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교회 잔디밭에서 뛰어 놀던 어린이들이 지금은 모두 장성해서 몰라 볼 정도로 컸다. 아이들이 저렇게 클 때까지 나는 무엇을 했던가 싶어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니다. 반대로 저 아이들이 성인으로 장성했는데도 우리는 많이 늙지 않았구나 하는 차라리 위로를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아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영어연수를 끝마치고 뉴욕으로 가서 석사학위 두개를 받고 서울로 돌아 간 조카녀석이 있다. 벌써 두 아이의 아버지로 가정을 거느리면서도 이멜로 전해 오는 소식은 자기가 이미 40이 넘었노라는 푸념을 한다. 늘 하는 말은 이곳에서 연수받느라 기숙사에 있었던 시절, 이모와 이모부(우리 부부)가 항상 저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녔다는 기억들,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면서 그 시절이 그립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이렇게 잠깐 사이에 40이 되었고 50이 되는빠른 세월을 누구인들 알았으랴.
아리조나 주정부에서 비영리단체들을 상대로 50 이상 되는 연장자들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현황을 보고해 달라는 이멜이 왔다. "아니, 100세의 수명을 얘기하는 지금 시대에 50 이상을 연장자로 보다니! 말도 안돼!." 통계를 위해 꼭 보내달라는 부탁이니 질문사항에 맞추어서 보내주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그럼, 어쩔꺼야? 가는 세월 붙잡을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이가 찬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서넛만 모여도 하는 얘기들이 예쁘고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전에처럼 사게 되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굵어진 허리 때문에 옷이 맞지 않아 지퍼달린 옷은 피하고 고무줄 달린 옷이 편하다는 말은 이제 산뜻한 옷차림을 하기에는 세월이 그만큼 비켜갔다는 말이다.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이 말을 믿어줄까? 당당하게 외쳐보고 싶다. 나이 먹지 않는 사람 있으면 나와봐!!! 너무 당당하다고 흉이라도 보겠지?
2년전에 여든여섯 살된 일본의 여성 원로작가가 40대부터 80대까지 살면서 느낀 소소한 이야기들로 책을 썼다.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까지 받은 저자였다. 그녀는 "어느새 살찐 중년이 된 나는 옷을 사러 갈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별로 과식하지 않아도 허리 사이즈가 3㎝는 늘어난다. 그럼 또 어떤가. 다만 작년에 입었던 여름옷을 올해도 무사히 입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순리(順理)라는 단어를 생활속의 방편으로 삼고 지낸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만든 방법에 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응하면서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따르는 것이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톡스 주사를 맞아 주름펴기로 환희에 찬 여성들.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무섭다. 값진 인생의 표시로 자리잡은 주름이 보톡스로 펴지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가슴에서 나오는 인간스러움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순리(順理)에 따르다 보면 후회가 없게 만든다.
어찌 세월은 쉴 틈도 없이 달려간단 말인가. 눈가에 지는 잔주름, 내려앉은 눈꺼플, 주름진 얼굴에는 흘러 온 세월과 삶을 지탱하느라 꾹꾹 누르며 살아온 피곤함의 두께가 얼굴에 그늘져 있다. 지나간 것에 연연해 하기 보다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나"를 위해 찾아 떠난다. 그동안 마음껏 보지 못했던 자연을 찾아 자연의 섭리를 배워 본다. 구름같은 인생이라고 탄식했던 인생이 눈앞에 보여지는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 노화현상을 순순히 받으면서 건강식과 웃음으로 차려진 밥상이 더 신선한 노화 개선책이라고 본다. 건강한 뇌를 위해 좋은 생선, 해조류를 먹고 유머를 즐기는 생활, 이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방법으로 건강하고 뜻있게 살아 갈 것인가는 각자의 인생관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종이에 적어 본다. "책을 더 읽으면서 살까,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자원봉사를 해볼까, 그도 아니면 시간없어 배우지 못했던 하고 싶었던 취미를 살려볼까."
다 끝났다 생각하고 손을 놓기보다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인생을 즐기는거다. 지혜롭게, 그리고 아름답고 멋지게 내 인생 후반기의 시작이 울려온다.
8. 29.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