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와 식민지배를 불법이자 반(反) 인도적 행위로 규정하고 일본에 그 책임을 묻는 것은 해방 이후 지난 80년간 우리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었습니다. 친일파를 중용했던 이승만도, 만주군관학교 출신 박정희도 이 원칙을 허물지는 않았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때 미흡하나마 ‘청구권 자금’을 받은 것도, 위안부와 징용 피해자 등의 ‘개인적 배보상’ 문제가 한일 외교의 현안이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은 스스로 망한 것이지 일본이 무력을 동원해 강제로 식민지화한 게 아니다”라는 취지의 집권여당 비대위원장 정진석 씨 발언은, 지난 80년 간 ‘유지’된 대일 외교의 원칙을 허물었습니다. 이제 일본이 정신석 씨의 발언을 한국 정부가 공인한 ‘원칙’이라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정진석 씨가 자기 발언을 취소하고 국민에게 공개 사과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일본 총리나 각료가 어떤 말을 해도 ‘망언(妄言)'이라고 규탄할 수 없습니다. 정진석 씨와 그의 발언을 두둔하는 자들은, 한국인 모두에게서 ‘주권 침탈과 식민지배를 규탄할 자유’마저 빼앗았습니다. 차라리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일본인이라면, 이렇게 황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전우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