고용하여 농장과 광산을 개발했다. 대신 까브리요는 알바라도와 달리 현지인들에게 곡물이나 과일을 넉넉하게 나누어주며 친절하게 대했다. 그리고 자신도 현지인 여인을 가정부겸 애인으로 삼은 후 아들 2명도 두었다.

 

동료 3명과 광산개발로 최고의 부자로 등극
1529년 까브리요는 친구 산체스디오르테고, 산초디바라호나와 함께 코반(Coban)이라고 이름지은 광산을 개발했다. 개발한 광산은 성공이었다. 현지인들은 넓은 냄비로 금붙이를 걸러내고 또 걸러낼 자갈을 운반하는가 하면 까브리요의 농장에서 중노동도 했다. 까브리요는 성공한 광산과 농장으로 막강한 부를 이룰 수 있었다.
이 무렵 알바라도는 황제를 친견한 후 과테말라의 총독이 되어 돌아왔다.
한편 일부 황제의 측근 질시로 별다른 직책을 받지 못한 코르테스는 태평양 연안 너른 오하까(Oxaca)일대의 후작이 되어 돌아왔다. 
알바라도가 과테말라 총독직에 임명된 지 얼마 후 코르테스는 시내번화가를 지났다. 마침 황제의 마차가 지나갔다. 코르테스는 경호원을 뚫고 마차에 접근했다. 그리고 마차 창문을 통해 황제에게 문안을 드렸다.
황제는 이 무례한 사나이에게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코르테스는 "폐하께서 지금 다스리시는 땅보다 더 넓은 땅을 폐하에게 바친 사람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이같은 인연으로 코르테스도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비옥한 땅 오하까(Oxaca)인근을 소유한 후작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1533년 까브리요는 광산동업자 오르테카의 여동생 베아트리츠와 결혼하기 위해 고향 스페인을 방문했다.
까브리요는 결혼 후 과테말라로 돌아오는 길에 배 3척에 많은 유럽산 상품을 싣고와 페루 등 인근 정복지에 팔아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그리고 선박건조에 필요한 자재도 싣고 왔다. 까브리요는 엘살바도르의 태평양연안 아까주틀라만 입구에 조선소를 차렸다. 거친 암초가 길게 늘어섰으나 강풍을 버틸 수 있는 천연의 요새였다. 근방 인가라고는 과테말라의 산티아고 남쪽 40마일 지점에 마리아린다 강과 미차토야 강에 둘러쌓인 이즈타파(Iztapa)가 고작이었다.
이후 알바라도는 이즈타파에는 조선소를 세우고 산티아고라는 대형 선박을 건조한 경험이 있는 까브리요에게 배를 만들어 달라고주문했다. 까브리요는 태평양너머 인도와 중국 등 향료의 땅과 교역할 수 있는 선박 8척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선박 건조와 탐험에 필요한 병사들 모집에 파산지경에 이른 알바라도는 페루의 피자로로부터 선박이 상륙해도 무방하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알바라도의 함선은 강풍에 밀려 에쿠아도르까지 밀려났다. 알바라도와 병사들은 에쿠아도르에서 눈덮힌 험준한 겨울산을 넘었다.
산을 넘던 스페인 병사 100여 명, 원주민 전사 1,000여 명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하얗게 눈덮힌 산에 식어버린 몸을 뉘여야 했다.
파산직전인 알바라도는 살아남은 병사와 무기와 남아있는 병참물자를 10만 까스테연 은화를 받고 피자로에게 넘겼다. 당시 1까스테연 은화는 병사 10명을 1년간 거둘 수 있는 돈이었다. 알바라도는 이 돈으로 그간 지출한 경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테말라로 돌아와 피자로로 부터 받은돈을 확인한 알바라도는 거의 졸도직전에 이르렀다. 피자로한테 받은 돈의 절반은 은화가 아니라 구리로 만든 동전이었다.
1536년 혼두라스의 총독까지 겸하게 된 알바라도는 또 다시 세금부정 혐의로 스페인에 호출당했다. 알바라도는 떠나기 전 까브리요에게 광활한 테오타(Teota)와 코텔라(Cotela)를 주고 경작하도록 했다. 그리고 조선소가 있는 황량한 이즈타파 항구일대의 행정관에 임명했다. 이즈타파 항구를 돌아 바다로 흘러드는 미차토야 강물은 드셌다.
인근에는 유럽과 현지인 노동자들의 임시 야영지가 전부인 황량한 마을이었다. 까브리요는 이곳에서 4년 간 배를 건조했다. 선박 건조에 필요한 물자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이곳에서 선박을 건조하려면 유럽보다 10배이상 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큐바하바나에 머물 때 배를 수리하고 건조하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익힌 까브리요는 어렵사리 엘살바도르의 아까주틀라에서 길이100피트, 폭 25피트의 200톤급 산티아고호를 건조한 경험이 있었다. 까스티요가 직접 건조한 대형 선박을 임차한 알바라도는 2년 후 상처투성이인 이 배를 돌려주었다. 수리비만 200페소가 들었으나 알바라도는 인색하게 150페소만 지불했다.

