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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덕 작가 문학칼럼] 고혈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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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강 위 덕


인적 드믄 말초신경 골목길에 초겨울 찬바람이 인다 

모세 혈관이 막히자 툇마루 같은 무릎에 수금하러 온 시린 냉기가 연체료 붙은 고지서처럼 무겁게 걸터 앉는다 

퀭한 모세 혈관이 심부전증으로 서리를 맞고 있다

       

S-O-S- 콜레스테롤이 혈로를 막고 있다 

이곳은 온통 냉온방 장치가 차단되어 마비중풍 상태이다

       

심장은 수로를 뚫어내려 혈압을 올린다 

160, 180, 200을 넘더니 210이 획 넘어선다 안타깝다

심실세동이 가볍게 떨더니 감지형 심박이 기능을 상실한다 

심방근이 균형을 잃어 빨래를 비틀 듯 근육을 짜내기 전에 혈액을 차내지 못한다 

“으으윽” 외마디 悲號, 최선을 다하던 심장이 순교의 반열에 오르다

       

피 흐르는 육체의 윤곽을 덮어 지우면서 평생 심장을 혹사한 월세 밀린 한 인생이 영원한 죽음으로 빠져들고 있다

     

해설


죽음은 인간의 실존 현실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내가 살아있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좀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인간은 삶의 현장에서 현존재(Da sein)다>라는 하이거 철학이 시를 짓는 문학인을 일깨우게 한다. 시는 <있음의 경이>에서 솟아나는 희열이어야 한다. 주검의 순환도 생명의 탄생처럼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관계처럼 둥글게 둥글게 순환하는 것 같다.


30년 전의 일이다. 내가 한참 살 나이에 죽었던 일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유명한 분이 와서 연설을 한다기에 참석하였다. 유명인사의 강연이니 할 말도 많았을 것이다. 밤 11시쯤 되어서야 집회가 끝났다. 나는 루즈벨트 에비뉴의 거리를 따라 귀가하고 있었다. 집회 장소에서 집까지는 15분 거리다. 메인 스트릿에서 막 오른쪽으로 돌아서려는데 외국인 6명의 공격을 받았다. 나중 안 일이지만 6명중 건장한 사람이 나의 뒤에서 목을 졸랐고 나머지는 함께 동행하던 20대 젊은이의 손에 쥔 카메라를 겨냥한 것 같았다. 

나의 목을 억느르던 팔의 살결이 부두러운 것으로 보아 그들은 흑인이 틀림없다. 내가 깨어났을 때는 밤 12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깨어나서 나는 얼마동안 무아 상태에서 빠져 있었음을 생각했다. 주검은 분명히 잠자는 것과는 달랐다. 잠은 삶의 연속이지만 주검은, 절명이라는 것을 죽어보고야 알게 되었다. 잠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깨어나도 자는 동안의 의식과 꿈이 뇌파를 타고 현재를 진동시킨다.

그러나 절명은 달랐다. 아이쿠, 태평양 건너 뉴욕까지 와서 개죽음을 당하는구나 하는 개꿈도 없었고 불만과 원망도 생명의 애착도 없었다. 그야말로 깨끗한 단절이었다. 나는 무아에서 깨어났다. 무아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죽어 있는 동안은 30분이 되었건 30년이 되었건 <없는 시간>이다. 깨고나니 죽을 때 숨이 막 넘어가는 소리 <끄르륵>하는 마지막 순간이 기억날 뿐 <생과 사> 그 사이에 삽입된 주검은 영원히 삭제되어 있었다. 경찰서에 가보니 그 젊은 친구도 와 있었다. 

그 후 나는 인생을 새로 살기로 했다. 잃어버린 과거를 재생하기 위해서 운전면허증이며 SSN 카드며 여권 등을 신청했다. 몸에 소지한 모든 것, 생명까지도 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마치 새로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는 것 같았다.

     

고혈압으로 사망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는 왜 젊은 나이에 고혈압으로 쓰러졌을까. 죽은 사람을 끄집어내어 사생활을 들추고 싶지 않다. 

고혈압은 분명 병중에 사랑의 병인 듯하다. 사랑의 병이라고 하면 마치 맺지못할 사랑 때문에 서로 부등켜 안고 투신이라도 하고 싶은 그런 사랑병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사랑병은 그런게 아니다. 한사람에게 있는 핏줄을 한 줄로 나열하면 60000마일나 된다고 한다. 지구 두 바퀴의 거리다. 심장은 이렇게 먼 곳까지 피를 뿜어 매순간 온기를 전달한다. 이것이 심장의 사명이다. 콜레스테롤로 모세 혈관이 막히면 심장은 그 모세 혈관의 막힌 것을 뚫기 위해 더 강하게 피를 품는다. 그러다가 자식을 위해 죽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끝내 심장은 멈추고 만다. 이것이 심장의 희생과 사랑의 정신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면 왜 심장이 뜨거워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왜 심장이 젖어들까! 좋은 글을 읽으면 왜 심장이 차분해질까! 보는 예술, 읽어보는 예술, 들어보는 예술은 정신과 몸을 건강하게 한다. 특히 한민족은 정서가 짙은 민족이다. 좋은 생각을 하므로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기를 빈다.

     

동독과 서독에 담이 막히던 날, 슐츄 여사는 77세였다. 그가 살고 있던 아파트는 서쪽으로 길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을 경계로 동쪽에 있는 길가의 집은 모두 동독에 속하고 말았다. 동독에서는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을 막기위해 일층을 페쇄했다. 슐츄도 2층으로 옮겨졌다. 술추는 서쪽을 향한 창문위에 올라섰다. 이 여인을 본 서쪽의 경찰은 구조망을 펴고 술츄를 뛰어내리라고 방송했다. 동독의 경찰도 이 방송을 듣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 술츄의 발목을 잡았으나 여인은 뛰어내렸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 여인의 나이도 벌써 87세의 고령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그날의 벅찬 가슴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단다. 그때 나의 심장은 매우 뜨거웠다고.


아름다웠던 젊은 때의 알갱이를 생각하라. 그러면 생각보다 훨씬 젊게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