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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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채에 잘못 맞아 날아간 세 개의 오렌지색 탁구공이 수영장 안에 둥둥 떠 있었다. 나는 팔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내 팔이 탁구공에 닿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내 팔은 원숭이의 팔처럼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팔을 뻗는 대신 마당에 놓여있는 그물채를 집어들었다. 

그물채에 걸려 올라온 탁구공을 바구니 속에 집어넣고 탁구대 옆에 놓인 갈색 플라스틱 의자를 수영장 앞으로 끌고와 앉았다. 밤하늘에는 크고 작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었다. 저 별들은 서울의 밤하늘에도 저렇게 박혀 있을테지. 크고 작은 저 별들이 사라지고 내일의 붉은 태양이 떠오르면 서울로 나들이갔던 아내와 딸은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의 '002 프로젝트'는 막을 내리는 것이다.  3주 전, 장확히는 3주에서 하루가 모자라는 20일 전에 나는 혼자가 되었다. 아내와 딸이 서울로 떠난 텅빈 집에서 나는 진공 청소기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아내의 눈길과 목소리가 집 안에 머무는 평소대로라면 진공 청소기는 벌써 세 번은 돌아가야했다. 대신 내 몸이 바닥을 쓸었다. 혼자가 된 나는 죽은 듯이 지내고 싶었다. 그림자처럼 바닥에만 나의 체취를 묻히며 살고 싶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싸지도 않으면서. 가능하다면 숨도 쉬지 않으면서. 그러나 그것은 일주일이 한계였다.


일주일을 바닥에서 뒹굴고 난 후 나는 감옥에서 출옥하는 사람처럼 초췌한 모습으로 마당으로 빠져 나왔다. 머리는 강풍이라도 만난 듯 마구 헝클어져 있었고 며칠간 씻지 않은 몸은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 근질거렸다. 햇빛은 왜 또 그리 눈에 부시던지. 나는 이마에 손을 올리며 햇빛을 차단시켰다. 얼굴에 와 닿는 찬 바람이 다소나마 시원히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슬리퍼를 신은 발을 질질 끌며 나는 마당을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쉬지않고 또 한바퀴, 그리고 또 다시 한바퀴를 돌았다. 사실 몇 걸음 떼지않아 담을 보게 되는 작은 마당이라 쉴 필요가 없었다. 빙빙 돌아서인지 어지러워오는 머리를 진정시킬 요량으로 바닥에 끌리던 발을 멈추었다. 다행히 어지럼증은 발을 멈추는 순간 바로 사라지는 듯 했다.

어지럼증이 가시고나자 패티오의 그늘 안에 들어앉은 탁구대가 눈에 들어왔다. 탁구대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비록 이름도 없는 싸구려 탁구대일망정 나는 그 탁구대에게 잠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인연이란 것은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숨쉬지 않는 물건에도 기꺼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제조회사의 이름조차 모르는 이 싸구려 탁구대는 나와 인연이 있는 것이다. 그 인연이 얼마나 오래되고 깊은 지는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원래 우리집으로 배달되기로 한 탁구대는 이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디서 오는지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나와의 인연이 이 탁구대를 우리집으로 불러 들인 것이 분명했다. 

지난 해 10월에 열린 아리조나 교민 탁구대회에서 전패의 수모를 당하고 나서 나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었다. 주말이면 대략 아침 10시까지 침대에서 뒹구는 내가 아홉 시가 되기도 전부터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는 그런 치욕스런 참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뭔가를 해야했던 것이고 집에 탁구대를 들여다놓는 것은 그 전패 모면의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스티가(Stiga)'가 좋은 브랜드였는지는 그땐 알지 못했다. 스티가는 '나이키'라든가 '윌슨'처럼 내 귀에 익숙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아니,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탁구를 치다보니 곳곳에서 스티가를 만나게 되었다. 탁구채, 탁구 라버, 탁구 네트, 그리고 탁구대까지. 그러니까 스티가는 탁구의 세계에서는 나이키였고 윌슨이었던 것이다. 

