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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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공사장에서 불어오는 먼지 바람에 골치가 다 지끈거렸다. 속도 메슥거려 오후 늦게 점심으로 먹은 가락국수가 목을 타고 올라오는 듯 했다. 저 놈의 공사는 언제쯤 끝나려나.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7시에 식당을 들른 공사장 간부 박씨에게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어보았다.

"도대체 저 아파트는 언제 공사가 끝납니까? 바람불면 먼지가 말도 못하게 불어와서 이 더운 여름에도 문도 못 열어놓겠어요. 에어콘도 없는 빈한 식당인데."

 베이지색 모자를  벗어 식탁 위로 내려놓는 박씨도 탄식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예정대로라면 앞으로 8개월 정도면 끝나는데 일손이 모자라 더 걸릴지도 모르겠소. 어디 일 잘하는 사람이라도 알면 소개라도 해 주쇼. 일이 빨리 끝나게 되면 누이좋고 매부좋은 거니까."

 오늘도 여느  날처럼 많지도 적지도 않은 손님들이 다녀갔다. 11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이면 손님이 더 이상 들지 않을 것은 뻔하다. 10분 정도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해서 놓칠 손님은 없을 터였다. 내일을 위해 주방의 식기들을 정리한 후 카운터로 몸을 옮겼다.

 식당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오늘의 매상이 꼼꼼히 적힌 장부를 정리하던 머리를 들었다. 눈에 익은 얼굴 하나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달에 한두 번 꼴로 들러 식당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구석에서 얌전히 술을 마시고 가던 사람이었다. 가끔씩 보는 그의 얼굴에서 여태껏 밝은 모습은 볼 수 없었다해도 지금의 얼굴은 그 정도가 심했다. 온 세상의 근심을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표정이 저런 표정이 아닐까. 오늘 영업 끝났습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다가 그의 어두운 얼굴 표정을 보는 순간 쏙 들어갔다.

"파전 하나에 소주 한병 부탁합니다."

그의 주문은 변하지 않았다. 파전에 소주 한 병. 오늘도 파전에는 손도 대지 않을 것인가. 내일을 위해 말끔히 닦아놓은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파전을 올렸다. '지지직' 소리가 좁은 식당 안을 빗소리처럼 퍼져 나갔다.   나는 정리하던 장부를 다시 꺼내들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23만원 3000원.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매상이었다. 그리고 파전 하나에 1000원, 소주가 1000원. 그러니까 오늘의 매상은 정확히 23만 5000원이 되는 것이다. 역시 파전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소주만을 들이키고 있는 손님은 평소대로라면 소주는 더 이상 시키지 않을 것이다. 켜놓은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이 식당안의 정적을 깼다. 하품이 나오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나는 티브이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20분이나 지났을까. 손님이 일어섰다. 티브이에서 눈을 떼며 나도 카운터로 향했다.

"2천원입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는 자기가 계산해야 할 금액이 얼마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지갑을 꺼내려는지 손을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손을 주머니에 집어 넣은 채 그는 고개를 한참이나 숙이고 있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든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소, 소리지르면 찔러 버, 버리겠소. 금고에 있는 돈 모, 모두 꺼내시요."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져 있었다. 그런데 칼의 크기가 작아 칼이 손에서 삐죽 고개만 겨우 내민 형상이었다. 나를 향한 칼 끝이 목소리처럼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완전 초짜군.' 나는 두렵거나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웃음이 나올려고 했다. 그의 체구도 나보다 작아 내 주먹 한 방이면 그냥 나가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누군가를 향해 칼을 내밀 사람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왜소한 체구.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손. 정감 어리게 양쪽 눈끝이 내려앉은 그의 순한 인상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보아하니 사람에게 칼을 들이댈 사람 같지는 않은데 정 돈이 필요하면 내가 그냥 드릴테니 칼이나 치우시요. 오늘 매상이 얼마되지 않는 것은 알기나 하슈?"

