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커키 한인 연합 감리교회 김기천 목사의 부친 김도경 권사가 지난 8월 14일 인천 사랑병원에서 소천했다.
1923년 2월 4일에 태어나 93년 동안 한국 역사와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고 김도경 권사는 일본강점기에는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해방 후에는 평안남도에서 생활했다. 한국전쟁이 발발되고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밀어붙일 때 트럭에 실려 인민군으로 끌려갔다. 낙동강 전투에서 손목 부상으로 후송되던 중 연합군에게 붙잡혀 거제도 수용소에서 포로생활도 했다.
이후 남한을 선택 대구에서 생활하다가 침례교 목사 부인이었던 누나를 만나 인천으로 올라왔다.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선교사를 도왔던 할아버지 신앙을 이어받아 피난살이에도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김기천 목사는 생전의 부친을 회상하면서 몇 가지 감회를 전했다. "아버님이 자손들에게 남겨주신 유산은 투박한 손이다. 인천에서 정착하기 위해 목공 일을 하셨다. 추운 날씨에 맨손으로 시멘트 공사와 목공 일을 하시면서 갈라진 손가락을 반창고로 단단히 붙이고 겨울을 보내셨다. 손을 만지면 매끈매끈한 반창고와 더불어 까칠까칠했던 아버님의 투박한 손이 아직도 기억난다. 1년 동안 사용하라고 준 십일조 봉투가 닳자 반창고를 붙여 놓기도 하셨다. 일당을 받아오시면 그 투박한 손으로 십 분의 일을 세어서 매번 봉투에 넣으셨다. 반창고로 싸맨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반창고를 붙인 봉투에 헌금을 넣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투박한 손으로 자녀들에게 삶이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다. 이번 장례 기간 저희 유족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나눠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이번 장례 절차는 인천 학익 감리교회에서 주관했다. 시신은 8월 17일(월요일) 인천 가족공원에서 화장 현재 봉안당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