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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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젊은 날에 읽었던 김소월(金素月)의 이 시(詩)가 왜 지금 나이를 지긋이 먹은 이 날에 다시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일까?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잊어"라는 시의 한 소절이다. 싱싱한 젊음만으로 세상을 모르던 시절, 김소월의 시(詩)에 흠뻑 빠져서 줄줄이 그의 시집(詩集)을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생활에서는 김소월의 사랑과 정서와 그리움과 애틋함을 느끼고 싶어도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바쁜 생활이 나를 한가롭게 놓아 두지를 않는다. 살다보면 다 그런 것을 하고 살건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듯 다시 "못 잊어"하면서 옛생각에 몸을 떨어본다.



요즘에는 순수하고 멋있게 사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많이 갖고 있지 않아도 멋있는운치를 아는 사람, 남에게 향기롭게 보이는 삶이란 이미 사라졌다. 시류에 쫓기지 않고 주어진 여건 하에서 느긋하게 사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라도 때 안묻고 맑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사람이 귀해서 목마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만나서 행복했던 사람을 오랫만에 만났다. 그들과의 대화가 나를 웃게 만들고 짧았던 시간들이 나로 하여금 잊지 못할 날로 기억하게 만든다. 작년 늦가을,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는 해리슨(Harrison)씨가 집에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우리부부를 초대했다. 두 번째의 저녁 초대였다. 그의 친구 판사를 함께 초대하니 만나면 좋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해리슨씨는 가끔 밖에서 저녁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일상생활을 이야기하고 또 미국생활을 서로 편안하게 얘기하는 부담없는 멋진 신사다. 비지니스 업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람이지만 그의 겸손함 때문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만나고는 하였다.  



한국문화원을 운영하면서 그 많은 네트워킹을 통해 참 좋은 인연을 맺게 된 다섯 명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늘 고맙게 생각이 드는 사이였다. 아리조나 리퍼블릭 신문에 났던 문화원에 대한 상세한 기사를 읽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있어 꼭 만나자고 전화를 준 것이 우리의 인연이 되었다. 벌써 18년의 인연. 우리 부부 보다 더 연상이지만 처음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집안 곳곳을 보여주고 옛날 유럽풍의 실내장식 등 그의 자상함과 우리 문화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태도에 감탄하였다. 지난 번에 처음 만난 판사 역시 겸손한 태도는 우리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그래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판사님" 했더니 "아닙니다. 그냥 잭(Jack)으로 불러주면 충분합니다." 하는데이미 한 순간에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해리슨이나 잭이나 모두 한국을 방문한 경험담을 들려 주는데 우리 부부는 어깨가 으쓱거렸다. 한국을 보고 놀랐다는 얘기에 재미가 더 솔솔한 저녁이었다. 한국의 IT업계는 세계1위라면서요? 그리고 도시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던지 조선호텔, 신라호텔 두 곳에 다 머물러 보았다는 자랑.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인사동 거리, 북촌한옥마을, 그리고 분단국의 비극을 보여주는 남과 북의 경계선인 DMZ까지 상세하게도 보고 왔다는데 내가 더 기분이 좋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까지 많이도 배우고 온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이들과의 대화가 우리 부부에게는 말할 수 없는 자랑과 힘을 돋구어 주었다. 즐거운 대화의 힘이라는 것이 이런것인가. 해리슨은 비지니스 관계로 타주에서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늘 이메일로 안부를 물어 오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다. 귀한 사람을 만났을 때의 감사함과 뿌듯함, 느껴본 사람 만이 알 수 있는 온화한 느낌이라고 할까.



금년 초부터 나를 비상사태로 몰아 온 남편의 건강은 이제 회복되었지만 남동생의 건강(위암 수술후) 때문에 늘 마음이 편치않다. 일 때문에 바쁘고, 동생 때문에 캘리포니아에도 들러야 되고 생활관리가 이렇게 힘들까. 



세상이 내맘대로 안되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때면 이미 인생은 깊은 골짜기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세월은 어느 새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나이에 이르러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무력감. 살다 보면 의문 투성이와 흔들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은 무엇이란 말인가. 현대문학의 거장, 백발의 보르헤스는 말했다지.  

"나는 일생을 표류하면서 살았노라."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내혼의 양식을 대주신 분은 누구일까 곰곰히 생각 해보는 밤이다.



08. 14, 2016

미셸 김/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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