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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은 한국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병합된 날이며 일제는 이때부터 본색을 드러내고 한국민을 향한 무단 강압통치를 시작하였다. 이후로 1919년대까지 일제의 무단통치는 한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경제수탈정책은 대부분의 한국민을 빈궁한 소작농으로 전락시켰으며 한국인을 일본화하는 과정에서 교활한 민족적 차별을 자행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암울한 1910~20년대는 오히려 한민족으로 하여금 더욱 강렬하고 조직적인 항일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만든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활동한 국내의 독립운동관련 단체들로는 잔여 신민회세력, 독립의군부, 대한 광복회, 조선국권회복단, 천도교 구국단, 송죽 결사대, 그리고 조선국민회 등이 일제의 감시를 피하여 주로 비밀 결사의 형태로 활동하였다. 

이와 함께 해외에서는 간도에서 무관학교를 세워 사관생도를 배출하는 일이 생겼고 미주에서는 박용만이 국민군단을 조직하여 한인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중국의 동제사, 신한혁명당, 신한청년당 등이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더불어 대한인국민회, 간민회, 대한국민의회 등의 해외 교포단체들이 조직되어 교민들의 독립운동의 구심점을 이루었다.  

이와 같이 한민족에 의한 국내외 독립운동의 활동이 점증되어 갈 즈음 제1차 세계대전의 종언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독립운동 그리고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 선언 등은 그동안 내재되어 온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외적으로 표출하게 만든 촉진원인이 되었다. 

1919년 3월 1일 국내에서 비폭력 평화적 독립운동의 전개를 촉진시킨 예비적 사건들로는 중국 상해에서 활동해온 신한 청년당의 대표인 여운형이 국내에 들어와 국내 독립지사들과 조우한 사건, 1919년 2월 8일에  있었던 재일 조선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서 발표 사건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의 시도들은 결국 1919년 새해 들어 국내에 있는 종교세력들 특히 천도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독립운동을 계획해 오던 것을 범 민족적 대연합 전선을 구성하여 전개하는 흐름으로 결집되는 성과를 이루게 되었다. 

이들 범 민족적 대연합 전선은 독립운동 선언의 거사일을 3월 1일로 정하고 선언서 기초를 최남선에게 의뢰하였으며 교단별로 대표들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대표중에 기독교인이 16명 천도교인이 15명  그리고 불교인이 2명이었는데 이와 같은  독립선언서 서명과정에 이르도록 이면에서 협력한 이들도 기독교인이 8명 그리고 천도교인이 6명에 이르는 점이다. 

이것은 그 당대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세력이 천도교와 더불어 기독교인들이었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사건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미 사전에 전국적으로  조직된 연락망을 통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처음에 기독교와 천도교의 세력이 강한 지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화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비폭력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하였으나 일제의 무자비한 폭력적 탄압에 대항하고자 점차 공공기관을 습격하고 파괴하는 폭력적 시위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민족의 비폭력 평화적 독립운동 시도가 전국적으로 번지며 곧이어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일제는 독립운동 준비과정과 시위과정에 가장 강력하게 조직적으로 가담한 기독교를 주목하고 가장 큰 탄압과 박해를 자행하게 되었다. 

1919년 1년여에 걸쳐 전국적으로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향하여 수십건의 학살과 방화 사건을 일으켜 민족교회를 괴롭히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여러 교회지도자들을 체포하고 투옥하며 모진 고문을 가하였다.

1919년 당대 기독교인은 당시 총인구의 1.5%인 20여만명밖에 안되었으나 3.1운동 관련으로 체포된 자 19,050명 중에서 기독교인이 3,426명에 달하여 17.6%의 가담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그 당대 전국적으로 가장 강력한 조직체계를 가진 민족교회가 항일 민족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민족의 절박한 문제에 헌신하였던 민족종교로서 각인되는 큰 사건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민족의 문제에 몸을 던져 동참하였던  민족교회는 참으로 놀랍게도 1920년 이후 그 자신의 내부적 분열과 함께 민족의  문제에 소홀하거나 반민족적 행태를 보였으며 더나아가 일부는 부일협력도  모자라 변절과 훼절을 자행하기 까지 하였다. 1920년대 이후의 민족교회의 일제에 대한 대응양상의 난맥상은 다음에 상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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