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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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를 마시자, 단돈 5센트. 거리의 노점상이나 식료품점,살롱에서"라는 짤막한 광고가 1899년 11월12일 차타누가의 지역신문 "차타누가 타임즈"의 한 구석을 차지했다. 그 광고란 옆에는 "이곳에서 변호사로 활동중인 토마스(Benjamin F. Thomas)와 화이트헤드(joseph B. whitehead)가 17번지 마켓 거리에 코카콜라 병작업(Bottling) 공장을 차리고 병에 담은 코카콜라를 노점을 비롯한 일반 가계에  공급했다."라고 간략하게 보도했다. 소다수 판매대를 찾아야만 목젖을 지날 때 짜릿한 상쾌감과 달콤함을 주던 코카콜라를 이제는 거리의 노점상이나 식료품점에서 맛 볼 수 있다니 이는 소비자들에게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이렇게해서 코카콜라는 미국 전대륙을 거쳐 전 세계 만인들이 즐기는 청량음료로 자리잡았다.

아사 캔들러로부터 계약서를 받아든 토마스와 화이트헤드는 서둘러 차타누가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사가 오늘은 무슨 답을 줄까하고 조바심을 치던 오전과 달리 돌아가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날아갈듯 가볍기만했다.


1899년 11월 첫 제품을 선보여

병에 담은 코카콜라는 이보다 약 10년 앞선 1888년  아사와 함께 코카콜라 회사를 차렸던 울포크 워커에 의해 시장에 나왔었다. 워커는 코카콜라를 병에 담아 소매점에 공급했다. 그러나 아사는 당시의 병마개 기술과 자칫 내용물이 변질될까하여 조카 새무엘 돕스를 통해 엄하게 병작업을 금했다 (울포크 워커는 이후 자신의 지분과 누이동생 도지어 여사의 지분을 아사 캔들러에게 팔았다. 그러나 도지어 여사는 계약서에 있는 자신의 사인은 누군가가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워커는 아사로부터 매매대금 1,000달러를 받은 후사라졌다).

토마스와  화이트헤드는 코카콜라 바틀링 회사를 설립하고 차타누가 시내 17번지 마켓 거리에 붉은 벽돌 건물에 병작업 공장을 차렸다 (이 회사는 1899년 12월9일 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우선 탄산수 주입기를 비롯하여 작업대, 침전탱크, 병세척기 및 물탱크 등 가동에 필요한 여러 장비를 구입했다. 당장 구할 수 없는 장비는 주문했다. 그리고 병과 완성품을 담아 배달할 상자 그리고 운반 할 말과 마차도 준비했다. 어느 정도 작업준비가 마무리 되어가자 이제는 병작업에 숙련된 종업원을 모집했다. 줄잡아 근 2,000 달러가 넘게 투자되었다. 1899년 당시 금 1온스 가격은 18.94 달러,  쇠고기 엉덩이살은 1파운드에 0.22달러, 그리고 방 4개 짜리 주택 한 달 월세는 9.99 달러였다.

당시만해도 과일쥬스를 비롯한 청량음료를 병에 담아 소매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1800년대 중반까지 병에 담은 과일쥬스나 청량음료는 몇몇 살롱 등에 소량으로 거래되고 일반 소매점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병마개가 조금씩 개선되면서 그 소요는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초기 병마개는 병마개 하부에 달린 고무가 내용물과 접촉하면서 며칠이 지나면 내용물에서 냄새가 나고 어떤 경우는 변질되기도했다. 그러나 1800년대 말 콜크 병마개에 둥근 고리모양의 철사를 연결하고 병을 따는 작은 갈고리를 부착한 신형 병마개가 등장하면서 병 작업<Bottling>은 크게 늘어났다. 1892년 '크라운 콜크 앤드 실'이라는 이름의 병마개회사가 법인화 되고 트위스트 형의 병뚜껑이 등장하면서 병작업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에는  근 3,000여 개의 병작업 회사가 생겨났다.


