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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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너른 방안에는 바르본시토를 비롯한 12명의 부족장들이 둥글게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문채 심각한 표정으로 일부는 나무가지를 성글게 엮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일부는 한줄기 햇살이 화살처럼 어둠침침한 방안을 꿰뚫고 들어오는 갈라진 벽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후 노란수염이 사납게 입주위를 덮은 셔먼 장군이 태펀 대령과 함께 들어서자 부족장들은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바르본시토를 시작으로 부족장들은 긴 담배를 돌려가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후 공중으로 뿜었다. 셔먼 장군도 태펀 대령도 부족장들처럼 연기를 공중에 내뿜었다. 회담이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기원하듯 회담장은 회색빛 연기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회담장 밖에는 수많은 나바호 전사들과 부녀자, 노인들이 모여들어  일부 나바호들은 부족의 영물로 여기는 카요테를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회담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주문을 외웠다.


백인 대장 셔먼 장군은 도착한지 이틀 후 부족장들과 회담을 가졌다. 아침부터 열린 회담은 이틀간 계속되었다. 회담 결과에 따라 나바호들이 옛 고향으로 돌아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에 나바호들은 모두 상기된 모습으로 회담장 주변을 둘러싸고 그 결과를 초조히 기다렸다. 1868년 6월1일 셔먼장군이 거적문을 밀치고 모습을 나타내자 주위는 순간 정적에 빠졌다.


"여러분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셔먼 장군이 특유의 굵은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이여, 나는 여러분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통역을 통해 셔먼 장군의 말이 전해지자 주위는 온통 환성과 기쁨에 겨운 울음으로 가득했다. 일부 나바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겅중거리며 뛰는가하면 일부는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고 일부는 주문을 외워가며 둥글게 둥글게 돌았다. 이렇게 해서 나바호들은 한숨과 눈물 속에 강제로 떠났던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보스크 레돈도 조약이라고 불리우는 셔먼 장군과 나바호 부족장 사이에 맺은 조약은 "이 조약을 서명한 날부터 쌍방간에는 영원히 전쟁을 종식한다."라고 시작된다 이로서 1849년 미국이 나바호 영토를 점령하면서 시작된 나바호와 미국 사이의 19년에 걸친 전쟁은 막을 내렸다. 이번에 맺은 조약을 통해 나바호들은 1864년 3월 강제로 떠났던 옛 고향에 미국 정부가 아리조나와 뉴 멕시코 일대에 마련해준 3,414,528 에이커의 보호구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틀 간에 걸친 회담에서 미국정부는  나바호와 미국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나바호 보호구역 안에는 상주하는 백인 대리인을 두고 나바호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이웃 부족에 대한 약탈과 공격을 금하고 미국은 외부로부터 나바호 부족을 보호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미국은 나바호 영내에 수비대를 두고 필요한 경우 나바호 보호구역안에 철도를 부설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또한 미국은 나바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자립할 때까지 향후 10년간 일인당 년 10 달러 이내에서 식량과 의복 등 생필품을 지원하고 파종할 각종 씨앗과 농기구를 지원한다는데 합의했다. 


나바호 학생 30명당 교사 한명 파견

셔먼 장군과 나바호들은 나바호들이 문명사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나바호의 6세부터 16세까지 어린이와 소년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하고 이를 위해 미국은 나바호 영내에 학교를 세우고 학생 30명마다 교사 1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이와같이 합의를 본 셔먼 장군과 나바호 부족장들은 합의 문에 서명했다. 미국 측에서는 셔먼 장군과 평화 위원회 측에서 보낸 태펀 대령이, 그리고 나바호 측에서는 부족장을 대표하여 전투 총대장 바르본시토가 맨 처음 서명하고 이어 아르미호, 델가토, 마뉴엘리토, 라르고, 에레로, 치퀴토, 무에르트 드 옴브레, 옴브레, 나르보노 세군도와 가나도 무초등 12명의 부족장들이 서명했다. 이어 나바호 대리인 도드와 제3기병대의 로버츠(B.S. Roberts)가 입회인으로 서명했다.

1868년 6월18일 새벽, 7,304 명의 나바호들은 보스크 레돈도의 거친 황무지 저편에 벌겋게 아침해가 솟을 무렵 일제히 고향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간 한숨과 눈물로 바라보던 페코스 강을 끼고 고향으로 가는 거대한 나바호들의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마뉴엘리토는 이후 "떠나는 날이 가까올수록 하루는 왜 그리 길던지. 나는 밤새도록 한 숨도 자지못하고 고향으로 가는 길을 따라 멀리까지 걸어나갔다가 몇번이고 다시 되돌아왔다"고 회상했다.


