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1년
많은 사람들이 그의 1년을 이렇게 저렇게 평가한다. 놀랍다. 한 것이 없는데 평가를 내놓을 수 있다니. 지난 1년 그는 밤낮으로 음주운전을 했다. 음주운전을 두고 코너링이 좋니 어쩌니 평가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민망한 일 아닌가.
달라질 줄 알았다. 5천만을 태우고 달리니 달라질 줄 알았다. 모범운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안전운전은 하려고 애쓸 줄 알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의 손은 핸들을 놓쳤고 그의 발은 페달을 놓쳤고 그의 눈은 목적지를 놓쳤다. 어디로 가십니까, 물으면 빠르게 가겠다고 대답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모는 차의 엄중한 무게를 이해하지 못했다. 차에 기름이 달랑달랑해 경고등이 켜져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전 운전사가 기름을 헤프게 써서 그런 거라고 우겼다. 우김은 1년 내내 지속됐다.
그는 가지 않아야 할 길을 달렸다.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희대의 역주행이었다. 일본 가랑이 아래로 지나갔고 미국 지갑 속으로 들어갔다. 승객들은 모멸감을 느꼈다. 일본은 그의 입에 오므라이스를 넣어줬고 미국은 그의 손에 노래방 마이크를 쥐어줬다. 그의 입은 바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입이 바쁜 거라 했던가. 또 그들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넘치게 술을 따라줬다. 달콤한 독배였다. 님아, 그 잔을 마시지 마오. 승객들은 술잔을 말리다 하나둘 지쳐 쓰러졌다.
그는 과속방지턱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덜컹. 덜컹.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깨지고 어깨가 부서졌다. 그리고 죽었다. 그는 용산의 죽음은 내 운전과 무관하다고 강변했다. 노동자의 분신엔 압수 수색으로 대답했다.
왜 저렇게 폭주하는 걸까. 차 안을 찬찬히 살폈다. 어라, 그 흔한 내비게이션이 없다. 내비게이션이 있어야 할 자리엔 어지러운 부적 하나가 붙어 있다. 왕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부적이 가리키는 대로 달리는 거다. 하늘에 구멍이 뚫려도 그는 부적하고만 대화하며 달린다. 신앙이다.
조수석에 앉은 그녀도 음주운전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스릴을 즐기는 것 같다. 인생이 아슬아슬 위태위태 스릴이었으니까. 오늘도 그녀는 거울 보며 얼굴에 뭔가를 찍어 바르기에 바쁘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얼굴이 바쁜 거라 했던가. 아, 그런데 자세히 보니 조수석이 아니다. 뒷좌석이다. 그녀는 음주운전 하는 그를 자신의 운전사쯤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탄 이 차는
앞으로도 4년을 더 달려야 한다.
공포에 떨며. 치욕에 떨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차례로 스러지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음주운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과연 그에겐 장롱 면허증이라도 있긴 있는 걸까. 면허증 없이 운전석에 앉는 것도 그가 늘 거품 물고 떠벌이는 그 자유라는 것일까. 오늘은, 아니 오늘도 술 한잔 마셔야겠다.
#그만하시게
왜자꾸 좌파,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반미, 반대한민국세력으로 의심되는자들이
글들을 자주, 당당히 올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