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라의 거친 황야를 하루내내 내려쪼이던 태양도 빛을 잃어가는 오후, 키 큰 선인장이 그림자를 드리운 허름한 흙벽돌 아도비 술청은 카우보이들의 땀 냄새, 데킬라 냄새 그리고 술꾼들을 홀리는 여인들의 웃음으로 가득했다. 희미한 남포불이 조는 듯 어둠을 사린 술청 안,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제이컵 왈츠(Jacob Waltz)는 노다지꾼 동료 제이컵 위저( Jacob Wieser)와 함께 한편 구석에 자리잡고 독한 데킬라로 입술울 축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건너편 테이블에서 벌이는 카아드 게임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테이블에는 한 중년의 스페인 신사가 함께 게임을 하는 다른 노름꾼들로부터 속임수를 당하고 있었다. 왈츠와 위저는 여러차례 그 광경을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그 신사가 속임수를 알아차리고 딜러를 부르면서 거칠게 항의했다. 곧이어 카드 게임 테이블이 넘어지고 노름꾼들 간에는 칼과 주먹을 날리는 난투가 벌어지면서 그 신사는 위험에 처했다. 왈츠와 위저는 위기에 처한 그 신사를 구한 후 재빨리 술청 안을 빠져나왔다. 처음 보는 외지인으로부터 생명을 구한 중년의 스페인 신사는 왈츠와 위저를 자신의 목장에 있는 우아한 저택으로 초대했다.
금광을 찾아 먼 멕시코의 소노라 까지 흘러든 왈츠와 위저는 이 신사의 초대에 감사하면서 자신들은 금광을 찾아 오래전부터 조지아, 미시시피 그리고 네바다등 미 전역을 헤집고 다녔으나 아직 행운을 찾지 못했다고 신세를 한탄했다. 왈츠와 위저가 생명을 구해준 이 신사는 스페인과 멕시코의 유명한 페랄타 (Peralta)가문의 후손 돈 미구엘 페랄타(Don Miguel Peralta)였다. 왈츠와 위저의 이야기를 들은 미구엘 페랄타는 자신이 16살 때 금광에서 아파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이야기를 말했다. 미구엘 페랄타는 아버지가 이끄는 대규모 탐광대를 따라 북쪽 어느 사막지대의 괴기스런 산에서 금을 캐다 아파치의 공격으로 대원 거의가 살해당했으나 자신은 천행으로 살아남았다는 끔직했던 옛날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이렇게해서 저 유명한 슈퍼스티션 산의 '로스트 더치맨 제이컵 왈츠의 황금 전설'이 태어나게 되었다.
황금광산서 살아남은 페랄타의 회고
페랄타 가문은 본래 스페인 북쪽 나바라(Navarra)지방의 유서깊은 명문가로 스페인 황실의 산티아고 기사단의 회원이기도 하다. 그의 후손이 어떻게 하여 신대륙에 정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페랄타의 많은 후손들은 뉴 멕시코, 시나로아, 소노라 그리고 알타 캘리포니아에서 오랫동안 명문가로 활동했다. 돈 페드로 페랄타는 오늘의 아리조나가 포함된 뉴 멕시코의 제2대 총독으로 1610년 실제 산타 페 도시를 건설했다. 또한 후안 페랄타는 시나로아 지방의 군사령관겸 시장, 치안판사를 역임했고 페드로 페랄타는 아리즈페 수비대장으로 1698년 사에타 신부를 살해한 인디안 2명을 구금한 키노신부로부터 직접 범인을 인수하기도 했다. 아리조나에 거주한 최초의 페랄타 가문 자손으로는 가브리엘 안토니오 페랄타. 그는 투박에 너른 장원을 경영하며 명예 수비대장도 겸직했다. 마침 후안 보티스타 디 안자가 캘리포니아 육상 탐험에 나서자 가족을 모두 이끌고 대장정에 참여했다. 이후 샌 프란시스코에 정착한 그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황제로부터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 버어클리, 에머리빌, 알라메다, 산 리안드로 등 란초, 산 안토니오 일대 48,708 에이커를 하사받았다. 그의 아들 루이스도 이후 산 호제 수비대장이 된다. 그의 동생은 산 마테오 일대를, 또 일부 그의 후손은 로스안젤레스의 오랜지 카운티 일대의 땅을 하사받은 유수한 가문이다. 그러나 그 많던 땅은 그의 아들들에 의해 나뉘고 이후 황금 러쉬 때 사기꾼들의 먹이가 되어 버렸다.
1862년 소노라의 우레스에 거주하던 안토니오 파블로 페랄타는 아들 미구엘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방면으로 금광을 찾아가다 라 파즈 일대에서 금이 나오자 그곳으로 방향을 돌린다. 그러나 그는 1864년 9월 브래드 셔오의 발렌시아나 광산에서 약 3만 5천달러어치의 금을 캤으나 아파치들의 공격으로 광산을 포기한다. 이때 그의 아들 미구엘 페랄타가 그 유명한 아리조나의 토지 사기사건 주범 페랄타-리비스의 최초 공범자 의사 윌링스에게 조상의 하사영지라고 말하고 속이고 피닉스 일대의 방대한 땅을 2만 달라에 판다. 의사 윌링스는 자신의 돈 2만 달러를 되찾기 위해 리비스를 사기사건으로 끌어들였다.
제이컵 왈츠와 위저에게 '슈퍼스티션의 모험담'을 털어놓은 미구엘 페드로 페랄타는 소노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브라스 페랄타는 소노라 일대에서 광산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그의 아들 호세 마리아 페랄타는 이 사건의 주인공 미구엘 페드로 페랄타를 포함하여 7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이 가문에서 운영하던 광산은 점차 사양길에 들어섰다. 더구나 아파치들은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해왔다. 그간 스페인 점령시에는 아파치들에게 생필품이나 위스키 등을 선물하면서 그런대로 평화가 유지되었으나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이런 조약은 무효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 호세 페랄타는 옛날 탐험가 코로나도가 언급한 솔트 강변의 괴기스러운 산 슈퍼스티션 산에 있다는 금을 찾아 대규모 탐광대를 이끌고 나섰다.
슈퍼스티션 산일대에 도착한 호세 페랄타 일행은 몇 군데 지역으로 나뉘어 탐광을 시작했다. 일부는 솔트 강 근방에 광석 분쇄기까지 차리고 광석을 캐내고 일부는 오늘의 골드 필드에서도 작업했다. 그중에서 호세와 그의 아들 페드로와 라몬은 슈퍼스티션 산 깊숙히 들어가 부지런히 금을 캤다. 그러나 아파치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성지에 무단으로 들어와 성지를 모독하는 무례한 외지인을 분노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더구나 영험스러운 산과 지하에 있는 황금을 지키는 '천둥의 신'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