피닉스 7번가의 어느 집 안에 탁구대가 놓여있었다. 그 탁구대 옆면에 쓰인 단어가 바로 스티가였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낸 탁구대를 보러가려고 전화를 했을 때 전화통에 대고 빨리 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애교스런 협박을 한 집 주인은 나를 반갑게 맞으며 거실 한쪽 구석에 놓인 탁구대로 나를 안내했다. 파란 탁구대였고 탁구대 옆면에 하얀색으로 'STIGA'라고 적혀 있었다. 첫 눈에 반했다는 말을 물건에 시용해도 무난할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파란 색이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파란 탁구대는 첫 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겠다는 내 말을 듣고 집 주인은 탁구대를 반으로 접었다. 마치 종이처럼 뚝딱 반으로 접혀 세워진 탁구대를 벽 한쪽 구석으로 밀고 가면서 집 주인은 운반할 트럭이 있냐고 내게 물었다.


"Truck?"

나는 반문하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Well, then it will be delivered this afternoon. (그러면 오늘 오후에나 배달되겠군요)"


집 주인도 트럭이 없었다. 옆집 사람의 트럭을 이용해야되는데 지금 당장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트럭을 부리는 옆집 사람은 나보다 한 술 더 떠고 있었다. 그 사람의 주말 기상시각이 나의 기상시각인 아침 10시를 한참이나 지나는 오후였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새색시 들이는 심정으로 탁구대가 들어앉을 거실 구석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설쳐대 몸이 피로해져서인지 정오가 가까워 온 시각에 점심식사보다는 침대 생각이 먼저 났다. 침대로 기어들은 지 얼마가 지났을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을 때 나는 그것이 꿈결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녕 이승의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Sorry부터 외치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배달되던 파란 탁구대가 트럭에서 추락했다는 것이다. 추락하면서 탁구대 어딘가가 망가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Sorry를 외치며 탁구대 주인은 전화를 끊었다. 탁구대가 들어앉을, 말끔히 단장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오후에나 일어난다는 그 옆집 사람을 원망했다. 빌어먹을. 잠이 덜 깬 상태로 운전했나?   

나는 다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때 내게 걸려든 것이 지금의 탁구대였다. 이번에는  초록색이었다. 그 탁구대를 처음 보는 순간 칠 만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집 안에 들여다 놓을 정도의 새색시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탁구대 두께가 너무 얇아 옆면에 브랜드 이름을 써 넣을 자리조차 없는 빈한 탁구대였다. 그러나 나는 배달을 부탁했고 아침 잠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깡마른 청년은 이번에는 추락사고없이 녹색 탁구대를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장소까지 무사히 배달해 주었다. 나와 이렇게 인연이 닿은 탁구대는 집 안이 아닌 바깥 패티오에 둥지를 털었다.


비록 볼품없고, 싸구려고, 또한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이 아닌 녹색 탁구대였지만 나와 아내는 하루가 멀다하고 탁구대 위에서 볼을 똑딱거렸다. 교민 탁구 대회에서 전패를 당한 내 실력과 탁구채를 밥숟갈 떠듯이 위로 올리는 아내의 실력으로는 똑딱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빠른 '따닥 따닥' 소리가 아닌, 느려터진 '똑 딱 똑 딱' 소리. 그 소리일망정 아내와 딸이 인천행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계속 마당에서 울려 퍼졌었다.     

일주일 사이에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탁구대를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집에 혼자 남겨진 시간. 이것은 내게 다가온 절호의 기회다. 나의 탁구 실력이 날개를 달고 비상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혼자 남은 집 안에서 빈둥빈둥 몸으로 바닥만 쓸지말고 아예 탁구대를 껴안고 살자. 탁구대에 탁구공 자국을 무수히 남기자. 싸구려니까 더 잘 된 일이다. 아낄 필요없다. 마구 남용하자. 치고 또 치자. 탁구대에 빵구가 날 때까지. 명명하여 '002(2주간) 프로젝트'.     

