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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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에요,를 연거푸 두 번 말해야 할 정도로 두 살 때를 기억한다는 Y가수의 말에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MC들은 얼른 수긍을 하지 못하는 눈치다. 빼놓지 않고 매주 보고있는 황금어장이란 프로그램에서였고 Y가수는 그날의 게스트였다.

"정말 진짜에요?"

메인 MC는 재차 그녀에게 확인한다.

"진짜라니까."

경칭어 끝음절, 요를 생략한 그녀의 말은 안 믿어면  너 죽어, 식으로 윽박지르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메인 MC옆에 앉아서 입을 다물고 고개만 갸우뚱하던 보조MC는 그 말에 한풀 기가 꺽였는지 나긋한 목소리로 그녀를 거든다.

"하기야 돌잔치에서 집어든게 뭔지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어요."

두 살때의 기억도 믿지 못하겠는데 생후 딱 일년 후의 기억이라니. 설마,하는 표정의 메인 MC 얼굴이 TV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봐요."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로 카메라는 다시 돌아간다.

"제 친구 얘긴데요, 자기 돌잔치에서 돈을 집어들었다던데요? 지금 그 친구 잘 나가고 있어요."

보조 MC를 쳐다보는 메인 MC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나 역시, 친구가 돌잔치를 기억한다는 보조 MC의 말을 거짓이라고 단정해버린다.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에 대한 과학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나의 이런 단정이 순전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기억력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 내 기억이 닿을 수 있는 과거의 끝은 다섯 살이다. 다섯 살은 보조 MC친구가 기억하는 돌이나 Y가수의 두 살과는 상당한 시간의 거리가 있다. 내가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이유로서 매우 타당한 거리다.


초등학교 운동장,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있다. 형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한 엄마를 따라와서 나도 운동장에 서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신입생인 된 형의 나이는 일곱살이고 형보다 두 살 어린 나는 다섯 살이다. 운동장에 줄 지어선 신참내기 꼬마 학생들을 나는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내 손을 잡은 엄마 손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전부며 내 기억은 그날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네 살의 기억과 네 살 이전의 세월에 대한 기억은 내게는 그저 먹칠을 해놓은 듯 껌껌할 뿐이다. 그런데 두 살을 기억하고 두 살도 모자라 첫 돌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니.

기억력을 지능의 척도로 친다면 내가 바보거나 그들이 천재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겠다. 흔히들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 하지만 바보가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억력이 다섯 살까지만 뻗어나갈  수 있는 나는 두 살과 돌까지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바보가 될 수 밖에 없다. 아,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나는 기억력이 짧은 바보가 아니라 하루종일 잠만 잔 바보였다. 종일 잠만 잔 사람이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은, 글쎄, 그리 많지 않을 성 싶다. 가느다란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는 시간만 빼놓고 잠만 잤다고 하니 내가 아무 것도 기억해 낼 수 없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게 여겨진다.


"너같은 애라면 수 십명도 키울 수 있었지."

겨드랑이에 까만 털들이 새싹처럼 연약한 피부를 뚫고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나이로 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열 세살 정도까지, 나는 심심하면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앉으며 내 유아 시절 얘기를 청했다. 그러면 엄마는 늘 너 같은 애라면,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너같은 애의 숫자는 때로는 백 명까지 늘어나는 수도 있었다.

"애기 때는 젖만 먹으면 잤고 젖 떼고는 밥만 먹으면 자는 게 일이었니까 그런 애라면 백 명도 키울 수 있었을 거야. 효자도 그런 효자가 없었지."

내 위로 엄마를 좀처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형, 누나들이 넷이나 있었으니 잠만 자는 나는 엄마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였을 것이다. 세상 최고의 효자라고 기네스북에 올려도 손색 없었을 내 유아 시절의 추억은 그렇게 전부 잠으로 채워진 것이다. 포만감에 못이겨 스르르 눈을 감으면 밥 먹으라고 엄마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울 때까지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꿈 속만 헤맸다. 현실이 불안하던 시절. 4.19가 일어나고 그 이듬해는 5.16이 터지던 시절이였다. 그 시절에 잠자는 것보다 속 편한 것이 어디 있었을라고. 꿈 속의 세계는 현실의 어수선한 세계보다 훨씬 아름답고 재미있는 일 투성이었을거니까.

나의 유아시절은 그렇게 밥과 꿈, 꿈과 밥 사이만을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형이 초등학교 입학을 한 후에야 나는 그 꿈에서 깨어나 다섯 살의 작은 눈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내 또래의 꼬마들이 올망졸망 서 있는 학교 운동장은 꿈 속처럼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키가 나보다 훌쩍 크고 덩치가 나보다 배는 나가는 사람들만 득실거리는 세상이 아닌 나같은 쪼무래기가 옹기종가 모여있는 세상에 나도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걸 내 인생 최초의 자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자각 덕분인지 그날 이후부터의 기억은 마치 두 세달 전의 기억처럼 대체로 선명하다. 나는 내 작은 어깨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있다. 형이 학교 갈 때 둘러메던 가방과 똑같은 가방이다. 그 가방을 손에 얻고자 하루종일 울었던 기억도 선명하다. 눈물자국, 콧물자국으로 얼룩진 얼굴과 연신 들썩이는 어깨. 눈물, 콧물, 들썩이던 어깨는 엄마가 내 손을 잡고 가방 사러가자,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먹고 잠만 자던 애가 울고불고 떼를 쓰니 참 신기하데."

