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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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한쪽 벽을 장식하다시피한 커다란 TV에 눈을 붙이고서 나는 별 것에서 다 조국을 찾는다 싶었다. 하인스 워드(Heins Ward). 그 이름 어디에도 된장 냄새나 김치 냄새가 나는 구석이 없다. '하인스 킴'이나 '하인스 리'나 '하인스 팍' 정도라면 대뜸 아, 한국 사람이군, 하고 손바닥 마주치는 소리라도 났을 텐데 그는 그 흔한 김씨, 이씨 , 박씨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혀 짧은 미국 사람들이 초이로 발음하는 최씨나, 챙이라 발음하여 중국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씨도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서도, 그의 이름처럼 된장 냄새나 김치 냄새가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백일 동안 햇빛들지 않는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은 곰으로부터 환인한 여인의 배에서 태어난 단군의 자손이라 칭하기에는 정말이지 그의 얼굴은 너무 까맸다. 그는 누가봐도 황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흑인에 가까웠다. 무엇에서 그를 우리 한민족의 울타리로 끌어 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나는 62인치나 되는 커다란 TV화면속에서 뛰고 있는 22명의 선수들 중 그를 찾아내려고 동그란 안경 속의 작은 내 눈에 잔뜩 힘을 모았다.


그가 뛸 때마다 그의 노란 유니폼에 적힌 86번도 함께  뛰었다. 그 숫자 86번마저 애석히도 동방예의지국인 코리아를 떠올리는 구석이 하나없다. 31번이면 삼일절을, 45번은 식목일을, 55번이라면 어린이날이라도 연상시킬텐데 하필이면 86번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노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중 86번을 찾는 데 골몰한다.


"자기, 어느 편 응원해?"


풋볼에 관심이 없는 아내마저 어느새 내 옆에 와서 앉고 있었다. 미국에서는(반세기 이상을 산 나라인데도 미국을 두고 우리나라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직 시민권이 없어서인가? 시민권이 있다손치더라도 미국을 '우리 나라'라 칭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국경일이나 다름없는 '수퍼볼' 날이었다. 풋볼뿐 아니라 스포츠라곤, 그나마 태극기가 가끔씩 TV화면에 내비치는 하계 올림픽이나 동계 올림픽 또는 '대한민국'을 크게 외치는 월드컵 축구밖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내가 태극기도 보이지 않고 대한민국도 들리지 않는 TV화면에 눈을 붙이리라곤 나는 눈꼽만치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런 아내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으며, 어느 편을 응원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내가 어느 편이라고 말한들 그 편이 어느 도시나 어느 주를 대표하는 지도 모를텐데 말이다. '카디날스'가 어느 주를 대표하지? 하고 내가 물으면 아내가 어떤 대답을 할 지 사뭇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피츠버그, 라고 말하는 대신 노란 팀이라고 말했다. 색맹이 아닌 이상 TV화면에서 노란 팀과 녹색 팀을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으니까.


"그래? 자기도 피츠버그 응원하는구나."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TV화면에 붙이고 있던 눈을 아내에게로 돌렸다. 스포츠에 문외한인 아내가 노란 팀이 피츠버그팀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참말로 그것은 영원히 풀지 못할 미스터리였다. 그리고선 나는, 그렇다면 아내는 어쩌면 아리조나를 대표하는 팀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언뜻 했다. 기특한 마누라. 별 것 다 아네.


"하인스 워드가 저 팀에 있지?."


아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것은 나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내는 어느날 갑자기 스포츠 팬이 된 것이 아니라 하인스 워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몇 년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시민권을 받은 아내 역시 여권만 청색이었지(미국 여권은 청색, 한국 여권은 녹색) 나처럼 여전히 단군의 자손이었다. 그리고서 아내와 나는 다정히 붙어앉아 노란 팀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아니 그것은 하인스 워드에게 보내는 박수였고 좀 더 정확히는 우리와 같은 핏줄이 반쯤 섞인 한국인에게 보내는 박수였다. 그의 아버지의 뿌리는 아프리카 어딘 것 같고 그의 어머니의 뿌리가 우리처럼 한반도였다. 뿌리가 뭔지. 민족이 뭔지.  


아내마저 알고 있는 피츠버그 풋볼 팀은 사실 아리조나 사람들에겐 전혀 생소하지 않은 팀이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늘 꼴찌를 도맡아 하던 아리조나 '카디날스' 풋볼 팀이 수퍼볼에 진출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리 먼 과거도 아닌 바로 2년 전이었는데 그때 수퍼볼에 진출한 또 다른 팀이 피츠버그팀이었다. 경기 종료 1 분도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를 역전시켜, 서로 껴안고 승리의 기쁨을 미리 맛보고 있던 우리의 가슴에 찬물을 끼얹으며 승리를 가로 챈 바로 그 원수 같았던 팀. 그 팀을 위해서 지금은 박수를 치다니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적이 내일은 우리 편이 되고 오늘의 우리 편이 내일은 몸서리쳐지는 적이 되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은 것이다.  

