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 칼에 의존하여 명성을 떨친 사람은 다윗 왕의 최측근이었던 '요압' 장군이었다. 그는 군대 장관으로 다윗 왕을 위해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던 용감한 장수였고 그 후 군부 실세가 되어 다윗 왕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막강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그에게 줄을 대려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몰려가는 것을 보면 그는 2인자가 아니라 1인자나 마찬가지였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고 잔인한 그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나무에 걸려 버둥거리던 그의 심장을 창으로 뚫어버렸다. 또 그는 죽은 동생의 원수를 갚기위해 사울 왕의 심복이자 군대 사령관인 아브넬을 암살하여 자신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사전에 제거했다. 인정 사정없이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그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냉정하고 차가운 인물이었다. 그는 다윗 왕이 밧세바에 눈이 멀어 남편인 우리아를 살해하려고 계획했을 때 이를 만류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음모에 가담했고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했다. 그 후 다윗이 자신을 퇴진시키고 다른 친척인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하자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 칼로 그의 배를 찔러 죽였다.
다윗의 결제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칼을 휘둘러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그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는 죽을 것을 알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 제단을 붙들고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죽음을 당했다.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터를 누비던 용감한 장수답지않은 비겁한 행동으로 가문의 수치로 기억될 만한 치욕적인 죽음이었다. 칼로 권력을 잡고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려던 그는 결국 칼로 망한 사람이 되었다. 역사를 보면 일부 군인들이 작당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후 무자비하게 정적들을 살해하고 많은 생명을 앗아간 독재자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칼로 권력을 탈취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성경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는 말씀이 있다. 이 구절을 인용하여 대표기도를 하면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으니 우리 모두 힘을 합해 쳐들어가서 천국을 점령하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고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아멘!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천국은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에 기습작전을 벌이기라도 하듯 우리가 전력을 다해 공격해서 무력으로 진압해야 할 목표의 대상인가? 천국을 공격하여 쑥대밭으로 만들고 천국을 불법으로 점령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이런 오해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온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문맹자들이 너무 많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충 성경을 이해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질문을 하면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침노를 당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비아제타이(biazetai)인데 이 단어를 수동태로 해석하면 폭력을 당한다 또는 고통과 박해를 받는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서 격렬한 반대와 거부에 부딪혀 박해와 고통에 직면한다. 세례 요한 때부터 폭력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려고 시도하였다. 헤롯 왕, 유대 지도자들, 열성 당원들이 좋은 예이다.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화목하기보다 싸움을 선택하고 분쟁을 일으키며 전쟁을 벌인다. 모든 싸움의 원인은 욕심에 있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영토를 확장하고 견제세력을 제압하고자 하는 야욕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군사력에 있어서 월등한 나라가 약소국을 제물로 삼아 영토를 확장하여 그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피로 물든 전쟁터의 잔해 위에서 평화는 세워질 수없다. 부부간에도 돈 때문에 갈라지고 법정에 서서 기를 쓰고 머리가 깨지도록 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로는 사랑과 화해를 원한다고 하지만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비폭력주의의 정신을 보여주셨다. 역설적이지만 오직 사랑의 힘만이 폭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 사랑과 용서는 미움과 분노보다 강하다.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는데 이길 수 있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거칠게 항변할지 모르지만 악과 싸워 이기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은 오히려 폭력을 당하고 고통을 받는 것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죽음이 좋은 예이다. 하나님은 전쟁터에서 싸우는 전사(Warrior)로 비유된다. 그러나 싸우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