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주 전 내가 탁구대를 샀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러면 시간날 때 전화하라는 K의 목소리가 어찌나 감미롭게 상기되던지. K는 지난 번 교민 탁구 대회에서 내가 전패를 당하는 동안 한번도 패함이 없이 전승을 하여 결승전까지 진출했었다. 또 다른 K가 버틴 결승전에서는 역부족이었지만 K가 내 스승이 되기는 충분했다.

K는 우리 집을 세 번 다녀갔다. 비 오기가 쉽지 않은 아리조나에서 비가 내리던 날도 그는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수영장으로 떨어지던 겨울비 소리는 탁구대에서 흘러나오던 경쾌한 소리와 절묘한 화음을 이루며 마당을 가득 채워 나갔었다. 

나는 또  다른 스승을 물색했다. M은 테니스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미국 오기 전 한국에서 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수년 간을 매일이다시피 탁구를 쳤다는 M의 말을 상기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와 테니스를 치던 중간중간 나누던 대화에서 가끔씩 그의 탁구 역사가 끼여들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그가 탁구채를 휘두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테니스를 치는 것만 봐도 그의 탁구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테니스를 치는 폼이 딱 탁구 폼이었던 것이다. 내가 탁구를 테니스 치듯 그는 테니스를 탁구 치듯 했다. 테니스채를 휘감지 않고 위로 쭉 뻗어올리는 M은 영락없이 탁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내 테니스 실력만큼이나 탁구 실력을 갖춘 것이 분명했다.

M은 테니스장 대신 우리 집으로 차를 몰았다. M은 한동안 탁구채를 잡아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떡 주무르듯이, 요리사가 도마 위에서 야채 썰 듯이, 손쉽게 요리했다. 그 말인즉은 내 예상대로 M도 K처럼 나의 스승이 되는데 조금의 손색이 없었다는 것이다.


"손을 너무 오른쪽으로 빼지 말아요." K의 지적이었다.

"상체를 좀 덜 움직여보세요." 이번에는 M의 지적이었다. K나 M은 똑같이 내게, 테니스가 아닌 탁구를 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탁구는 탁구답게 치라는 것이지요?"


   스승의 부재 시간에도 나는 가만 있질 않았다. 탁구대 한쪽을 접어올렸다. 벽처럼 올려간 탁구대는 또 다른 스승이 되어 주었다. 두들겨도 두들겨도 벽을 맞고 되돌아오는 조그만 탁구공 앞에서 나는 혀를 길게 빼고 숨을 할딱거려야했다. 나는 그렇게 혼자 남겨진 시간을 탁구대와 함께 보냈다. 2주 동안, 글 쓰는 것도 잠시 잊은 채 탁구대 앞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내게 탁구를 탁구답게 치는 법을 일러준 셈이다. 어린 시절 즐겨쳤던 탁구를 손에서 놓고 테니스채를 휘두르던 지난 30년 동안 테니스 속으로 묻혀버린 나의 탁구를 어느 정도의 선으로 복원시켜준 셈이다. 그 시간은 또 탁구 뿐만 아니라 내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시간이기도 했다. 탁구를 탁구답게 쳐야하듯이 나는 나답게 그리고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야함을. 그래서 인생은 전혀 굴곡지지 않고 물 흐르듯 유유히 흘러가야함을.


아마도 그물채로 건져 올린 세 개의 탁구공이 수영장에 빠진 마지막 공이 될 듯 하다. 아내와 딸이 한국에서 돌아오면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또 다시 똑딱 똑딱 소리일테고 그 똑딱 소리로는 탁구공을 멀리 수영장까지 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똑딱 소리는 예전에 내 귀에 들려오던 똑딱 소리와는 다름이리라. 똑딱 똑딱이 '답게 답게'로 들려올 것만 같다. 

탁구는 탁구답게. 테니스는 테니스답게, 글은 글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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