  

나는 문득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일본 유학생을 떠올린다. 1983년 겨울, 나는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국을 떠나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그 비행기 안에서 내가 한 번쯤 생각해보았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나의 유학생활을 시작한 오하이오에서 한국에서 보던 겨울 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양의 많은 눈을 보며 겨울을 보내고 나서 나는 대학 컴퓨터실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때 나와 같이 어시스턴트로 일한 학생이 일본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어떻게 해서 우리가 음악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지는 사반세기의 오랜 세월이 흐른 후라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비싸기만 했던 외제 음반이 미국에 와서 보니 절반의 가격도 되지 않아 시간만 나면 레코드 가게를 들락날락 할 때 였으니까 아마도 음악 얘기는 여기저기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단골 메뉴가 아니었을까 싶기는 하다.


"정경화 알아요?"


그 당시 사 모으던 음반 중에 정경화의 음반도 끼여있었고 미국에서 듣는 정경화의 연주는 한국에서 듣던 것보다 더욱 애절하게 들려왔었다. 그 일본 유학생은 정경화란 이름 앞에서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단 일초의 재고도 없이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 유명한 정경화를 모르다니. 넌 음악에 그리 조예가 깊은 것이 아니야.' 그리고 우리의 음악 얘기는 계속되었고 얼마있지 않아 이번에는 그가 내게 물어왔다.


"오자와 세이지는 물론 알겠지요?"


  그때 나는 이것저것 별 쓸모없는 음악의 단편적인 지식을 떠벌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음악에 대해 꽤 알고 있다는 느낌을 그에게 주어서 그가 그렇게 질문을 했는지, 아니면 오자와 세이지가 워낙 유명하니까 나의 음악 지식에 관계없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여겨서 그런 질문을 해 왔는지 그는 내가 오자와 세이지를 당연히 알고 있다는 식으로, 그러니까 확인차 물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고개는 그의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오자와 세이지를 알고 있었다. 그가 지휘하는 것을 한번도 본적은 없었지만 그 유명한 지휘자들, 카랴얀, 번스타인, 주빈 메타처럼 그 역시 '마에스토로'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지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그가 일본인임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카랴얀의 제자로서 그가 미국에서 더 알려지게 된 것은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고나서 부터가 아닌가 싶다. 

   

"아니 모르는데요. 혹시 바이올리니스트?"


나는 한술 더 떠 오자와 세이지가 정경화처럼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지를 묻고 있었다. 그 일본 유학생이, 한국인으로서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정경화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서 아마도 나의 한국인의 긍지가 구겨졌던 것일까. 그래서 나도 지휘자의 세계에선 바이올린 세계의 정경화만큼이나 유명한 오자와 세이지를 몰라야 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그가 나를 비하한다해도 나는 상관없었다. 구겨진 한국인의 자긍심만이 내겐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오자와 세이지를 모름으로써 정경화가 우위에 서고 한국인이 우위에 서고 내가 우위에 설 것 같았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내게는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국위를 선양하는 것만이 애국자의 길은 아닐 터 나는 구겨진 한국인의 자부심을 다름질하듯 빳빳하게 펴는 것으로 그 길을 찾은 듯 하다.  


86번을 앞 가슴에 달고 맹렬히 뛰어다닌 하인스 워드의 노란색 팀은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그것도 한번이 아닌 네 번을 범함으로써 자멸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결과에는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한국인을 어머니로 둔 하인스 워드를 응원하는 순간들만 중요했을 뿐.


산란기가 다가오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몸을 사리지않고 처절하게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요즘 나는 이상히도 자주 한국을 떠올린다. 세계화니 글로벌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이 내 귀에 심심찮게 들어오는 요즘에 고국 어쩌니 뿌리 어쩌니 민족 어쩌니 하며 하인스 워드를 응원하고 오자와 세이지 몰라라 했던 때를 떠올리는 것도 죽을 때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동물의 귀소본능 같은 그런 것은 아닐런지. 

살아온 생보다 살아갈 생이 더 짧아진 생의 한 지점에서 고국을 생각하고 고향을 생각하고 동물의 귀소본능을 떠올리는 것은 머리카락이 더 빠지고 새치가 더 늘어난 이 몸이, 흐르는 세월따라 어쩔 수 없이 밟아가야 하는 인생의 수순은 아닐런지. 

수퍼볼 날 떠올리는 상념치곤 나답지 않게 퍽이나 고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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