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는 그들을 초려하려 애썼으나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고향에서 흙과 돌을 얼기설기 쌓아 배움터, 초기 서당을 꾸렸습니다. 비가 새고 바람이 들었습니다. 풍찬노숙과 다름없는 처지였습니다. 코찔찔이 개똥이 말똥이 아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친다고 하니 우선 농부들부터 비웃었습니다. 사실 온천하가 “별 미친 놈들 다 봤네”, “패배자”라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웃지 않는 이도 있었으니 동문수학생 정도전이었습니다. 곧 조선의 실권을 쥔 정도전은 뒤에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한 세대 후 최고의 현자 세종대왕은 유학보급이란 명목으로 그들을 본격적으로 도와줬습니다. 불교 세력과 온갖 무속이 지배하던 고려와 초기 조선은 그들의 헌신 덕분에 빠르게 문명사회로 이완되기 시작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세기 후 그들의 제자들이 실권을 쥡니다. 이른바 ‘사림’입니다.
출근길 우연히 백남기 선생님의 약력을 봤습니다. 바깥에 내리는 비처럼 마음이 젖습니다. 어떤 덧설명도 없이 약력만 봐도 백 선생님의 위대한 인생 여정을 알겠습니다. 약력 막간에 낙향한 이색과 성균관 문하생들을 떠올렸습니다. 백 선생님은 평범한 농부로 살고자 했으나 참으로 역사에 사셨더군요.
자녀 분들 지인이 쓴 글을 보니 자녀 분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지 오롯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저 따위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을 겪었음에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훌륭한 아이들을 키우셨습니다. 제가 왜 벅찬지 모르겠습니다. 살짝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존경합니다.
광화문에서 물대포에 내상을 입고 안면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선생님의 사진을 본 순간 우린 알았습니다.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그 어떤 첨단의료 기술도 백 선생님의 삶을 원상회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정말 기적이 있다면 백 선생님께 꼭 찾아들길 바랍니다. 손자 손녀도 보시고 남은 인생은 선생님을 때리고 가둔 놈년들보다 더 행복하셔야지 저희가 안도하지 않겠습니까. 위로받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일어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