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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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군과 남군 사이에 벌어진  살육전은 엉뚱하게도 그 불꽃이 나바호 족에게 떨어졌다. 막강한 남군의 대부대가  텍사스를 출발하여  노도처럼  뉴 멕시코로 진격하자  북군 측은  황급히  캘리포니아 주둔군 사령관 칼튼 대령애게  민병대를 모집하여 뉴멕시코의  캔비 대령을 지원하라고 명령한다. 1852년부터 6년간 뉴 멕시코의 황야에서 나바호를  비롯한  여러 인디안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칼튼 대령은 나바호  전부족을 죽음의 땅  바스크 레돈도로 강제로 이주시키기로 작심한다. 이제는 저항할 힘조차 없는 나바호 부족들은 멀고 먼 죽음의 땅 보스크 레돈도 즉  "미류나무 숲"이라는  페코스 강변의  황량한 벌판으로 무작정 끌려간다. 


폰틀로이 대령 후임 로링 대령마저 남군 측에 가담하자 북군의 뉴 멕시코 지역 사령관이 된 캔비 대령은 병사들이 남부로 떠난 후 남아있는 병사들을 추스려 다시 부대를 꾸몄다. 그러나 병사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뉴 멕시코 일대는 약 18개월 계속된 가뭄으로 지역경제는 피폐하고 전쟁으로 인심은 흉흉했다. 또한  병사들은 6개월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같은 최악의 상태에서 캔비 대령은 남아있는 병사들을 추스려 부대를 다시 꾸리고 밀려오는 남군과 싸워야했다.


남군으로 떠나고 남은 병사를 추스려  남군과  결전

북군의 푸른 제복 대신 남군의 회색 군복으로 갈아입고 남군의 별하나 준장이 된 시블리(Henry H.Sibley) 장군은 남부연맹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즉 뉴 멕시코와 아리조나로 진격한 후 육상으로 캘리포니아를 점령하고 서부 해안 1,200 마일을 봉쇄한 후 유럽과 직접 교섭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점령지의 풍부한 인적자원을 통해 부족한 병력을 충원한다는 원대한 계획도 세웠다. 당시 뉴 멕시코에는 아직도 박해를 받는 몰몬교도가 된 유타족을 포함하여 주민은 대략  86,000여 명으로 추산했다. 또한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에는 노다지를 찾아 많은 광부들이 몰려들어 남군 측에서 모자라는 병력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군 측에서는 또한 뉴 멕시코 일대에는 많은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어 이 지역은 기필코 손에 넣어야만 했다.


2개연대로 남군 대부대와 맞서

1861년 9월 시블리 장군은 3,500여 명의 병력을 앞세워 텍사스를 떠나 뉴 멕시코 공격에 나섰다. 북군 측은 이에 대비하여 캔비 대령에게 시급히 4개 연대를 편성하여 방어하도록 했다. 병력 재편에 나선 캔비 대령은 간신히 14개 규모의 병력을 마련했으나 병사 대부분은 군경력이 고작 6개월 미만의 신병이었다. 캔비 대령은 모병한 병력을 2개 연대로 편성하고 제1여단장에는 유타 인디안 대리인 '킷'칼손(Christopher 'Kit' Carson)을 임명했다. '킷' 칼손은 당대 제일의 탐험가로 그는 일찌기 산사나이로 이름을 날리며 로키산맥 탐험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제2여단장에는 산타 페의 저명한 정치인이며 저술가인 피노(Miguel Pino)를 임명했다.

캔비 대령은 자신의 병력으로는 노도처럼 밀려오는 남부군을 저지할 수 없다고 보고 서둘러 콜로라도로 달려가 모병을 하는 한편 상부에 더 많은  병력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자 캘리포니아의 칼튼 대령이 캘리포니아의 민병대를 이끌고 다려온다. 

남부군에 맞서 캔비 대령은 전략적으로 고립된 폰틀로이 요새에 주둔한 병력을 남부군의 예봉에 맞서 필로아와 스탠튼 요새 근방으로 집결시켰다. 그러나 급조한 캔비 대령의 북군은 시블리 장군이 이끄는 막강한 남부군의 적수가 되지못했다. 곧 필모아 요새가 적의 손에 떨어지고 병사들이 포기하고 달아난 스탠튼 요새도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뉴 멕시코의 중심인 알부퀘끼와 산타 페는 남부군이 차지하게되었다. 


글로리에타 전투서 남부군 대패

그러나 그 여세를 몰아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를 차지하고 캘리포니아 연안을 봉쇄하여 북군을 고립시킨다는 남부 연맹과 시블리장군의 원대한 꿈은 캘리포니아 민병대의 칼튼 (James H.Carleton) 대령과 콜로라도 민병대의 슬러프(John B.Slough) 대령에게 1862 년 2월 텍사스의 글로리에타 패스에서 패하면서 물거품이 된다. 

