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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환 목사 기독칼럼] 한국교회 형성 이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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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평양발 대부흥운동이 백만인 구령운동과 교회의 조직화에 공헌을 하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기저로 한 사회-정치운동이 결국 구국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결성으로 나타나면서 일제의 집중적인 시찰의 대상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19세기 말 서양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과 만주와 일본을 통하여 그리고 국내에서 기독교의 복음전파 사역이 전개될 때 그것은 단지 개인의 영적 구원의 유익만을 준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세계관을 기초로 자신과 국가와 민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기독교적 민족의식의 형성을 배태케 하였다.     

또한 국외를 방문하거나 유학한 자들이 귀국하여 민족계 교육기관들을 설립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에서 민족의식 형성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기독교인들이었던 이동휘는 보창학교를, 안창호는 대성학교를, 그리고 안창호에게서 영향을 받은 이승훈은 오산학교, 가명학교, 신응학교 등을 세워 학생들에게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선교사들과 학원과 더불어 그 당대 언론 또한 민족의식 고양에 기여한 통로가 되었는데 독립협회의 독립신문,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그리스도 신문 그리고 특별히 대한 매일신보 등은 민족의식 고양의 지대한 견인차의 역할을 하였으며 이들 언론에 동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이었다. 

또 한가지 민족의 민족의식 고양에 좋은 영향을  끼친 통로는 바로 성경책의 영향이다. 

한민족교회는 처음부터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은혜를 받아 개종한 사람들로 시작된 교회이며 그래서 개종한 민족교인들은 무엇보다도 한중 국경을 돌아다니며 성경책을 권하는 권서인의 역할을 자청하였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형성케 해주어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를 감내케 하는 큰 위로의 역할을 제공하였다. 


이와 같은 몇 가지 통로들을 통하여 19세기말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될 때 형성된 초기단계의 민족의식은 주로 위정자에게 충성하고 민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은 국가를 위한 기도회 애국가 제창 그리고 특별 절기시 태극기를 게양하는 형태로 민족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였다. 

이런 초기형태의 기독교적 민족의식은 1905년을 기점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항일 민족운동 형태로 진전되었고 이것이 1910년대 이후부터는 무장독립운동으로 까지 발전되고 있음을 본다. 

1905년대 기독교인들의 항일 민족운동은 주로 연합 구국기도회 형태로 나타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1905년 상동청년학원과 감리교계통의 교회 청년조직이었던 엡웻청년회 등이 연합하여 모였던 일주일 간의 기도회였고 이 기도회를 주도한 사람들로는 전덕기,  김구, 이동녕, 옥관빈, 조성환 그리고 이지간 등이었다. 그리고 이 기도회는 더 나아가 1907년 안창호 주도로 결성되는 신민회 조직에 큰 힘을 보태었다.  


1907년 이후 그리고 나중에 일제에 의하여 날조된 ‘105인 사건’어간에 있어서 우리가 가장 주목할 항일 비밀 결사단체는 바로 신민회인데 이 신민회는 주창자 안창호를 위시하여 상동교회 내의 조직인 상동청년학원과 직간접 연관을 맺었던 사람들인 양기탁, 이갑, 유동열, 이동휘, 이동녕, 전덕기 등이 결성하였다.  

신민회의  표면적 설립목적은 민족을 향한 근대적 교육과 산업의 육성을 표방하는 것이었지만 내면은 봉건왕조를 청산하고 근대적인 공화정을 설립하여 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하는 데 있었다. 

신민회의 총본부는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두었고 국내조직은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기독교회의 교세가 강한 지역에 있던 교회와 학교의 교사와 학생 그리고 토착 상공업자들을 대상으로 조직을 결성해 나갔다. 

이렇게 해서 신민회는 1911년 경 그 회원이 22만명으로 추산되었고 나중에 ‘105인 사건’의 기소장에 나타난 바로는 신민회원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들이었던 것이 드러났다(기소자 123명중 104명이 기독교인이며 그중에 목사가 5명 장로가 8명).  

이와 같은 기독교적 민족운동의 역사는 계속해서 오늘 우리에게 교회의 존재사명이 단지 피안적 영생구원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불의에 개입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이 발휘되는 영역으로 변혁시키는 사명도 감당해야 함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