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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 임진왜란은 조선땅에 일본 천주교 신부들의 발을 디디게도 했을 뿐 아니라 일본으로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의 천주교 개종의 시발이 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수는 대략 5만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중 7천여명이 천주교인으로 개종한 것으로 확인되고 그중 빈센트 권이라는 조선 천주교인은 예수회 회원이 되어 조선 선교를 시도했던 일도 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인하여 많은 일본인 천주교인들이 순교당할 때 함께 순교한 조선 천주교인들이 발생했는데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복자위를 받은 자가 9명, 순교자 칭호를 받은 자가 11명에 이른 것으로 기록되었다. 

비록 조선땅안에서의 로마 카톨릭교회의 시작은 아니었지만 일본 내에서 7천여명에 이르는 조선인 천주교인들이 생겼다는 것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한국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의 상흔이 지나간 지 30년이 못되어 조선은 또다시 청국의 침략을 받아 10년간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7)을 겪게 된다. 

이때 청국으로 조선의 왕세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끌려갔다. 청국 수도 심양에서 7년을 지낸 왕세자 일행은 그후 1644년 북경으로 옮겨지는데 거기서 소현세자는 예수회 신부 아담 샬을 만나게 된다. 

아담 샬은 독일인인데 1628년 중국에 들어와 명조  말기에서 청조 초기에 과학자와 신부로서 사역하였고 청조 정부의 인정을 받아 광록대부라는 정1품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소현세자와 아담 샬 신부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상호교우를 갖고 세자가 귀국하기 직전 신부로부터 천문학과 역산에 관한 서책과 더불어 <성교정도> 등 천주교 서적 몇 권과 구세주상의 선물을 받게 된다. 하지만 세자는 천주교 관계 서적과 구세주상은 정중하게 사양하고 돌려 보내었다. 

세자의 동의를 얻어 북경 주재 천주교 선교사들은 귀국길에 동행한 중국 측 궁녀 감독관으로 선발된 환관 5명은 천주교 교인들로 구성하여 동행하게 했다. 

북경 주재 천주교 신부들은 소현세자를 통하여 장차 조선에 천주교의 선교를 희망했지만 세자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조선선교는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선교사들은 조선의 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유럽에 알렸고 이것은 나중에 파리 외방전교회 설립의 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주후 16세기 말과 17세기 중엽에 이르는 기간 서방교회에 의한 조선 국내를 향한 선교적 시도는 무위에 그치고 그 다음 물결을 기다려야 하였다. 


조선의 국학이었던 유학,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성리학의 사색체계는 양대 전란을 통과하면서 조선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노정하게 되는데 이때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중에서 중국에 와있던 서양선교사들과의 접촉이 생기면서 서학과 서양문물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17세기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는 마태오 리치가 북경에서  제작한 것으로 이것을 1603년 처음 조선에  유입한 사람은 이광정이라는 사신이다. 그리고 정두원이라는 사신은 1630년 서양선교사를 만나 천문.역산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서책을 얻어 조선에 반입하였다. 1720년 주청사로 중국을 다녀온 이이명은 북경 천주당을 방문하고 천주교 신부들과 대담을 나누고 돌아왔다. 

비록 이 당대 이들의 서양 선교사들과의 접촉은 종교적인 것보다는 학문적인 성격이었다 할 지라도 그 이후 전개되는 조선에서의 서학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단초였다.  


18세기 들어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서학을 호기심의  차원이 아닌 학문적 차원에서 연구한 사람으로는 성리학자 이익이 있다. 이익에 의한 서학의 학문적 탐구시도는 이후 조선 서학파를 형성케 되는데 이벽, 권철신, 권일신,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이가환 등의 문하생들을 배출케 된다. 이익을 시작으로 한 서학파는 서학의 정신세계에 대한 주된 관심을 보인 반면 이와는 별도로 북경을 다녀온 홍대용을 중심으로 박지원, 이덕형, 박제가 등의 북학파의 태동은 서학의 실용적인 면을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조선사회에 적용하려는 열의를 보였다. 결국 이익 중심의 서학파와 홍대용 중심의 북학파는 후기 조선시대에서 실학운동을 전개하는 양대 흐름이 되었다.

서학파와  북학파에 의하여 서학사상과 문물을  연구하던 조선학자들 중에 서학의 사상적 근거인 서교, 즉 천주학 자체를 수용하려는 흐름이 생기게 되었는데 주로 성호 이익의 문하생들이었던 권철신, 권일신,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이가환, 이벽, 이승훈, 이기양 등이 그들이었다. 

여기서 최초로 천주학이 요구하는 종교적 계율을 직접 실천에 옮긴 이로는 이벽의 제자 홍유한으로 그는 1770년 7일마다 하루씩 노동을 금하고 기도와 금욕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보다 적극적인 천주교 실천모임인 교리연구회의 발족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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