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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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국에 와서 시카고의 조용한 아파트에 처음으로 이곳이 내가 살 곳이구나 하고 들어 가는데 빨간 양탄자가 입구부터 3층 건물까지 깔려있는 것을 보고는 참 멋있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시작한 미국생활이 46년째. 이처럼 오랜 세월을 미국에서 살게될 줄이야 상상 못했던 날들이었다. 대학원 등록 때문에 먼저 들어 온 남편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나에게 학교 끝나고 5년 내에 서울로 다시 돌아 가자고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가족들 다 두고 다시 헤어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6.25 전쟁으로 형님 두 분이 전사자로 기록되었다. 남편은 외아들이 되었고, 결혼해서 외며느리가 된 나는 곧 바로 시어머님 모시고 살아야 했고, 미국에 와서도 어머님 모시고 사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 들여졌다. 5분 거리마다에 형님(남편의 누님), 그리고 손아래 시누이들 둘, 모두들 바쁘게 살았지만 괜히 나 혼자 외롭고 서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 시절에는 친정에서 오는 편지만 받아도 마냥 서러워서 찔찔 편지를 읽으면서 어깨가 들먹거릴 정도로 흐느끼며 울던 시절이었다. 아무도 없는 외딴 섬에 나 혼자 던져진 느낌. 자주 다니던 명동의 청자다방, 고전음악 만 틀어주던 가화다방, 그리고 음악감상실, 보고 싶은 엄마,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 사랑하는 동생. 그때 생각했다. 어떻게 나라는 여자가 이렇게까지 용감할까? 부모형제, 친구 다 버리고 남편 하나 바라고 이곳을 오다니!!! 그렇게 시작된 46년의 세월.



처음 10년은 어떻게 살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가족과 교회에서 잠간 만나는 교인들 외에는 만나는 사람들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이민가정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말에 유학생들끼리 종종 모여서 저녁 먹고 기타를 치면서 함께 노래 부르고 그런 소소한 모임 뿐이었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은 더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주말 새벽에 와서는 시카고의 유명한 우노 피자집에 가자고 들이 닥치면 몇명이 함께 놀러가는 젊음의 기개도 있었다. 그런 여유로운 즐거움 외에는 영어를 빨리 익혀서 하고 싶은 말을 해야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싶어 학교부터 시작을 했다.  그래서 첫 10년은 아무것도 못하고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고 학교, 집, 파트타임 일, 이렇게 지난 것이 10년의 세월이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주말이면 테니스를 치고 또는 승마를 배워 색다른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살아온 세월들은 속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월이 가면 얼굴에 나이테가 보이는데 구태어 고쳐가면서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나이가 들면 주름살이 생기기 마련이고 검버섯도 생기고, 여기저기 반점들 (aging spot)도 생기는 것을 억지로 벗겨내고 주름을 피려고 한들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저기 퍼져있는 주름살을 다 주워 담으면 한 바가지는 되지 않을까 짐작해 보는 처량함도 느끼며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아름다움은 재물도 아니고 매끄러운 외모도 아니고 내면에서 피어나는 향기를 품고 사는 여인을 볼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나이 때문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당당하게 살아야겠다. "나이를 먹었다고, 주름살도 있다고 인생의 끝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고 대들고 싶지만 "아니지, 익은 벼가 머리를 숙인다 했고, 나이를 먹었으면 말은 더 아끼고 겸손하게 행동하라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반대로 말은 더 많이 하고 젊은이들에게는 마음에 안든다고 더 호령을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과 나이든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되지 않는 갭이 생기게 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라는 성경말씀을 읽고 또 읽어야겠다. 



오래 전 법정스님의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 를 읽고 인생은 역시 맑고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야 겠다는 평소의 생각을 거듭 느끼게 해 주었다. 내용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인생의 황혼기는 묵은 가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몸은 조금씩 이지러져 가지 만 마음은 샘물처럼 차오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무가치한 일에 결코 낭비 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해답을 찾은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졌다.


12월7일 2015년

미셸 김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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