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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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캄 인디안들이 사라진 들판에는 더 이상 옥수수의 푸른 잎이 강바람에 쏠려 흐르는 물소리처럼 두런대던 소리도 들리지않았다. 너른 벌판은 다시 전갈과 방울뱀이 몸을 가리는 잡초만 군데군데 널려있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리고 땀을 흘리며 농사짓는 호호캄 족 대신 항상 배가 고픈 인디안들이 먹이를 찾아 짐승처럼 떠돌았다.


15세기 이후 이곳을 찾은 스페인 정복자들이나 선교사 그리고 멕시칸들은 폐허로 변한 호호캄의 옛 수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두지않았다. 심지어 수리공학에 밝은 스페인 사람들도 모두 외면했다. 이렇게 세월도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흘렀다.


유럽인들의 발길이 닿지않던 오늘의 아리조나 땅에 금, 은, 동같은 지하자원이 발견되자 버려진 땅 아리조나는 1863년 2월24일 뉴 멕시코에서 분리되어 아리조나라는 연방영토가 된다. 남북전쟁시 북군의 아리조나 지역 사령관 메이슨(John S. Mason) 장군은 사나운 아파치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고 아파치들을 다스리기 위해 영토 내에 군인들이 주둔할 요새를 세우도록 명령하자 1865 년 9월7일 버어넽 중령은 캘리포니아 민병대 제7연대의 장교 7명 사병 464명의 병력으로 요새를 세운다. 이처럼 요새에 병사들이 주둔하여 아파치들의 발호를 억제하자 솔트 강, 버어디 강과 같이 물이 흐르는 강 주변에는 정착민들이 모여들어 오늘의 피닉스같은 도시가 탄생하게 된다. 맥다우엘 요새는 이후 1890년 9월18일 페쇄된다.


개척민을 보호한  맥다우엘 요새


처음 이 기지는 캠프 버어디로 불리었다. 폭우로 기지가 모두  쓸려간 후 재건하면서 당시 캘리포니아 지역 사령관 어윈 맥다우엘 (Irvin McDowell 1818. 10.15~1885.5.4)을 기념하여 이름을 캠프 맥다우엘로 바꾸고 다시 1867년 맥다우엘 요새로 불리웠다. 맥다우엘 소장은 오하이오 주 컬럼부스에서 태어나 남북전쟁 당시에는 북군의 캘리포니아 지역 사령관을 역임했다.


1864년 초대 주 지사 굳윈과 함께 솔트 강변을 순시한 판사 알린(Allyn)은 "장차 솔트강의 물을 활용하면 거대한 곡창지대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후 1866년 8월 버어디 캠프의 Camillo C.C.Carr 대위는 요새를 방문한 맥다우엘사령관의 명령으로 솔트 강의 물을 황무지로 끌어들여 240 에이커에 옥수수, 콩등의 농작물을 재배했다. 이후 근방에 있는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 4명이 솔트 강의 물사용권을 신청했고 맥다우엘 요새의 장교 3명도 Carr를 따라 메리빌 북쪽 제방쪽에  물사용권을 신청했다. 

1867년 어느 날 스미스(John Y.T."Yours Truly" Smith 1831.9. 19~1903.7.5)는 솔트 강 제방 근처 오늘의 피닉스 밴 뷰런 근방에서 말먹이용 건초를 부지런히 수확하고 있었다. 제방에는 강바람에 푸른 잎을 흔드는 미류나무가 사열을 하듯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제방 위로 마른 먼지를 날리며 낯선 사나이가 말을 몰고 스미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위켄버어그에서 광산업에 종사하는 스윌링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조우하면서 솔트 강변 황무지에는 물이 흐르고 그리고 너른 들판에는 다시 생명이 서식하게 된다.


