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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범 작가 칼럼]

조회 수 2441 추천 수 0 2011.02.09 12:43:15

yun jon beom.jpg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나있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첫 구절이 느닷없이 머릿속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붕붕거리고만 있는 내 차 앞에 두 갈래 도로가 놓여서인가? 동쪽으로 그리고 서쪽으로. 어느 쪽을 택하든 내 차가 올라탄 도로는 끊어지지않고 집 앞까지 이어진다.

노란 숲은 과연 어떤 숲일까? 반 세기를 넘게 살아온 내 인생에서 노란 숲의 경험은 없었다. 겨울비 자국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는 차 앞유리를 통해 갈라진 도로를 바라보며 나는 노란 숲을 상상했다. 노란 은행나무가 꽉 들어찬 숲을. 나무 사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노란 단풍잎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울창한 숲을.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노랗게 빛바랜 추억의 숲을. 머릿속은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어지는 듯 했다. 혹시 머리카락이 노래지지 않았을까, 차에 부착된 사각 거울로 얼굴을 가져가며 나는 '가지 않은 길'의 다음 구절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첫 구절과 이어지는 다음 구절은 머릿속 어디에도 떠오르지 않았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나있었습니다. 행여나 떠오를까 다시 한번 첫 구절을 속으로 읊어보아도 머릿속은 아무 반응이 오지 않은 채 노란 물만 번져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내 기억의 구석 어딘 가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모양이다. 그 시를 달달 외던 중학교 시절의 추억의 한 조각만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흔들 할 뿐. 두 갈래 도로 위에 구름처럼 덩그라니 떠있는 신호등은 여전히 빨간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빨간 신호등에 길이 두 갈래 나있었습니다.

어느 길이든, 동쪽이든 서쪽이든, 다리를 죽 뻗고 내 한 몸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그곳을 누가 보금자리라 하지 않으리오. 

   

'가지 않은 길'을 흉내내는 나 자신이 마치 프로스트에 버금가는 시인이라도 된 듯한 야릇한 착각이 들어 황량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눈을 앞으로 뎅그르르 돌리며 나는 히죽 웃었다. 동쪽과 서쪽. 어느 쪽이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비슷했다. 집은 동쪽이었다. 그래서 동쪽 도로를 타면 거리는 짧을지언정 곳곳에 걸려있는 신호등이 차의 빠른 흐름을 막았다. 서쪽은 거리는 멀어도 곧장 프리웨이로 연결된다. 부닥칠 신호등은 기껏해야 집 들어가기 직전의 신호등 하나 뿐이다. 쉼없이 달려야하는 것은 내 몸뚱이가 아니라 혼다 시빅이니까 거리의 길고 짧음은 내가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도착시간이 비슷할 바에야. 그런데 로컬 도로에 자주 등장하는 신호등은 사정이 달랐다. 2분이 멀다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신호등이 약속이나 한 듯 줄줄이 빨간빛만 내비춘다면? 한두 번의 빨간 신호등으로는 내 이마가 찌푸려지지 않겠지만 서너 번 연속해서 빵빵 터지는 빨간 불에는 입에서 짜증스런 말까지 흘러나오기 쉬운 법이어서 나는 동쪽을 사양하고 으레 서쪽을 택하곤 했다.


빨간 신호등이 노란 색으로 바뀌었다가 이윽고 파란 빛을 비추었을 때 나는 눈을 한번 껌벅하고는 동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지금같은 동쪽행이 네 달 전에도 일어났음을 상기하며 CD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에 맟춰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탁탁 쳤다. 

10월이 오기 전의 일로 기억하고 있으니 어림잡아 네달 전일 것이다. 퇴근길,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나타나는 두 갈래 도로에 그날따라 차가 몹시도 붐볐었다. 특히 프리웨이로 이어지는 서쪽 도로는 겨우 네 시임에도 불구하고 피난길을 방불케하는 많은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렇다 한들 나는 조바심날 게 하나 없었다. 서둘러 귀가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세월이 가도 좋았고 세월이 와도 좋았다. 느긋한 마음으로 등받이 높은 운전석에 몸을 파묻으며 일에서 풀려난 샐러리맨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켜놓은 FM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솜털처럼 부드러워 나는 그야말로 감미로운 시간을 좁은 차 안에서 오롯이 즐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굳이 차량이 뜸한 동쪽 도로를 타야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내 차가 길게 늘어진 차량의 행렬에서 빼꼼히  빠져나와 동쪽 도로를 타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동쪽 도로를 타고 말았고 차량이 뜸한 도로를 탄 덕분에 나는 비싼 통행료를 톡톡히 지불해야했던 것이다.  가뭄에 콩나듯 가끔 타는 동쪽 도로에 나의 '속도'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하나 있다. 

속도. 속도라는 말이 나오면 언제나 내 귀가 번쩍 뜨인다. 나는 속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골프를 싫어할까. 내 나이 또래면 대부분이 즐기는 골프에 나는 두손 두발 다 들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어슬렁 어슬렁 걸어다녀야 한다는 것. 길게 뻗어 나가는 골프공을 쫓아 뛰지 않고 왜 어슬렁어슬렁 걸어야 하는지. 어슬렁 어슬렁이 아니라 빠르게 걷는 것이라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뛰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어슬렁 걸음이다. 골프공을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올린 후 걷지않고 뛰어간다면 골프도 지금쯤 틀림없이 나의 애종목이 되어 있을 것이다. 테니스나 탁구처럼.