 

암초 투성이 연안에서 선박 8척을 건조
알바라도의 요청으로 까브리요는 목재조달이 용이하고 강풍을 피할 수 있는 이주타파에 조선소를 차리고 8척의 배를건조했다. 까브리요가 조선소를 마련하자 배를 건조할 수 있는 숙련공들이 몰려왔다. 당시 유럽을 비롯한 여러나라에는 배를 만드는 도면도 제대로 없었다. 조선공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수한 기술과 도면에 의지해 배를 만들었다.
까브리요의 조선공들 일부는 자재상까지 겸했다. 까브리요는 자연 이들과 선박건조에 관한 정보도 나누었다. 특히 대장장이들은 이곳에서 쇠사슬, 곡괭이, 유럽산 볼트를 직접 만들었다. 인부들은 강물을 따라 흘러온 목재를 손질하고 톱질한 목재로 용골을 세우고 붙이고 선미의 기둥과 축을 연결했다. 그리고 골격이 형성되면 해변으로 끌고와 배를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물이 새지않게 배에 역청을 바르고 갑판에는 대포같은 무기를 장착할 자리를 마련했다.
알바라도는 두번째 스페인에서 돌아올 때 3척의 배에 선박건조용 자재를 비롯한 상품을 가득 싣고 왔다.
알바라도의 배가 기항한 혼두라스의푸에르또디까바로스 (Puerto de  Caballos)에서 이즈타파 조선소나 아까주틀라까지는 무려 325마일 거리였다. 대부분 아프리카 원주민이나 현지인 인부들은 울창한 정글과 바위투성이인 험준한 산을 무거운 짐을 지고 날랐다. 이들은 무거운 짐을 몸에 밧줄로 묶거나 짐을 밧줄에 연결하여 끌고당기며 운반했다. 힘에 지쳐 쓰러지면 누구도 돌보지 않았다. 불쌍한 이들은 자갈 투성이 거친 땅에 누운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바라보다 서서히 죽어갔다. 시체 위로는 새들이 까맣게 몰려들었다.
이렇게 알바라도의 배를 건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죽어갔다. 이즈타파 건조장 주변은 유난히 덥고 습도가 심했다.
마침내 작업에 지친 인부들이 강도높은 노동에 항의하고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미를 보였다. 까브리요는 이들에 대한 유화책으로 인부들의 숙식을 돌보는 현지 여인들에게 밤이면 인부들의 침실에 들어가도록 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현지 가톨릭 주교가 이같은 부도덕한 처사를 비난했다. 주교의 밀고로 황실은 당장 이같은 부도덕한 처사를 금지시켰다.

 

수많는 죽음 끝에 13척의 선박을 완성
까브리요는 알바라도가 주문한 배 8척을 포함하여 대형선 3척, 갈레온선(중형선박) 7척, 소형선 3척 등 모두 13척의 배를 건조했다. 까브리요가 건조한 산티아고 호나 산살바도르 같은 대형선은 길이가 200피트, 폭은 25피트에 돛을 보통 3개 올렸다. 그리고 데크 아래 40피트 입방크기의 포도주를 담은 통의 무게를 1톤이라고했다. 대형 선박은 200톤의 포도주를 실을 수 있었다. 중형선박은 100톤, 소형은 50톤이었다.
그러나 황실은 인도의 이웃이라는 중국 등 여러 태평양 인근 섬나라와 교역하려던 계획을 바꾸었다. 그리고 전설속에 떠돌던 "아니안해협"을 탐험하자는 쪽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자연 태평양 연안을 통해 중국으로 진출하려고 건조한 알바라도의 배는 이제 "아니안해협" 탐험에 사용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유럽에는 북아메리카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협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해협은 북아메리카의 북서쪽을 흘러 태평양으로 흐른다고 믿었다. 황실에서는 거친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보다 북아메리카를 거쳐 태평양인근 중국이나 인도와 교역하고자 했다.
이같은 거대한 탐험에 역전의 탐험가 페드로디알바라도가 그 중대한 책무를 맡게되었다. 알바라도는 까스티요를 부대장에 임명하고 함께 탐험하자고 권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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