나를 향하고  있는 칼에 전혀 동요하지 않자 그는 지레 겁을 먹었는지 칼을 쥔 그의 손은 더 떨리고 있었다. 손에서 칼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우려될 정도였다.

"잔소, 리 하지 말,말고 돈, 돈이나 올려놓, 놓으시요."

그의 목소리도 이제는 잘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금고에서 꺼낸 돈을 카운터 위로 올려놓는 내가 돼려 민망했다. 카운터에 올려 놓은 돈을 그는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적은 돈이어서 실망했나?'

  2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의구심이 언뜻 들고 있었다.

"이거, 너무 적어서 미안하오. 얼른 가져 가시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꼭 갚으시오."

 마치 나의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는  돈을 주섬주섬 바지 속으로 집어  넣었다. 마지막 천 원 짜리 지폐가  그의 주머니 속으로 신문지 조각처럼 구겨져 들어가자 그는 급히 돌아섰다.

"칼은 안 가져 갑니까?"

 내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식당 문을 황급히 나서는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카운터 위에 내팽개쳐진 칼은 조그맣게 접혀 내 한 손에 들어왔다. 나는 그 칼을 무슨 장난감처럼 만지작 거리다 카운터 서랍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놈의 먼지는  오늘도 여전했다. 밤 10시면 손님이 더 이상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11시까지 식당에 머무는 이유는 집에 가도 반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한 시간 동안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식당에서 티브이에만 눈을 붙이고 있다가 집에 가려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때 식당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어제 구석에 앉아 소주를 마시던 손님이었다. 아니 칼을 든 손이 벌벌 떨리던 바로 그 손님이었다.

"아, 어제 오셨던 손님이구만. 잘 오셨소. 어제 칼을 놓고 가셨어요."

 나는 서랍을  열어 칼을 꺼내 보였다. 그의 눈은 평소에 품고있던 슬픔이나 고독 대신 절망을 가득 담고 있었다. 내 앞으로 힘없이 다가온 그는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냈다. 그것은 신문지에 쌓여있었다. 그는 그것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무릎을 꿇었다. 신문지 틈새로 보이는 것은 돈이었다. 신문지에 쌓인 두께로 보아 어제 금고에서 빠져 나간 돈인 듯 했다. 들썩거리는 그의 어깨가 식당 안의 공기를 휘젓고 있었다. 어디서 한잔 걸치고 왔는지 들썩이는 그의 어깨를 타고 술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용서해 주십시요."

나는 그의 어깨를 가만히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를 식탁으로 안내하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김치를 썰어 냄비에 쏟아부었다. 돼지고기도 듬뿍 냄비 속으로 집어넣었다. 냄비가 끓는 동안 나는 파전을 후라이팬 위에 올렸다. 지지직, 그게 무슨 소리냐, 이놈아, 지지직. 켜놓은 티브이소리에 파전 튀기는 소리가 섞여 묘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오늘 뜻하지 않게 공돈도 생겼으니 우리 축배라도 듭시다."

내가 따라준  소주잔을 앞에 놓고 그는 아까부터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의 소주잔에 내 소주잔을 가져가자 그는 그제서야 두 손으로 소주잔을 들었다. 그는 술을 마실 때만 고개를 들 뿐이었다.

"김치찌게는 내가 좋아하는 술 안줍니다. 드셔보세요."

 나는 파전으로  젓가락을 가져가며 왼손으로 김치찌게를 그의 앞으로 조금 밀었다. 아, 네. 그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어제 왜 돈이 필요한 지 물어본다는 걸 깜박했습니다. 그게 궁금해서 어젯밤 잠도 설쳤지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충혈된 눈이 나를 슬프게 쳐다보았다.

"한잔 더 따라주시겠습니까?"

 다시 소주 한잔을 들이킨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리며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다 못난 제 아들 때문입니다."

