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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 패스

조회 수 136 추천 수 0 2022.05.18 13:06:21

“말이 조금이라도 자기 비위에 거슬리면 명을 거역한다 하고, 자기의 여자 관계에 대해 언급하면 임금을 능멸한다 하여 온갖 구실을 붙여 없는 죄를 만들되, 곤장 100대를 가벼운 벌로 여기고 일족을 멸(滅)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 한 번만 걸리면 부자 형제가 잇달아 살육되고 일가 친척까지도 유배 당했다.” - '연산군일기' 중.

 

자기는 살인, 납치, 강간을 일삼았으면서도 타인에게는 '일족을 멸하는 법을 함부로 적용했던 연산군에 대한 사관의 평가입니다. 남의 잘못은 과도하게 처벌하면서도 자기 죄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것이 옛날 폭군과 현대 소시오패스의 공통점입니다. 개별적인 소시오패스 범죄보다, 소시오패스의 정신이 사회 고대 로마의 황제 네로는 대화재 이후 이반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수많은 기독교인을 학살했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기, 산 채로 불태우기, 굶주린 사자 앞에 세우기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잔인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그는 자기 행위를 비판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마저도 참혹하게 죽였다. 품행이 나쁘다고 소문난 포파에아라는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자기 부인 옥타비아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기도 했다.

중국에 통일 황조를 연 진시황은 만리장성 쌓는 일에 수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학대하고 죽였다. 자기의 폭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유학자를 산 채로 땅에 묻어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말이 길이 후세에 전해지도록 했다. 수나라 양제(煬帝)는 잦은 토목 공사와 침략 전쟁으로 백성들을 학대했다. 대운하가 완성된 후 그는 낙양에서 양주로 순행(巡幸)하기 위해 수십 만 명의 백성을 동원, 수천 척의 호화선단을 만들었다. 운하 인근의 지방관리들은 그가 요구하는 뇌물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을 악랄하게 수탈했다. 그가 이르는 곳마다 해골이 땅바닥에 널렸다는 말이 전할 정도였다.

폭군의 직업병 '소시오패스'

조선의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의 원수라고 여긴 사람은 물론, 자기 폭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사람들까지도 잔인하게 고문해 죽였다. 그가 직접 지시한 고문 및 살해 방법은 인두로 지지기, 손바닥에 구멍 뚫기, 가슴 빠개기, 뼈 발라내기, 마디마디 자르기, 산 채로 배 가르기, 시신을 태운 뒤 뼈를 빻아 바람에 날리기 등이었다. 실록의 사관(史官)은 그가 “일족을 멸(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그에게 한 번만 밉보이면 부자 형제가 잇달아 잡혀 살육당하고 일가까지도 모두 처벌받았다”고 기록했다. 그는 남에게 잔인한만큼 자기 욕망에 충실했다. 전국 각지에 채홍사를 파견하여 수천 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잡아오게 했으며, 그들을 흥청, 운평 등으로 나누어 향락 도구로 삼았다. ‘흥청망청’이라는 한국형 사자성어가 생긴 연유다.

연산군(김강우 분)이 나오는 영화 '간신'의 스틸 컷.
연산군(김강우 분)이 나오는 영화 '간신'의 스틸 컷.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주제 시대의 군주 중에는 성군(聖君)보다 폭군(暴君)이 훨씬 많았다. 폭군들은 스스로 살인, 방화, 강간 등의 반인륜 범죄를 거리낌없이 저지르면서도 백성의 잘못은 사소한 것이라도 용서하지 않았고,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처형했다. 자기는 무슨 짓을 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은 어떤 짓을 해도 안 되며, 특히 자기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악랄하게 죽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신념이었다. 현대의 심리학자 다수가 옛날 폭군들을 소시오패스, 즉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로 본다. 그들은 죄가 무엇인지는 알되 죄책감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자들이었다. 물론 제왕(帝王) 중에 소시오패스가 많았던 것이 혈통 탓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한자 문화권에는 제왕의 도덕률과 관련해 ‘제왕무치(帝王無恥)’라는 말이 있다. ‘제왕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인데, 사람은 신체 부위든 사생활이든 남에게 보이기 싫은 것이 공개될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이 말은 ‘제왕에게는 비밀이 없다’나 ‘제왕에게는 사생활이 없다’와 같은 뜻이다. 제왕은 모든 생활이 공개되고 기록되는 존재여야 했다. 하지만 자기 아버지의 후궁을 자기 후궁으로 맞아들인 당 고종을 포함해 많은 제왕이 자기의 파렴치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용도로 썼다. 그래서 이 말은 또 ‘제왕은 수치를 모른다’나 ‘제왕은 염치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파렴치가 제왕의 덕목이 된 이유이자 소시오패스가 제왕의 직업병이 된 이유이다.

