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월15일, 1945년 이날 대한민국이 일제의 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이기도 하지만 또한 1948년 같은 8월15일은 자주민주 국가로서의 독립을 선포한 날로서 건국기념일이기도 하다. 지난 토요일에 한인회에서 주최한 66주년 광복절 기념행사는 틀림없는 광복절 행사였지만 영문으로는 독립일(Korean Independence Day)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것은 한인회의 잘못이라 할 수 없고 본국에서 조차도 해방된 광복절과 1948년의 건국독립일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늘 광복절만 기념일이라고 축하 행사를 갖는 모순 때문에 빚어지는 역사의 모습이다. 36년간 억눌려 있던 나라가 해방이 되었으니 그 기쁨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으랴. 하지만, 그것도 우리의 힘으로 해방된 것이 아니고 세계 제2차 대전의 막바지에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일본이 항복한 결과로 저절로 얻어진 해방이 아니었던가?
작은 나라, 능력없고, 농경사회에다 세계정세에 어두웠던 한국은 일본의 항복이 아니었다면 그 이후 해방 없이 얼마나 더 많은 일본의 포악한 고역을 우리의 선조들이 견디어 냈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저네들 전쟁에 투입한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징용으로 끌고 가고, 나어린 소녀들을 위안부로 착출해가는 그들의 시퍼런 날이 선 악다귀 같은 그들 앞에 아무도 맞서서 싸울 힘이 없었다. 독립투사들도 지쳤고, 국민들도 지친 상황에서 맛 본 해방의 기쁨을 어찌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대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가?'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이영훈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에 독립기념일은 없다"는 말로 특강을 시작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독립기념일은 원래 있었다. 60년 세월 동안 잊었을 뿐"이라며 바로 여기에 대한민국 현실의 심각한 모순이 있다고 진단했다.
광복절만 되면 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게 한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의 권총을 쏘아 명중시킨 후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체포되는 순간에도 "대한 만세"를 외치던 그의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각인되는 것은 그의 애국충정이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하는 한 개인의 간절한 바람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가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너무도 의연해서 함께 가던 감시관까지도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나 시퍼런 감독하에서도 대한국인(大韓國人)이라는 네글자를 선명하게 썼던 안중근 의사는 너무도 자랑스럽다. 아들의 사형선고 소식을 듣고 감옥으로 편지를 보낸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는 안 의사의 의연함이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거라.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어느 어머니가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이처럼 강인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들이 보고 싶어 감옥으로 면회를 갈수도 있었겠지만 어머니는 다른 아들을 대신 보내면서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하노하노니…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라"고 전했다. 또 사형이 선고된 뒤 편지와 함께 명주 수의를 보냈고, 안 의사는 1910년 3월26일 그 수의를 입은 채 형집행을 당했다.
현세대를 생각해 본다. 국가의 기밀은 물론 한 나라의 군 참모총장을 지냈다는 사람도 군기밀을 팔아 돈을 챙겼다는 이야기는 입이 있어도 말문이 막힌다. 조금만 줄이 있으면 현 고위관리들도 군대를 기피했고 이제는 그들의 자녀들까지도 기피하게 만드는 위인들.
자격도 없는 찌질이들이 편한 자리만 차지하고는 입으로만 정치하고 말로만 국민을 위하는 척하는 위정자들은 안중근 의사의 이름이라도 기억할까?
8월 15일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