마스크, 긴장갑을 끼고 병뚜껑 작업 

토마스와 화이트헤드는 마침 크라운 콜크 회사가 개발한 안전한 트위스트 형 병뚜껑이 대중화되면서 코카콜라의 병작업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병뚜껑이 안전하다해도 내용물이 들어있는 병을 막는 작업은 매우  위험하고 까다로웠다. 작업대 위에는 10갤론짜리 코카콜라 시럽을 높이 매달고 중력에 의해 호스를 통해 일정량의 시럽이 병에 흐르도록했다. 이어 탄산수와 설탕물을 넣으면 마지막으로 병뚜겅을 닿는 작업에 들어간다. 작업자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여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손과 팔을 보호하는 기다란 장갑을 낀 채 한 발로는 연신 기계를 작동하면서 병뚜껑을 막는 작업을 했다. 이렇게 생산된 코카콜라가 가득들어있는 병은 노점상이나 잡화상 살롱 등으로 실려나가고 또 기차나 마차에 실려 먼 지방까지 배달되었다. 그러나 자동화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모든 작업을 하나하나 수동에 의지해야 했다. 작업 전 모든 병은 병 세척탱크에서 병마다 기다란 쇠솔로 병 내부를 완전 세척하고 물에 헹구어야했다. 작업은 그만큼 까다롭고 복잡했다. 아사 캔들러도 이같이 병작업이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안전하게 시럽만 판매했던 것이다.

토마스와 화이트헤드의 병에 담은 코카콜라는 단 시일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간 소다수 판매대에서 일부 소비자만 마실 수 있던 독특한 맛의 코카콜라는 이제 소다수 판매가 없던 변두리 주민들까지 그 독특한 코카콜라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 갈증이 나면 노점상이나 일반 잡화점, 식료품점에서 쉽게 목을 추기게 되었다. 이제 코카콜라는 마른 들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의견 불일치로 지역 나누어 독립

사업이 번창하는 것과 달리 토마스와 화이트헤드는 코카콜라를 통해 돈을 벌어야 된다는 생각에만 의견일치를 보였을 뿐 사사건건 불화를 빚었다. 특히 병의 규격과 색깔에도 한치의 양보가 없었다. 토마스가 8 온스 짜리 병에 갈색의 병을 원한 반면 화이트헤드는  6온스보다 약간 크고 맑고 투명하거나 옅은 녹색의 병을 원했다. 

두 사람 간의 결정적인 불화는 프랜차이즈 격인 하청업자 계약조건에서 폭발했다. 병에 담아 파는 코카콜라가 인기가 높자 전국에서 하청을 원하는 업자들이 몰려들었다. 토마스는 이들에게 2년 간의 가계약 기간을 주고 그 간의 실적에 따라 계약기간을 연장해주자고했다. 그러나 토마스의 이같은 안에 화이트헤드는 반대하고 나섰다. 화이트헤드는 특별히 계약기간을  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화이트헤드는 이래야만 하청업자의 충성심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미대륙을 둘로  나누어 독자적으로 사업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모험심이 강한 토마스는 인구 밀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코카콜라가 낯선 동부해안가와 서부 해안지대 그리고 차타누가를 중심으로 반경 50 마일지역을 영토로했다. 대신 화이트헤드는 코카콜라의 고향인 조오지아를 비롯한 남부와 그외 서부지역을 맡아 운영하기로 했다.

토마스와 헤어진 화이트헤드는 회사를 차리고 운영할 만한 자본이 없었다. 화이트헤드는 평소 안면이 있는 변호사출신 사업가 럽튼(John Thomas Lupton)을  찾았다. 1862년 버어지니아의 윈체스터에서 태어난 럽튼은 버어지니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교환학생으로 차타누가에 머무는 동안 차타누가 메디신 회사를 운영하는 패튼(Zeboim Carter Patten)의 딸 엘리자베스를 만나 1899년 11월 12일 결혼한다. 결혼 후 차타누가 메디신 회사의 법률관계 일을 보던 럽튼은 얼마 후 재무담당 중역을 거쳐 부사장에 이른다. 화이트헤드로부터 코카콜라 바틀링 동업 제의를 받은 럽튼은 부사장 직을 내던지고 화이트헤드와 함께 코카콜라의 본향인 애틀랜터로 달려간다. 사업자금 2,000여 달러를 럽튼이 제공하는 대신 이익금은 반분하기로 한 두 사람은 아사의 코카콜라 3층짜리 건물이 있는 애틀란터 187번지, 인근 17번지 에지우드 거리의 2층짜리 빅토리안 식 붉은 벽돌 건물에 '딕시 코카콜라 바틀링(Dixi CocaCola Bottling) 회사의 간판을 걸고 사업을 시작한다. 1년여 동안 이곳에서 병작업사업을 벌이면서 화이트헤드와 럽튼은 조오지아 일대에 16개의 바틀링 프랜차이즈를 세운다. 럽튼은 또한 운영자금이 모자라는 프랜차이즈 업체와 지원자에게는 자금을 대주고 이익금의 일정액을 챙겼다. 1904년 무려 400여개의 프랜차이즈를 거느리게 된  화이트헤드와  뤂튼은 얼마 후 코카콜라의 성지 남부와 남서부 그리고 서부연안에 코카콜라 왕국을 세우고 갈퀴로 낙옆을 긁듯 돈을 긁어모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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