고향으로 가는 행렬은 10마일도 넘어

고향으로 가는 나바호들이 도중에서 먹을 식량을 싣고 노인이나 어린이를 태운 군용마차 50대는 행렬 중간중간에 배치되었다. 또한 노약자가 탄 1,550여 마리의 말과 짐을 실은 20여 마리의 노새도 함께 고향으로 향했다. 양 950 마리와 염소 1,025마리도 거대한 행렬이 일으키는 하얀 먼지 속을 타박타박 걸었다. 셔먼 장군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나바호들을 배려하여 4개 기병대로 하여금 호위하도록 했다. 나바호 행렬은 무려 10 마일이 넘어 거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6월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가며 거대한 행렬은 물결처럼 하루 10 마일-12 마일의 속도로 서서히 북으로 북으로 고향을 향해 흘러갔다. 나바호 행렬은 안톤 치코와 캐논 브란코를 거쳐 7월4일 드디어 알부퀘키 동쪽 티헤라스 캐논에 이르렀다. 거대한 행렬은 다음날 아침 별다른 사고 없이 조용히 마을을 빠져나오고 7월6일 리오 그란디를 건넜다.

섬너 요새를 떠난지 근 40일 만인 7월 말 일행은 윈게이트 요새 근방에 마련된 새로운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조상 대대로 이유야 어찌되었던 금기시 되던  건너지 말아야 할 큰 강 3개, 푸르코 강, 리오 그란디, 그리고 페코스 강을 건넌 죄로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던 나바호들은 이제 사방에 영산이 있는 옛 고향에 안주하고 자신들을  지켜준 조상에 감사했다. 

떠나는 나바호들의 초라한 행색에 연민을 느낀 셔먼 장군은 워싱턴 당국에 연락하여 이들을 돕기로 했다. 우선 특별 자금 15만 달러를 마련하여 이들이 재활하는데 도움이 되도록했다. 그리고 한 때 50여 만 마리의 양과 염소를 키우고 말 6만여 마리를 키우던 황야의 전사 나바호를 위해 양 15,000 마리와 소 500 마리를 마련해 주었다.


옥수수, 밀, 복숭아 묘목 심고  재기에 나서

나바호들이 옛 고향을 찾았을 때 자신들의 말과 양이 풀을 뜯던 초원은 이미 백인 정착민들의 땅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나바호들은 이에 전혀 낙담하지 않고 너른 계곡에는 옥수수나 밀을 심고 백인 병사들이 무자비하게 베어버린 복숭아 밭에는 어린 복숭아 묘목을 심고 정성스레 가꾸었다. 이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나바호들은 그런대로 추수한 곡식으로 가솔을 돌보며 연명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부지런하게 말과 양, 소, 염소를 돌보자 얼마 후에는 전성기 때인 1840 년대의 모습으로 거의 돌아갔다.

1869년 미국 정부는 장로교 측의 감독아래 나바호 영토 내에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모집했다. 그러나 미국식 교육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하는 나바호들은 학교에 학생들을 보내려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미국 측은 다음 해에 학교 문을 닫았다. 나바호들은 특히 기숙사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을 싫어했다. 시플리 (Dana L.Shipley) 대리인은 나바호 어린이를 강제로 잡아다가 디화이언스 학교 기숙사로 보냈다. 이에 격분한 블랙 호어스라는 전사는 이 나바호 대리인을 반죽음 시켰다.

나바호들은 미국 정부가 마련한 3,414,528에이커의 보호구역으로 돌아왔다. 이땅은 조상들이 내려준 땅의 10%에도 미치지못했다 이후 나바호들은 미국 정부와 계속 접촉하면서 옛 영토를 회복하여 지금은 17,552,000에이커에 173,617(2015년도 현재)명의 부족이 살고 있다. 아리조나의 코코니노 카운티도 1918년 94,000에이커의 땅을 나바호족에게 양도했다.


총인구 17만에  2년제 디네 대학도 운영

1921년 미드웨스트 정유회사는 나바호 보호구역 내에서 유전을 개발했다. 이에 따라 나바호족은 전 부족을 대표할 3권분립 형태의 중앙정부를 결성했다. 현재 대통령은 러셀 베가예. 수도는 윈도우 라크. 2년재 디네 칼리지에는 1,830명의 학생이 등록되어있다.

나바호들이 모두 떠나버린 후 폐허로 변해버린 섬너 요새는 1870년 뉴 멕시코의 목장왕 맥스웰(Lucien B. Maxwell) 이 5,000 달러에 구입한후 방 20개를 갖춘 카우보이들의 숙사로 개조했다. 맥스웰은 이 돈을 1870년 10월10일 당시 국방장관 벨크냅(William W.Belknap)에게 전송하면서 섬너 요새는 영영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1881년 7월14일 아리조나를 비롯하여 뉴 멕시코 일대에 악명을 떨친 서부 제일의 무법자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는 이곳에 은신해있다가 추적해 온 보안관 개럿(Pat Garrett)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의 무덤은 옛 섬너 요새의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끝까지 투항을 거부하던 나바호 최후의 전사 마뉴엘리토는 이후 나바호 부족을 대표하는 부족장 대표와 나바호 부족의 경찰 총장을 역임하고 1894년 76세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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