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booked.net

booked.net

booked.net

new1.jpg


쥬리아는 남편 에밀 토마스(Emil W. Thomas)가 현금과 패물, 그리고 값나가는 물건을 챙겨가지고 백인 애인과 함께 달아났다고 호소했다. 쥬리아는 1862년 12월 루이지아나에서 독일과 멕시코 계 혼혈로 태어났다. 쥬리아는 독일말을 사용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 독일어와 영어 두 가지 말이 유창했다. 그녀는 23세때 독일 이민자 출신인 에밀과 1883년 12 월28일 텍사스의 미첼 카운티 코로라도 시에서 결혼, 아리조나의 피닉스에는 1885년경 정착했다. 두 사람은 피닉스에서 자투리 땅 몇 필지를 사고 이후 이곳에 집과 가게를 지었다. 에밀은 1885 년 커피 점을 개업하고 이후 동업자와 함께 비엔나 베이커리라는 빵집을 내었으나 곧 동업자와는 헤어졌다. 에밀은 이 빵집을 이후 고급과자와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파는 과자점으로 바꾸고 이곳에서 서부 해안에서 신선한 굴을 기차로 운반하여 파는 등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에밀은 또한 대리석과 흑단으로 장식한 2천 5백달러짜리 고급 음료수 기계를 구입했다. 에밀이 달아날 때 아직 지불하지않은  음료수 기계값만 2천달러, 그외 여러가지 빚은 쥬리아의 몫이 되었다.


애인과 함께 사라진 쥬리아의 남편 에밀

쥬리아는 평소 왈츠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다. 쥬리아의 하소연를 들은 왈츠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애야, 걱정하지마라, 모든게 잘 될거다."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쥬리아를 거실 벽난로 쪽으로 데려갔다. 왈츠는 벽난로에서 몇 피트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파라고했다. 그곳에서 정제되지 않은 금이 가득 들어있는 작은 굴통조림 통이 나왔다. 금액으로는 대략 8백 달러 어치. 당시 광부들의 하루 임금은 12시간 근무에 3-4달러, 고임금 노동자 방아간 일꾼이 4달러에서 4.5달러였다. 왈츠는 쥬리아에게 이 황금을 처분하여 급한 채무를 갚으라고 했다. 주저하는 쥬리아에게 "황금은 더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라고 위로했다. 이때가 1890년 3월. 에밀은 워싱턴의 센트랄리아로 달아났다. 이후 쥬리아는 땅을 살 때 진 모기지 3백달러, 가계를 차릴 때의 융자금 1천달러 등 많은 부채를 정리했다. 주위 사람들은 쥬리아가 어디서 그 많은 돈을 구했는지 몰랐다.


아직도 슈퍼스티션 산에 숨겨져있다는 전설 속의 황금의 주인공 제이콥 왈츠(Jacob Waltz)는 1810년 독일 Walldorf 지방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839년 왈츠는 존, 뮈리암 두 형제와 함께 가난을 피해 미국 으로 이민길에 오른다. 학자들은 아마도 미국 볼티모어나 뉴 올리안즈를 통해 입국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미국내에서 황금 열풍은 미시시피 등 남부에서 먼저 불었다. 왈츠는 미시시피, 조지아 등에서 광부로 일했다. 1848년 왈츠는 시민권자만이 광권을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미시시피에서 광부로 일할 때 시민권을 신청한다. 곧이어 캘리포니아에서 황금 소동이 일자 왈츠는 캘리포니아로 달려가는 광부들 틈에 끼어 새크라멘토등 여러 곳에서 광부로 일한다. 그의 행적은 이후 1850년의 새크라멘토 센서스, 1860년의 L.A에서 실시한 센서스에 서 찾을 수 있다. L.A에서 시민권을 받은 왈츠는 이후 산 가브리엘 광산, 프레스커트에서 광부로 일하고 1863년에는 동료 4명과 함께 아리조나 야바파이 카운티에 "글로스 로우드"라는 광권을, 1864년9월에는 "빅 레벨" 광권을, 1865 년12월에는 "제너럴 그랜트"광권을 등록한다. 왈츠는 또한 1864년 4월 광산을 습격하는 아파치로부터 보호하여 달라고 주지사 존  N. 굳윈에게 보내는 청원서에 동료 광부 21명과 함께 서명했다. 


160에이커를 분양받아 농부가된 왈츠

왈츠가 피닉스에 정착한 것은 1868년 4월. 왈츠는 당시 막 태어난 피닉스 시의 섹션 16의 4분의 1 즉 160에이커를 분양받았다. 광부 생활을 접은  왈츠는 이곳에 허름한 흙벽돌 집을 짓고 돼지와 닭을 치고 야채를 재배하며 근근이 생활했다. 피닉스는 고작 주민 20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은 촌락이었다.

1870년 왈츠의 경제적 사정이 갑자기 좋아졌다. 그는 이때 실시한 센서스에 정원이 딸리고 별채로 헛간이 있는 가옥 3채에 멕시칸 노무자 9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당시 왈츠의 노년 생활은 평안했다. 그는 말과 노새와 닭같은 가축을 키우며 포도농사도 지었다. 일상 용품은 닭이나 계란 야채를 팔아 충당하고 때때로 현금이 없을 때는 정제되지 않은 금부치로 대신했다. 왈츠의 이같은 모습을 주민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실제 왈츠는 매년 11월 초가 되면 슈퍼스티션 산에 올랐다가 3월중순이나 4월초가 되면 내려오곤했다. 왈츠가 집에서 슈퍼스티션 산까지 가려면 보통 3일이 걸렸다. 노년의 왈츠는 집에서 산까지 가려면 그  중간에 있는 친지의 집에서 쉬었다 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매 번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왈츠는 농장에서 사용한 목재값이며 임금을 금 쪼가리로 지불하고 심지어 노새를 치료하고 수의사에게 지불한 치료비, 하다못해 살롱에서 마신 술값도 금부치로 지불하여 주민들은 그를 점점 더 주목했다. 1884년부터 노년의 그는 더 이상 산에 오르지못했다. 