북군과 남군이 혈전을 벌이면서 병사들리 전장으로 빠져나간 대서부에는 인디안들의 약탈이 끊이지않았다. 뉴 멕시코를 중심으로 황량한 대서부 서쪽에는 나바호들이 마음대로 활개치고 다니면서 약탈을 일삼고 동쪽지역은 사나운 메스칼레로 아파치들의 세상이되었다. 또한 남쪽 지역은 코만치족과 키오와족이 차지했다.

1862년 가을, 일단 서부로 진출하는 남군을 막은 칼튼 장군은 이제 마음대로 약탈을 일삼는 나바호족이나 아파치부족을 진압해야했다. 남부군의 캘리포니아 진출을 성공리에 억제한 캁튼은  1862년 별하나 계급장을  달고  준장이되어 뉴 멕시코 지역 사령관이 되었다. 


"눈에 뛰는 인디안은 즉시 사살하라"

1852년 뉴 멕시코에서 6년을 복무한 칼튼은 누구보다도 나바호족과 메스칼레오 아파치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칼튼은 살인과 약탈을 죄악시하지 않는 풍습을 지닌 나바호 족이나 아파치 부족은 전쟁대신 이들을 분리 수용하여 문명인으로 교화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바호족의 보호구역 안에 있는 지하자원을 개발하려면 반드시 이주시켜야한다고 생각했다.

1852년과 1854년 두 차례 페코스 강 주변의 보스크 레돈도 일대를 직접 밟은 적이있는 칼튼 장군은 이곳에 인디안들을 집단 수용할 요새를 세우기로 마음 먹었다.


칼튼 장군은 우선 칼슨 대령에게 제1 뉴 멕시코 민병대의 5개중대를 이끌고 지금은 아파치의 소굴이 되어버린 스탠슨 요새 일대를 탈환하도록 명령하고 여타 부대는 칼슨 부대를 지원하도록했다. 

1862년 10월11일 칼튼은 지금은 아리조나 지역 사령관이 된 옛 부하 웨스트 (Joseph  R. West) 대령에게 캘리포니아 민병대의 제1 기병대 2개 중대와 20명의 뉴 멕시칸 정찰병을 동원하여 도그 캐넌을 따라 동쪽과 남동쪽에 있는 아파치 소굴을 공격하도록했다. 또한 칼튼은 칼슨 부대의 로버트와 피션 두 대위에게는 날쌘 프에블로 정찰병과 뉴멕시칸 정찰병 20명을 데리고 북쪽 지역에 산재한 아파치 소굴을 공격하도록했다. 칼튼 장군은 지휘관들에게 "아파치들과는 대화가 필요없다. 언제 어디서나 눈에 뛰는 아파치들은 현장에서 사살하라. 단 여자나 어린이는 살려주는 대신 생포하라"고 엄하게 명령했다. 


인디안 수용소  페코스 강변에 설치 

칼튼 장군의 협공이 약 5개월 간 지속되자 쫓기던 아파치들이 드디어 손을 들고 나왔다. 350여 명의 아파치가 포로가 되는 가하면 나머지 아파치들은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달아나고 또 일부는 화이트 산에 근거지를 둔 힐라 아파치 부족에 흘러들어갔다.

칼튼 장군은 이같은 결과를 내다보고 아파치 포로들을 수용하고 감시할 요새를 세울 계획을 조심스레 진행해나갔다. 미 연방 의회가 1862년 10월31일 인디안을 집단 수용할 섬너 요새를 세우도록 의결함에 따라  4일 후 11월 4일 칼튼은 특별명령 193호를 발표하여 "제2 콜로라도 민병대의 도드 중령과 캘리포니아 민병대의 제1보병대의 맥널티 (James M. McNulty) 군의관 그리고 제2콜로라도 민병대의 드 호레스트 소위는 1862 년 11월15일 뉴 멕시코의 페코스 강에서 회동하고  섬너(Sumner)요새를 세울 정확한 장소를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일개월 후 페코스 강 근방 보스크 레돈도 일대를 돌아보고 귀대한  장교단은 이름 그대로 미류나무가 14 마일에 걸쳐 군락을 이룬 페코스 강변의 보스크 레돈도 일대를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탐사하고 장점과 단점을 정리하여 칼튼 장군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장교단은 여러가지 여건상 새로 세울 요새는 보스크 레돈도 보다는 아구아 네글라 강과 페코스 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더 이상적이라고 건의했으나 칼튼 장군은 자신이 일찌기 전략상 요충지라고 생각한 미류나무 군락지 보스크 레돈도 일대를 섬너요새로 정했다. 섬너요새는 뉴 멕시코 군정지사를 지낸 섬너 장군을 기려 지은 이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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