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booked.net

booked.net

booked.net

yoonwonhwan.jpg


1907년 대부흥운동은 두 가지면에서 파급효과를 가져왔는데 하나는 1909-1910년대에 전개된 백만인 구령운동과 교회조직의 공고화이다. 

그 당대 한국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의 총 교인수는 1만명도 안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백만인의 영혼을 전도하여 구원케 한다는 것은 그 당대로서는 사실 무모해 보이는 시도로 여겨지나 그 당시 일제에 의한 민족강점과 병탄의 암울한 상황이 민족교회를 선도해 온 초창기 교계지도자들에게 이런 민족적 울분의 감정을 초자연적 출구로 몰고 가게 한 면도 있는 듯 하다.   

백만인 구령운동은 동참자들에게 전도를 위한 특별한 날을 헌신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때 대규모의 전도지와 쪽복음을 통한 문서전도가 시행되었다. 

이 운동이 구호만큼 큰 성과는 없었으나 민족교인들로 하여금 개인적 혹은 단체적 차원에서 전도운동을 전개한 면에서 그리고 교파를 떠난 초교파적 연합운동의 성격을 띈 면에서 긍정적인 공헌을 가져왔다. 또한가지 이 운동은 한민족을 병탄한 일제의 눈에는 민족기독교인들의 집단적인 행동이 여차하면 모종의 반일적 정치운동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 이것이 결국은 나중에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의 배경으로 작용한 점이다. 


1907년 대부흥운동은  백만인 구령운동과 더불어 민족교회의 조직정비를 가져왔다. 

장로교회의 경우 1887년 서울 새문안교회가 처음으로 조직교회로 세워졌고 이어서 1907년 조선 장로교 독노회를 조직하고 1912년에는 총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1907년 독노회 결성때 7인의 한국인 목사를 장립하였으며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으로 '12신조'를 채택하였다. 12신조는 이미 인도교회가 작성한 것으로서 주한 외국 선교사들은 자기들 같은 먼 서양인들의 교회의 신앙고백을 바로 한국교회가 채택하기 보다는 같은 동양권인 인도교회의 신앙고백을 채택하게 함으로써 한국교회가 일말의 친근감을 느끼도록 배려했다는 증언도 있다.    

한국장로교가 채택한 12신조는 신학적으로 칼빈주의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서 사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요약한 것으로 이해된다. 

동 고백서는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신앙문답서, 그리고 돌트신경과 더불어 세계 개혁주의교회 신앙고백서들과 신학적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특히 성경의 무오설 하나님의 주권사상 그리고 인간의 전적인 타락설에 기초한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기초로서의 은혜와 믿음 등을 강조한다.  


한국장로교회가 초창기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핵심을 담은 '12신조'를 교단의 공식적인 신앙표준으로 삼은 것은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노선이 성경적이며 복음주의적인 경건주의의 방향에서 출발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경건주의적 노선은 1930년대 이후 서구에서 유입된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으로 신학적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해방후 한국장로교회는 보수주의 중도주의 그리고 급진자유주의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감리교회의 경우는 장로교회처럼 재한 장로교 4개교단이 단일 한국 장로교회의 치리조직을 결성한  것이 아니고 상당한 기간 미국 남북 감리교회가 별도의 조직을 운영해 왔다. 

먼저 미국감리회는 1897년 서울 구역회 조직을 시발로 1901년 세개의 지방회로 분립되고 1905년 한국선교 연회를 조직하게 된다. 그리하여 1908년 완전한 감기교회 조직인 한국 연회를 정동교회에서 결성하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미 남감리회는 1897년 중국연회 소속  한국 지방회를 조직한 것을 시발로 1914년  한국선교 연회를 조직하였고 1918년에 한국연회를  출범시켰는데 이 때 연회원으로 참석한 사람중에 정춘수 양주삼 같은 한국 감리교회 지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1920년대 말까지 별도의 두 감리회로 병존해 온 한국 감리교회는 1930년에 남북 감리교회를 합하여 기독교 조선감리회를 조직하고 하나의 교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기독교 선교의 발전단계에서 마지막은 피선교지 교회의 완전독립과 완전자치의 단계에 이르는  것인데 한국개신교회는 교회설립 50 주년 경이 되어서야 이 단계에 도달하게 되고 그것도 한국을 지배하던 일제의  서양선교사들에 대한 강제추방으로 인하여 발생한 불가피한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한국교회는 괄목한 성장을 이루었고 미국교회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들을 제3세계에 파송하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고 있는데 이미 롤랜드 알렌이 지적한 것처럼 선교사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세운 토착교회가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교회의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리더십 이양에 대한 착실한 준비와 실행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21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현훈증(眩暈症)1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27
420 [강위덕 문학칼럼] 퀼트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27
419 [유신애 부동산 스토리] 오퍼는 진지하게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27
418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부비동염 (副鼻洞炎:Sinusitis) 축농증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19
417 [강위덕 문학칼럼] 잡초의 독백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19
416 [유신애 부동산 스토리] "가격 후려치기" 안 통한다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19
415 [유신애 부동산 스토리] 숏세일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13
414 [강위덕 문학칼럼] 애리조나의 봄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13
413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대변은 건강의 신호등 2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13
412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대변은 건강의 신호등 2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9-05
411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대변은 건강의 신호등 1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8-30
410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소변은 몸 속의 신호등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8-22
409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복날의 유래와 보양음식 4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8-15
408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복날의 유래와 보양음식 3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8-09
407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복날의 유래와 보양음식 2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8-02
406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복날의 유래와 보양음식 1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7-27
405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여름철 한의학적 건강관리 10계명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7-19
404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식중독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7-11
403 [호승재 변호사 법률상식] 비즈니스 계약서의 중요성 아리조나 타임즈 2012-07-04
402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여름철 건강관리 2 file 아리조나 타임즈 2012-06-27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PC방, 학교,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