경제적으로 쥬리아를 도운 이후에도 왈츠는 계속 자신의 농원에서 거둔 계란을 쥬리아게 팔았다. 그리고 그녀의 과자점에서 소일하는 등 두 사람의 친교는 계속되었다. 왈츠는 쥬리아에게 슈퍼스티션의 황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쥬리아도 묻지않았다. 1890년 크리스마스 이브. 쥬리아는 자신의 집에서 세들어 사는 라인하르트 페트라쉬와 함께 크리스마스 정찬을 마련한 후 왈츠를 방문했다. 세 사람은 만찬을 즐긴 후 동쪽으로 난 베란다에 앉아 아리조나의 온화한 12월의 저녁을 즐겼다. 이때 왈츠 노인은 갑자기 슈퍼스티션 산을 가리키며 무심결에 "그것은 솔트 강 산넘어에 있지"라고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라인 하르트는 분명히 노인의 말을 들었다. 오늘의 슈퍼스티션 산을 당시 사람들은 솔트 강 산이라고 불렀다.


홍수에 잠겨버린 왈츠 노인 

이후 왈츠 노인은 조금씩 슈퍼스티션에 숨겨둔 황금에 대해 쥬리아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891년 왈츠는 자신을 할아버지처럼 돌보는 쥬리아와 라인하르트에게 함께 산에 올라가 두 군데에  더 남아있는 금을 꺼내오자고했다. 세 사람은 대략 2월20일 경 산에 오르기로했다. 그러나 슈퍼스티션의 황금을 지키는 "천둥의 신"은 이들이 남아있는 황금을 모두 꺼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들이 산에 오르기 하루나 이틀전 엄청난 홍수가 피닉스 일대를 덮쳤다. 당시 홍수로 물에 빠졌다가 구조된 왈츠 노인에 대해 1891년 2월20일자 '피닉스 데일리 헤럴드'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에드 스카보로후와 헨리 킹과 어떤 사람은 보트를 물이 찬 도시의 남동쪽으로 몰았다. 강을 막은 제방 덕으로 홍수 물에 주저않지 않은 집 지붕에 사람들이 살려다라고 손을 흔들고있었다. 그중에는 피닉스라는 도시의 이름을 지은 대럴 듀파, H. 트위드 등이 있었다. 제방과 면하지 않은 곳에 있는 정육점 주인 그리할바와 제이콥 왈츠, 2채의 멕시칸 가옥, 한 스웨디시의 집은 완전 주저앉았다."라고 보도했다.


당시 81세의 왈츠 노인은 이웃 정육점 집 가축우리 근처에 있는 나무에 매달려 근 이틀 반을 물에 잠겨있다가 이웃 딕 홈스와 쥬리아의 두 번째 남편 알버트 샤퍼에 의해 구조되었다. 곧 보안관 몽고메리와  보안관 보조 배리가 마차꾼이 모는 마차를 몰고 와 빈사 상태의 노인을 라인하르트가 거주하던 쥬리아의 뒷채로 옮겼다. 며칠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왈츠는 그를 간호하던 라인하르트에게 무너진 집터에서 나무로 짠 양초상자를 가져오라고 했다. 상자뚜껑의 경첩은 가죽으로 되어있으나 매우 무거웠다. 왈츠노인은 그 상자를 침대 밑에 두도록 했다.


노인은 이 방에서 근 8개월을 지냈다. 그는 좀처럼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문병을 핑계로 잠시라도 그와 함께 있기를 원했다. 이때마다 쥬리아는 왈츠를 문병하려는 사람들에게 잠시라는 조건으로 "50센트"를 받고 정해진 시간이 지체되면 추가로 50센트를 더 받았다.(계속)


new6.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689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황야에 강물이 흘러흘러 옥토가 되고 (5)- 황무지 '태양의 계곡'에 밀, 보리가 자란다 (상)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5-21
688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변비(便秘: Constipation) 2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5-21
687 [미셸김 원장 칼럼] 흙 냄새를 찾아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5-14
686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황야에 강물이 흘러흘러 옥토가 되고 (4)-댐이 터져 40억 갤런 저수 물에 100여명이 사망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5-14
685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변비(便秘: Constipation) 1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5-14
684 [미셸김 원장 칼럼] 어 머 니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5-07
683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황야에 강물이 흘러흘러 옥토가 되고 (3)-천의 얼굴을 가진 '솔트 강'에 개척민이 모여들다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5-07
682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좋은 대변과 병든 대변 3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5-07
681 [미셸김 원장 칼럼] 아픔 후에 오는 깨달음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30
680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황야에 강물이 흘러흘러 옥토가 되고 (2)-호호캄 족의 옛 수로에 물이 흐른다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30
679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좋은 대변과 병든 대변 2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30
678 [미셸김 원장 칼럼] 인간의 참 모습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23
677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황야에 강물이 흘러흘러 옥토가 되고 (1)-22개의 댐과 저수지로 물을 관리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23
676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좋은 대변과 병든 대변 1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23
675 [미셸김 원장 칼럼] 분노 조절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16
674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두통(頭痛:Headache) 4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16
673 [미셸김 원장 칼럼] 서울,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10
672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두통(頭痛:Headache) 3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10
671 [미셸김 원장 칼럼] 눈물젖은 마들렌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02
670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두통(頭痛:Headache) 2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4-04-02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PC방, 학교,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