제왕은 파렴치를, 일반인은 눈치를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지폐에는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다. 지폐 도안으로 사람 얼굴을 택하는 이유가 자국의 위인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타인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감지하여 그의 뜻을 읽는 훈련을 거듭해 왔기 때문에 인물화에 특히 놀라운 식별력을 갖고 있다. 지폐에 사람 얼굴을 넣는 것은 위조 방지에 그 어떤 도안보다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표정을 보고 그의 기분까지 유추하는 것을 ‘눈치’라고 하며 이것이 배려(配慮)의 전제이다. 인류가 ‘눈치 있는 동물’이자 ‘배려하는 동물’이 된 것은 타인에 대한 자기 행위와 자기에 대한 타인의 행위 사이에 ‘등가 교환’의 원리가 작동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고대적 정당성은 절대다수 사람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을 심어주었다. ”내가 남에게 한 만큼 나도 당할 수 있다“와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절대다수 인간에게 초역사적인 규범이자 상식이다.

제왕은 인간 사회의 일반 규범과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점에서도 소시오패스였다. 그들은 ‘역지사지’가 안 되는 특이한 인간이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자기와 남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남에게는 자기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안기면서 자기는 온갖 황음무도(荒淫無道)하고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는 연산군 같은 인격체는, ‘무치(無恥)의 제왕권’만이 낳을 수 있었다.

물론 군주제가 폐지된 뒤에도 ‘무치의 제왕권’을 누리려 했거나 실제로 누렸던 권력자는 많았다. 히틀러, 스탈린, 폴포트 등 20세기의 대량 학살자들은 모두 남을 죽이는 데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으면서도 자기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제왕의 도덕률로 무장한 소시오패스였다. 그런데 그들의 권력은 혈통(血統)으로 물려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왕의 자식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자식이었으며, 그런만큼 평범성 자체를 뒤흔들었다. 왕의 자식은 표준적 인간이 될 수 없었으나, 평범한 사람의 자식은 표준적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예컨대 ‘악의 평범성’은 아돌프 아이히만이나 극소수 나치당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치 시대 독일인 대다수에게는 이민족 혐오와 잔인성이 시민적 미덕이었다. 평범성 안에 악이 깃든 사회에서는, 악덕이 미덕으로 인식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왼쪽).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왼쪽). 사진=연합뉴스

파렴치 인사들과 그 비호자들

제왕의 도덕률에 따라 사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드물지만 그렇게 태어난 사람도 있고, 어릴 때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도 있으며, 일종의 직업병으로 그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지난 70여 년간, 우리나라에는 제왕이 아니면서 ‘제왕의 도덕률’을 체화한 직업인들이 있었다. 자기와 타인에게 적용하는 법적, 도덕적 기준이 다른 것이야 인지상정이지만, 이 특수 직업인들은 그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져도 인지하지 못한다. 이들은 똑같은 행위라도 남이 하면 ‘일족을 멸할 죄’이지만, 자기가 하면 ‘당연한 권리’라고 믿는다. 같은 행위에 다른 법적 기준이 적용되는 사회에서는 공정, 상식, 보편적 도덕률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아니, 인간성 자체가 존속할 수 없다. ‘독일인이 유대인을 강간하고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유대인이 독일인 앞에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 것은 죽을 죄’라는 나치 시대 독일인 다수의 상식은, 그들 자신을 ‘비(非)인간’으로 만들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위원 청문회에서는 ‘제왕무치(帝王無恥)의 도덕률’이 유감 없이 전시되었다. 상당수 후보자가 ‘남에게 적용하는 법’과 ‘자기에게 적용하는 법’이 극단적으로 다른 걸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남에게는 ‘일족을 멸할 죄’를 적용해 놓고도 자기에 대해서는 ‘도덕적 비난’조차 용납하지 않는 태도는 군주제 시대 폭군의 태도와 완전히 같았다. 게다가 다수의 ‘주류 언론’은 이런 파렴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애썼다. 남은 잔인하게 비난하면서 자기의 잘못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보도 행태를 반복하면서, 그들 자신도 ‘제왕의 파렴치’를 체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 이런 ‘제왕의 도덕률’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지 않다. ‘수치를 모르는 인간’이나 ‘파렴치한 인간’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공정, 상식, 법치주의, 보편적 도덕률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된 것은, 이런 것들이 군주제 시대 ‘제왕무치의 도덕률’과 상극(相克)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는 ‘제왕무치의 도덕률’을 승인하고 동조하는 사람이 많다. ‘제왕무치의 도덕률’을 체화한 사람들이 다스리는 나라, 그들이 숭배되는 나라는 공화국이 아니라 제국이다. 그런 제국은 종종 소시오패스 국가가 된다. 소시오패스의 정신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개별적인 소시오패스 범죄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다.

 

※ 필자인 전우용 교수는 우리 시대의 역사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 현안에 대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역사학자다. <우리 역사는 깊다>, <내 안의 역사>, <민족의 영웅 안중근>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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