엄마는 그때 나의 존재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으리라. 잠만 자는 존재가 아닌 엄마와 공존하는 세상으로 눈을 돌린 존재. 눈물, 콧물의 대가로 얻어낸 가방을 둘러메고, 학교로 향하는 형과 엄마를 따라 나도 집을 나선다. 내 등을 온전히 덮고도 남는 큰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텅빈 가방? 아니면 연필 한 자루라도 들어 있는 가방? 그러나 가방을 둘러메고 또끼처럼 폴짝대는 기억만 있을 뿐 가방 속 내용물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학교가는 길을 익힌 형이 엄마없이 혼자 학교를 가게 되었을 때 내가 형을 따라 갈 수 있었던 거리의 한계는 동네 어귀까지였다.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나타나면 형은 내게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서럽게 들리던지. 나도 빨리 자라 형처럼 씩씩하게 저 도로를 건너고 싶었다. 그러나 내 키는 생각만큼 빨리 자라주지 않았다. 밥을 두 그릇 먹어치우고 밥풀 하나 남기지 않은 텅빈 밥그릇에 물을 가득 부어 마셔도 키는 느릿느릿 자라기만 했다.

신작로를 건너 사라져 가는 형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나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린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기 직전 동네 골목 끝에 놓인 두 가닥 레일을 달리는 기차 소리에 귀를 모으며 멈춰선다. 기차 유리창으로 내비치는 얼굴들을 향해 고사리같은 두 손을 흔든다. 100여 가구가 빼곡히 들어찬 동네 골목 어디서나 시커먼 연기를 뿜어올리며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를 볼 수 있었다. 학교간 형이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면 나는 집에서 빈둥대던 몸을 이끌고 다시 동네 어귀까지 나갔다. 형을 기다리는 내 귀로 어렴풋이 기찻소리가 들려오면 어김없이 형은 저 멀리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내 작은 발이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기던 동네와 동네를 지나고도 한없이 나아가던 두 가닥의 레일이 아직도 건재함을 확인하던 순간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했다. 


산을 무너뜨리고 논 밭을 메우고 들어서는 아파트 침입에 그 동네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2010년의 해가 거의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걸쭉했다. 뜻밖에도 그 목소리는 같은 동네에 살던 초등학교 친구였다. 어느날 문득 내 생각이 나서 작심하고 내 연락처를 수소문했다고 했다. 거의 35년만이었으니 우리는 물어볼 말도, 들려줄 말도 많았다. 수다쟁이처럼 한 시간이나 전화통을 붙잡고 오고간 그와의 얘기 속에서 다행히 어린 시절의 동네와 철로는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며 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해라. 같이 한번 내려 가보자."

친구도 그곳을  떠나 서울에 살고 있었다. 바쁜 일상 때문인지 그곳으로의 발길이 생각보다 싶지 않다는 친구는 내가 한국에 나올 때까지는 그곳을 찾지 않을 듯이 말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너를 볼 수 있겠지?"하는 그의 말을 그곳을 가보기 위해서라도 빨리 한번 나와,라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당근이지. 한국가면 제일 먼저 너부터 찾는다."    


기억 속에 머무르지 않는 다섯 살 이전의 내 인생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의 손을 거치는 사이에 사라진 가족 앨범 속에 담겨 있었다. 사진기만 갖다대면 울음을 터뜨리는 통에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엄마의 말대로 가족 앨범 속에서 나의 돌사진은 달랑 한 장뿐이었다. 그것도 의젓하게 혼자서 찍은 사진이 아닌 엄마 품에 안긴 채로 찍은 사진이었다. 나의 삶은 그때 많이 행복했음을 그 사진은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사진 속 아기는 카메라 대신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그윽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아기를 두 손으로 껴안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했다.

가족 앨범 속에는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속리산 국립공원이란 푯말 앞에 온 가족이 나란히 서 있는 누렇게 바랜 사진이었다. 나와 세 살 터울인 동생이 엄마 품에 안겨있는 걸로 봐선 내 나이가 기껏해야 네 살 정도나 되었을까? 네 살의 나는 가족과 함께 속리산 여행을 떠났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연약한 다리는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무거워졌고 마침내 아프다고 투덜대면 아빠는 나를 냉큼 들어올려 내 지친 다리를 아빠의 손에서 쉬게 했을 것이다. 왜 그런 아름다운 추억은 내 뇌리 어느 곳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강풍이 그런 흔적들을 모조리 지워버린 듯 희미한 발자국 하나 없이 매끄럽기만한 나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지금 한없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TV속 사람들은 이제 모두 Y가수의 말을 믿는 눈치다. 그녀가 워낙 어릴 때부터 가수 활동을 해왔으니까 어쩌면 그녀는 두 살 때 방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돌 잔치를 기억한다는 보조MC의 친구도 돌잔치에서 돈을 집어 올린 그 기억이 돈 방석에 앉아 있는 지금의 그로 이끈 주춧돌이 되지는 않았을까. 두 살을 기억하고 돌잔치를 기억하는 그들이 부럽기만 하다. 비록 흑백영화처럼 단조롭게 밥과 잠으로 점철된 시간이지만 밥만 먹고 잠만 잤다는 그 시절을 나도 그들처럼 기억하고 싶다.


잠재된 기억을 밖으로 꺼집어 내려고 최면을 거는 행위를 TV로 본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내게 최면을 걸면 내게 잠재된 기억들이 꿈틀거리며 살아나 나는 다섯 살 이전의 나를 만나볼 수 있을까.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있는 한 살의 나를, 내 얼굴을 향하는 카메라가 무섭다고 앙앙 우는 두 살의 나를, 입가에 밥풀을 묻히며 색색거리며 꿈나라로 빠져있는 세 살의 나를, 아빠 팔에 냉큼 올려져 속리산 국립공원으로 향하고 있는 네 살의 나를.

그것이 비록 최면 속이라 할 지라도 기억의 저 편에 머무는 그 시절로 단 한번만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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