빠르게 뛰지 않으면 공을 놓쳐버리는 테니스는 벌써 30년 전에 나의 애종목이 되었고, 정신을 바짝 차려 몸을 잽싸게 놀리지 않으면 총알처럼 빠르게 공기를 가르는 작은 공을 맞출 수 없는 탁구는 시작한지 불과 3개월 남짓인데도 벌써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되어버렸다. 테니스와 탁구에는 그렇게 몸을 속도있게 움직여야 하는 공통분모가 있는 것이다.  


동쪽 도로가  내 속도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다름아닌  프리웨이를 타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로컬만 타도 집에 도착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문제는 프리웨이를 타는 것에 비해 5분 늦게 집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5분 빠르게'가 나의 속도 신경을 자극한 셈이다. 나는 동쪽 도로를 탈 때마다 이 '5분 빠르게'를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었다. 그것도 1, 2년이 아닌 무려 5년간을. 그런데 '5분 빠르게'가 요구하는 것이 단 하나 있었다. 바로 U턴 이었다.

5분 빨리 집에 도착하려면 로컬을 달리다가 다시 프리웨이를 타야하는데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프리웨이를 타려고 늘어선 차량의 행렬이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 행렬의 꽁무니에 차를 세우면 5분 빠르게는 고사하고 돼려 5분 늦게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래서 내 속도 신경이 발견해 낸 것이 바로 U턴이었다. 길게 늘어선 차들의 꽁무니에 차를 대지말고 좀 더 내려와 U턴을 해서 올라가면 아무 기다림없이 바로 프리웨이로 올라갈 수 있었다. 퇴근 시간에 피닉스에서 내려오는 차량은 많은 반면 템피에서 올라가는 차량은 드문 현상이 빚어낸 결과였다. 네달 전 그날까지만해도 나는 그 U턴을 아무 탈없이 해오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늘 해오던 대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차량 행렬을 유유히 지나쳐 U턴을 했다. 그런데 그날 악몽을 꾸지도 않았는데, U턴을 하는 순간 내가 마주한 것은 프리웨이를 오르는 도로가 아닌, 검은 색으로 치장한 경찰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에서 내려선 경찰관은 U턴하는 사람들을 자기 앞에 하나하나 세우고 있었다. 투덜대며 정차하는 내 차 앞에는 두 대의 차량이 벌써 도로의 오른편 가장자리로 세워져 있었고, 그러니까 내가 세 번째였고 나를 따라돌던 뒷차도 나처럼 차를 투덜투덜 정차시키고 있었다.

"저기 U턴 금지 표시판이 보이지요?"

까만 선글라스를 쓴 경찰관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거짓말처럼 U턴 금지 표시판이 서 있었다. 아니,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정말이지 내게 그것은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듯 새로운 것이었다. 저 표시판이 정녕 5년 전부터 죽 있어왔단 말인가?  

 "저게 언제부터 있었어요?"

내가 작은 눈을 소 눈처럼 크게 뜨며 물었다.

"아주 오래, 오래 전부터."

경찰관은 귀찮다는 듯 나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오래'를 두번 씩이나 말했다. 거짓말하는 경찰관은 없을테고 또 있어서도 안되지만 나는 경찰관의 코를 뚫어지게 쳐다보아야했다. 거짓말하면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코처럼 혹시나 경찰관의 코가 길어지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경찰관의 코는 콧등이 높은 채 그대로였다.


지난 5년 동안 내 기억 속에 머무는 U턴 금지 표시판은 그곳에 없었다. 세상이 통채로 흔들릴만큼 머리를 세게 흔들어봐도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표시판이란 찿아볼 수 없었다. 내 뒤로 아직 차량 세 대가 밀려있어 무척 바빠하는 경찰관에게 교통위반 티켓을 받아들며 나는 저 멀리로 보이는 표시판으로 다시한번 눈길을 주었다. 아주 오래된 고목처럼, 왜 자기를 보지 못했는지 약올리기라도 하듯, U턴 금지 표시판은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서 있었다. 

 두 갈래 길 중 동쪽을 택한 오늘도 나는 프리웨이로 올라가는 도로에 늘어선 긴 차량의 행렬을 유유히 지나쳤다. 네달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날, 경찰관이 가리키던 모습 그대로 서 있는 U턴 금지 표시판이 이젠 내 눈에 또렷히 들어온다는 것. 내 차는 그 표시판마저 지나친다. 그리고 반 블럭을 더 내려가서야 나타난 신호등에서 천천히 U턴을 했다. 덕분에 '5분 빠르게'가 '4분 빠르게'로 되었지만 나는 표시판을 볼 수 있음에 하얀 미소를 짓는다. 5년 동안 보이지 않던 표시판이 이제 보이기 시작한 것, 그것은 바쁜 일상을 핑계로 소홀히 하기나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라는, 교통위반 티켓을 받아들던 순간 내 가슴으로 스며들던 교훈이었다


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나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프로이트의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빨간 신호등에 길이 두 갈래 나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나의 시는 이렇게 끝을 맺으면 어떨까 한다. 

   

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숨을 돌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빨간 신호등에  두 갈래 길이 나있었다고.

나는 차량이  드문 동쪽 길을 택했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노라고.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라는 교훈이라. 그래, 이 글을 끝내기 전, 방 안을 한번 둘러보자. 언제던가, 딸은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가족 그림을 그렸다. 딸에게는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는 것보다 연필을 놀리는 것이 더 신나는 나이였을 것이다. 자신을 가운데 세우고 고사리같은 두 손을 양 옆에 서 있는 엄마 아빠의 듬직한 손과 연결시킨 그림. 그 그림을 동그랗게 담고있는 액자가 책장의 선반 위에 세워져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보지 못한 교통 표시판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보던 내 눈은 그곳에서 한참을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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