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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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만이 자욱한 곳에서 앞을 내다보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언제 무슨 일이 어떻게 닥쳐올 지 모르는 인생도 그처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이 그러했고 나의 미국 유학이 또한 그러한 것이었다.

6개월 전만 하더라도 나는 어머니가 해 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어머니 품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빨리 장가가서 마누라가 해주는 밥을 먹어야지, 라고 어머니가 강제다시피 날 출가시키지 않는 이상 난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빨던 유아 때처럼 내 의지로는 절대로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었다. 하나 둘씩 늘어가는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친구들이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부럽기는 커녕 너도 빨리 유학 가야지, 라고 나를 재촉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알량한 조국애를 들먹이곤 했었다. 가거라. 너희들 모두 떠나거라. 너희들이 떠난 이 땅을 내가 끝까지 사수하마.

그러나 나는 지금, 25년을 보아온 익숙한 풍경과 사뭇 다른 이색적인 풍경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기숙사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은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그런 풍경들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면 으레 기왓지붕을 얹고 있는 우리 전통의 건물과는 달리 붉은 벽돌을 두르고 있는 백 년이 지난 건물들. 시멘트나 누런 흙이 아닌 파릇파릇한 잔디가 깔린 바닥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이것이 내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단 말인가. 마치 드라마 작가의 작위처럼, 마치 한없이 심심해진 조물주가 장난 한번 친 것처럼 6개월만에 180도 바뀐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앞으로의 나의 운명은 또한 얼마나 요동을 치며 파란만장하게 펼쳐질 것인가.  


내 운명의 드라마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마른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붓듯 어머니의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러웠다. 평소에 혈압이 좀 높으셔서 뇌 속에 있는 수많은 실핏줄 중 어느 하나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위험을 안고 있기는 했어도 한번 쓰러지신 어머니가 다시는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은 어느 한 순간 내게 떨어진 번개 같은 것이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번개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서 숨 한번 돌리기도 전에 끝나버린 것이었다. 영화를 봐도 그렇고 소설을 읽어봐도 그렇고 뇌출혈을 일으킨 사람은 언젠가는 한번쯤 다시 일어난다. 비록 다시 일어난 그 순간이 짧을지언정 다시 눈을 뜨는 그 순간만은 존재했었다. 그러나 나와 영원히 함께 하길 갈망했던 나의 어머니 경우, 그 짧은 순간마저 없었다. 가족들이 제각기 일을 찾아 나간 후 홀로 남겨진 집에서 어머니에게는 쓰러지던 순간만이 있었을 뿐이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언젠가는 써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엄마, 사랑해, 라는 말을 내가 꺼집어낼 짧은 기회마저도 나의 어머니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학교의 정문을 나서면서부터 나는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오늘 저녁은 엄마가 무엇으로 내 입과 배를 즐겁게 해 줄까? 돼지고기를 듬뿍 넣어 얼큰한 김치찌개? 아니면 무우와 파를 뭉텅뭉텅 썰어 넣은 시원한 소고깃국? 그러나 아파트 현관문을 따고 들어오는 내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맛나는 냄새가 아닌 집안을 누르고 있는 무거운 공기였다. 동생은 현관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면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 훌쩍거림이 꽤나 오래 전에 시작되었는지 동생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길게 그어져 있었다.

"형, 빨리 병원가자."

동생은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련하게도 나는 울고 있는 동생의 몸 부위 어딘가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는 줄 알았다. 아픈 사람이, 너무 아파서 초를 다투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사람이 어머니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가 지금 병원에 있어. 중환자실에 있는데 오늘 밤을 넘기기가 힘들데."

나와 동생은 택시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숨이 턱에 찰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 뛰는 데도 내 발걸음은 느리게만 느껴졌다. 엄마가 있는 곳으로 단 한 걸음에 달려가야 하는데 진흙탕에 빠져 헛도는 차바퀴처럼 내 발걸음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았다. 느린 것은 내 발검음만이 아니었다. 

"안됐구만. 내가 최대한으로 빨리 달려볼께."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빨리 달려달라는 나의 울먹임에 50대로 보이는 운전 기사 아저씨는 액설레이터를 최대한 힘껏 밟았을 것이다. 택시에 오르는 우리를 반기던 아저씨의 웃음띤 얼굴도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나 택시 역시 슬로우 모션에 걸린 것처럼 느리기만했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느렸다. 거리에 활주하는 차들도 내가 타고 있는 택시처럼 느렸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걸음 또한 천천히 움직였다. 사람의 마음이 바빠질 때면 그 마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느려지나보다. 누군가는 이것을 상대성 이론이라했다. 그래서 병원으로 빨리 가야지, 하는 내 바쁜 마음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느리게 하고 있는 것일게다. 아, 그러나 바쁜 내 마음보다 정작 더 숨가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심장이었다. 어머니를 수술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의 손길 속에서 어머니의 호흡은 마지막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으리라.  

가까스로 도착한 병원에서 그러나 나와 동생은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의사와 간호원들에 둘러싸인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방문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엄마의 손 대신 중환자실 옆의 보호자 대기실에서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매형의 손이, 의자에 힘없이 앉아있던 누나와 형의 손이 어깨가 축 늘어진 나와 동생의 손을 잡아 주었을 뿐이었다.

보호자 대기실의 공기는 답답하고 무거웠다. 대기실 안의 누구도 웃는 모습을 보이질 않았고 피로가 겹겹히 쌓이고 슬픔에 젖은 힘겨운 모습만 그들의 얼굴에 역력했다. 우리 가족들도 대기실 속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고 그들의 숨소리는 길고 깊었다.

