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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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로 이 모습이네. 닮았어, 닮았어. 우리네 삶의 모습이야.

휘어지고 굽은 모양이 허구한 날 치이는 우리네 삶을 닮았다. 눈 덮인 겨울 태백산 깊이 들어가야 마주할 수 있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는 주목나무.<사진=안성식 기자>



이미 죽은 주목나무의 사진과 일출을 배경으로 한 사진 한장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죽어서도 천 년을 산다는 주목나무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더 대견스러워 보인다. 우리의 삶도 저렇게 당당하면 좋으련만.



어느 노인부부가 병원에서 양로원으로 옮겨졌다는데 말도 안 통해, 음식도 안 맞아, 찾아 오는 사람조차 없어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음식 몇 가지 만들어서 찾아 갔다. 그들의 가슴 절인 사연을 듣고 돌아오는 발길이 우중충한 하늘 빛갈 처럼 내 마음을 짓누른다.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 아버지 양로원에 넣어두고 돌아서면서 어깨를 들먹거리며 나가던 네 모습에 이 에미의 억장도 무너져 내리더구나. 네 오빠가 제 뜻대로 안되니 어디론가 사라지고는 달랑 자식이라고는 하나 남은 너에게 부담을 주어서 미안하다. 세상 일이 어디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단다.  


딸아, 우리와 헤어지고 간 뒤, 벌써 두달이 지났는데 너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구나. 혹시나 싶어 여기 직원한테 손짓발짓으로 네 전화 확인해 달라고 하니 전화가 끊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믿는 데가 너 밖에 없으니 네 아버지 좋아하시는 갈비탕이라도 끓여서 다음 주에는 오려나 하고 입맛 당기면서 기다렸구나. 그래 네 남편이 가진 것 없는 우리 두 늙은이 좋아할 리가 없다는 것 쯤은 알았지만 우리를 갈라 놓고 말없이 가야하는 네 마음을 생각하니 내 가슴이 무너진다. 옛날, 한국의시장통에 나가면 떠들썩한 아지매의 구수한 입담이 생각난다. "이놈의 개떡같은 인생 누가 사 가시소" 하면서 널부러지게 외치던 그 소리를 나도 한 번 외치고 싶다. "이놈의 개떡같은 내 인생 공짜로 가져가슈^^^!!!!"  



아버지는 이제 아들도, 딸도 다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고 한숨 만 내뿜는다. 맛없는 미국음식도 아예 끊고 벽만 바라보고 누워 지내신다. 네 탓 안할테니 소식이나 주면 안되겠느냐. 추운 겨울이 거의 다 가고 있으니 곧 상큼한 봄 소식이 날아 오겠지. 내 자식 소식이나 봄 제비가 물어다 줄 수는 없을까 해서 답답한 내 가슴 봄타령이라도 해 보았다. 새파란 나뭇잎이 뒷마당 나무에서 피어나고 꽃향기 멀리서라도 날아 오면 네 모습도 깜짝 놀라게 나타나려나. 밥은 못 먹어도 내 자식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다. 말이 안 통해 몇마디 나눠 보지도 못한 손주들의 귀여운 눈망울이 왜 오늘 밤에는 더 그립게 떠 오르니 이놈의 못된 팔자는 아들 딸 소식도, 귀여운 손주들의 소식조차 감감할 뿐이구나.



이 낯선 땅에 자식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고향 친구들, 가족들 다 뒤로하고 내 자식들 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있겠소 하고 달려서 미국 들어왔지. 그 귀한 내 새끼들 보지도 못하고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어 하염없는 눈물이 내 가슴을 두들길 뿐이다. 너희 남매 키우면서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어도 너희들 재롱에 늘 웃음꽃 피는 행복한 맛을 어찌 잊겠느냐. 자식새끼들 거두어 먹이는 재미에 늬들 아버지 힘든줄 모르고 살아 오셨다. 돌아 누운 채 벽 만 바라보는 저 찢어지는 가슴을 내가 왜 모르겠느냐. 



아버지 큰 일 겪기전에 너 만이라도 얼굴 보여주면 안 되겠느냐 아가야. 보고 싶은 내 새끼. 어쩜 우리의 황혼은 이리도 씁쓸하고 질기더냐. 봄타령도 새싹돋는 나뭇잎에 걸어보는 희망도 이만 접으련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을. 엄마 아버지 때문에 울거나 아파하는 일 없기를 마지막으로 부탁하마.  



08 28 2016

미셸 김/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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