피닉스 최초의 정착민은 건초 납품업자


스미스는 뉴욕의 버팔로에서 태어나 1853년 일리노이즈에서 소떼 5백마리를 캘리포니아로 이동하는 목동의 일원으로 서부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광부로 그리고 노다지꾼으로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북군에 입대한다. 스미스는 캘리포니아 민병대 제4보병대의 H중대에 배속되어 유마에 주둔한다. 1865년 12월 제대한 스미스는 맥다우엘 요새(당시는 캠프 버어디)에 군수품을 수송하는 마차의 마부 조수가 되어 요새와 인연을 튼다. 이후 스미스는 솔트 강 제방에서 말먹이용 건초를 수확하는 인부들을 감독한다. 스미스는 오늘의 피닉스 근방 강변에 정착한 최초의 비 인디안이 된다.


1867년 스미스는 솔트 강변에 건초 작업장을 마련한 후 근처에 거처도 짓고  소도 몇마리 키우면서 생활했다. 스미스는 맥다우엘 요새까지 다닐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솔트 강 강변에서 수확한 건초를 부대에 납품했다. 스미스는 맥도우엘 요새에서 매점도 운영하고 이후 피닉스에 정착민이 늘어나자 잡화상을 경영하는 한편 킹 울시와 함께 피닉스 최초의 제분소도 운영했다. 이후 스미스는 아리조나 연방영토 재무관과 입법회의 의장까지 역임했다.


우연한 기회에 제방에서 건초 수확을 하는 스미스를 만나본 스윌링은 솔트 강물을 이용하여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고 오늘날의 피닉스라는 도시를 세운다. 스윌링은 위켄버어그로 돌아와 1867년 11월 벌쳐 광산을 개발한 위켄버어그(Henry Wickenburg)등 20명과 함께 200 달러 짜리 주식 50매를 발행하여 자본금 1만 달러의 Swilling's Irrigating and Canals Co.,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솔트 강변의 황무지 개발에 나선다. 처음에는 32명이 사업에 참여하기로 서명했으나 실제 20명만이 참여했다.


인디안 수로를 정비해 피닉스를 세운 '스윌링'


스윌링 (John W."Jack" Swilling, 1830. 4.1~1878.4.12)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앤더슨에서 태어났다. 1854년 인디안 전투에서 머리와 척추에 부상을 당한 그는 일생 고통을 달래기 위해 몰핀과 알코홀을 복용하고 그 후유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스윌링은 1858년 알칸사스에서 짐을 실은 수레를 끄는 황소를 몰고 뉴 멕시코의 메실라에 이른다. 이후 버터필드 우편마차의 요원으로 아리조나에 발을 디딘 스윌링은 특급배달원으로 아파치가 횡행하는 황무지를 말을 타고 달리면서 솔트 강변의 버려진 인디안 수로를 유심히 살폈다. 이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정착민들은 아파치들의 약탈에 대비하여 "힐러 레인저" 라는 민병대를 조직하고 스윌링을 대장으로 추대한다. 남군이 아리조나를 점령하자 스윌링은 남군 중위가 되어 북군 포로를 호송하다 탈출한후 북군의 정찰병이 되었다. 이후 위켄버어그에 정착하여 광석분쇄기를 운영하던중 솔트강의 강물을 황야에 끌어들여 오늘의 피닉스를 이룬다.


개척민들은 당시 솔트 강변 메리빌 북쪽제방 근방의 강물을 사용했다. 이들은 주로 맥다우엘 요새-마리코파 웰과 위켄버어그로 향하는  길이 교차하고 강을 건너는 지점인 솔트 리버 크로싱이라는 지점에 몰려 농사를 지었다. '아리조나 마이너'라는 지역신문은 1867년 7월 "들판에는 풍년을 약속하는 곡물이 파랗게 자라고있다" 라고 당시의 풍경을 이렇게 보도했다.


1867년 11월 공사를 시작한 스윌링은 새 수로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곧 계획을 바꾸어 옛 호호캄 인디안의 버려진 수로를 정비하여 강물을 끌어들였다. 관개수로회사의 주주 3명이 300 에이커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밀, 보리, 옥수수를 재배했다. 이어 6명의 농부가 스윌링의 수로를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1873년까지 스윌링은 5개의 수로를 더 정비하여 수백년간 잡초만 우거졌던 너른 벌판을 옥토로 만들고 오늘을 구가하는 피닉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 주민들과 불화로 피닉스를 떠난 스윌링은 웰스파고 역마차 강도로 오인되어 유마 감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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