대기실의 모든 것은 정지해 있는 것 같았다. 살아 숨쉬는 것은 TV뿐이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TV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있었다. 침묵을 지키는 대기실 사람들의 몫을 그들이 떠맡은 양 TV 속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목소리는 대기실 안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TV마저도 정지해버리는 것이었다.

누구의 방문도 허락지 않던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며 흰 가운을 입은 의사 한 분이 엄마의 가족을 찾을 때 내가 감지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갈 곳을 잃고 멈춰서고 있었다. 대기실 사람들의 깊은 숨소리가, TV 속 사람들의 왁작거림이,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의사의 발걸음이 멈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멀쩡하던 내 배가 갑자기 아파오기 시작했다. 화장실이 어디 있을까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고개만 돌아갈 뿐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나는 매형 앞에서 입을 떼고 있는 의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띄엄띄엄 내 귀에 들려오는 말은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였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도 들려오는 것 같았고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제서야 화장실로 발을 옮길 수 있었다. 화장실 안에서 나는 배를 움켜쥐고 흐느꼈다. 왜 갑자기 배가 아팠을까. 나는 한참을 화장실에서 배를 움켜쥔 채로 앉아 있었다. 가족들이 나를 찾으러 돌아다닐 정도로 오랫동안 나는 화장실 안에 있었다.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화장실 안에서 내 존재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어머니의 존재처럼 사라지기를 바랐던 것일까. 내가 일어섰을 때 화장실 바닥은 눈물로 흥건히 젖어있었고 언제 아팠냐는 듯 내 배는 말짱해져 있었다.    


어머니의 시신을 땅 속에 묻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나는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떠올렸다. 그때의 내 심정을 솔직히 표현하자면 나는 어디론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 어딘가는 어머니의 숨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어머니의 체취가 묻어있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되어야 했다. 좀처럼 잦아들 것 같지 않은 슬픔을 가슴에 안고 나는 살아갈 용기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유학은 공부를 빙자한 일종의 현실도피였던 셈이다.  

"누나, 한 학기만 도와줘.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것이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처절한 몸부림이였음을 누나는 알고 있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부모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한 순간의 삐딱해진 감정일 뿐이다. 인간은 모두가 부모를 사랑한다. 단지 그들의 부모에 대한 사랑의 크기만 다를 뿐.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각기 다르듯이.

"그래, 네가 엄마를 유난히 많이 사랑했지."

내 손을 잡는 누나의 눈가가 붉어지고 있었다. 그랬을까. 누나의 말처럼 내가 엄마를 유독 많이 사랑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 모두의 가슴에서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조금씩 희석되어 가는 듯 했다. 유치원에 들어간 딸과 막 걷기 시작하는 아들을 돌보는 데 바빠진 누나. 사귀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주말이면 산으로 강으로 내달리는 형. 고3 수험생이 되어 밤낮으로 책에만 눈을 박고 있는 동생. 그들 속에서 여전히 엄마의 존재를 찾아 헤매는 내가 어머니를 더 사랑했다고 할 수가 있을까. 술을 잘 마시지 않던 내가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로 하루를 거르지 않고 휘청대며 집으로 들어서는 내 모습을 보면서 누나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딱 한 학기 뿐이야. 그 이상은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딱 한 학기일 망정 자식이 둘이나 있는 누나에게는 쉽지 않을 자금이었다.    


내가 김민호를 만난 것은 어둠이 두텁게 내려 앉은 저녁 무렵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이나 붙일까 했던 것이 벌써 세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바퀴달린 이민용 가방을 방바닥 한 구석에 세워놓고 책꽂이와 벽장과 창가 사이를 몇 번 오고 가는 사이, 내게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었나보다. 한국을 떠나올 때 입었던 옷 그대로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떴을 때는 밝은 햇빛이 들어오던 유리창으로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과 기숙사 주위 건물들의 불빛이 은은하게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아오던 옆 아파트 건물의 형광등 불빛이 아닌 붉은 불빛이 창밖 저 멀리서 어른거렸다.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이국의 풍경이 물씬 풍기는 창밖을 바라볼 때 비로소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피부에 새록새록 와 닿는 것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에는 어머니의 숨소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보였다. 나의 한숨만이 그 풍경 속으로 간혹 섞이고 있을 뿐.

이제 혼자라는, 완벽하게 혼자라는 생각에 내 가슴이 허전해졌다. 아늑하고 은은하게 느껴지던 창을 타고 들어오는 븕은 등불도 왠지 내 마음처럼 외롭게 느껴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향하던 눈을 거두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 열지도 않은 가방을 방바닥에 그대로 방치한 채 나는 기숙사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1층 라운지에는 대형 TV가 놓여 있었다. 크게 틀어놓은 TV 소리건만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또박또박 대신 웅얼거리듯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소근거리는 듯한 친근한 소리가 그 웅얼거림 속에 섞여 있음을 나는 쉽게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그 소리가 아무리 작게 소근거린다한들 20년 이상을 그것에 단련된 내 귀가 그것을 놓칠 리 없다. 나는 친근한 소리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민호를 찾으세요? 아마 927호일 거예요. 기숙사 방 문에 메모판이 걸려 있어요."

나란히 앉아 TV를 보던 두 사람의 한국 학생들 중 감청색 모자를 푹 눌러쓴 학생이 입을 열었다. 고맙다는 말을 짧게 건넨 나는 방금 전에 내린 엘리베이터 속으로 다시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9자가 적힌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아시안계 여학생이었다.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여학생이 한국 사람임을 직감했다. 여학생의 등에는 책이 잔뜩 들었을성 싶은 가방이 걸쳐져 있었다.

그녀의 가는 손가락은 11이 적힌 버튼을 눌렀다. 그녀와 나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9층과 11층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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