 포장마차집에서 시비가 붙었다. 술을 마시던 한 청년이 애인인 듯한 여자와 큰소리로 웃고 떠는는 것을 그의 아들이 참지 못한 탓이었다. 아들은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빽 질렀고 여자와 떠들던 청년은 당신 일이나 신경쓰라고 대꾸를 했다. 술이 한껏 들어간 아들은 이성을 잃고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청년의 턱이 한순간에 돌아갔다. 얼떨결에 한 방 맞은 청년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맹수처럼 아들에게 달려들었다. 포장마차 주인의 신고로 달려온 경찰은 둘에게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연행했다. 싸움의 발단을 야기시킨 아들은 그날 풀려나지 못했다. 청년 측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들은 철장 신세를 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앞날이 구만리인 아들에게 사회생활에 치명적인 빨간 줄이 그어지게 될 것이었다.

손님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청년을 찿아갔다. 턱에 붕대를 감고 있는 청년에게 허리를 굽신거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옆에서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청년의 아버지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합의금을 요구했고 그 돈의 마감일이 오늘이었다. 그에게 500만원은 큰 돈이었다. 어제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식당에 들른 손님은 단 몇 십만원이라도 가지고 가서 사정을 해 보기로 결심을 하고 칼을 빼들었던 것이다. 오늘 오후 청년의 아버지는 23만 5000원 앞에서 콧방귀만 끼었을 뿐이다. 다시 3일간의 시간을 주겠다는 말을 들은 손님은 사정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했다.

"아들에게 빨간 줄이 가는 것을 막지도 못하고 저는 먼지만도 못한 놈입니다."

손님은 머리를 흔들며 자학했다. 먼지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는 공사장에서 불어오는 먼지 바람을 생각하며 박씨를 언뜻 떠올렸다. 그의 체구는 비록 크지 않아도 공사장에서 그가 할 일은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내가 그 돈을 빌려 주겠소. 그냥 빌려 주는 게 아니라 한가지 조건이 있소. 저 공사장에서 나오는 먼지 때문에 골치가 아파죽겠소. 공사는 하루 빨리 끝나야 쓰겠는데 일손이 부족하니. 저 공사장에서 일 좀 하시요. 내가 공사장 간부를 알고 있으니 일자리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요. 빌려준 돈을 다 갚을 때까지는 월급은 나 한테로 입금하라고 간부에게 얘기하겠소. 어떻소? 한번 일해 보겠소?"

그의 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비록 공사장에서 일해 본 경험은 없지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내일 오전 11시까지 오세요. 내가 돈 500을 마련해 놓을테니." 

 밝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난 세 달 동안 그의 급여가 내 은행구좌로 하루의 오차도 없이 매달 말일에 입금되었다. 앞으로 두 달만 더 공사장에서 몸을 움직이면 그는 내게 진 빚을 탕감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공사장에서 일을 야무지게 잘 하고 있다는 소리를 박씨에게 듣고 있었다.

"보기와는 달라요. 왜소하고 삐적 말라서 한 일주일이나 견딜까 했는데 덩치 큰 사람 몫을 거뜬히 해 내고 있어요."

유난히 먼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의 오후 3시 쯤이었다. 점심 시간에 북적대던 손님들이 빠져나간 후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며 냉수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나는 식당 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구급차를 보았다. 그때 식당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를 집어드는 손에 왠지 약한 경련이 일었다. 공사장 간부 박씨였다.

"강씨가 9층에서 실족을 했습니다."

"뭐라구요? 생명은?"

"죄송합니다."

수화기가 내 손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형님 얼굴을 봐서라도 열심히 일 해야지요."

 일을 시작하던 날 공사장으로 출근하기 직전 식당에 들러 내 손을 굳게 잡던 강씨의 얼굴이 눈 앞에서 어른거렸다. 나는 식당 구석에 놓인 식탁으로 걸어가 식탁을 손으로 가만히 쓸었다. 마치 그의 등을 쓸듯이. 그리고 입구로 천천히 걸어가 식당 문을 활짝 열어제쳤다. 먼지 바람이 훅 하니 내 얼굴을 덮쳐왔다.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덮쳐오는 먼지 바람을 그대로 한껏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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