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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김 원장 라이프칼럼] 국력 곧 문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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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들이 그 많은 수난에도 잘 보존된 것도 많지만 수많은 국보급의 문화재들이 전쟁을 겪을 때마다 침략자들에 의해 빼앗긴 가슴아픈 일들이 많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우리의 귀한 문화재가 그들의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힘이 없어 그들을 모두 돌려 받지 못하는 약한 국력으로 말을 해도 들어주는 나라가 없었다. 


우리의 역사가 평탄하지 않았으니 문화를 사랑하는 우리민족이 마음대로 지키고 싶다고 해서 지킬 수가 없었던 뼈아픈 과거를 지워버릴 수가 없는 남다른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돌이켜 보니 우리는 유난스럽게도 많은 전쟁을 겪어온 역사가 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1959년 편찬해 발행한 “한국전쟁사”에서 자그마치 우리나라는 931회의 침략을 받았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이렇게 많은 침략을 받고도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지켜 올 수 있었다는 것 조차도 기적이다. 선조들의 피눈물나는 아픔이 있었지만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모습은 남아 있기 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한수산의 4백년의 약속


우리의 국력이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주었던 한수산 작가의 “4백년의 약속”이라는 책을 10여년 전에 읽었다. 4백년전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 일본으로 끌려갔던 도예의 장인들이 남긴 시간의 족적을 심수관 가의 줄기찬 생명력을 통해 보여준 조선 도공 이야기. 이들이 끌려간 일본에선 조선에서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도자기를 만들도록 강요받고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모두 일본 최고의 도예 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읽을 때마다 주먹이 쥐어지고 불끈불끈 가슴에서 솟아나는 분통을 삭히면서 책을 읽어 내려가야 했다.


문화재의 반환


지난 4월14일, 고국에서는 매우 뜻깊은 날이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의해 넘어갔던 우리의 외규장각의궤가 145년 만에 고국의 땅으로 돌아온 날이다. 문화예술 관계자들, 시민들은 하나같이 이 역사적인 반환을 맞이하는 상기된 모습들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고 한다. 왜 아닐까? 빼았겼던 문화재 가 그것도 145년 만에 297권의 의궤가 돌아 오는데.   


우리가 프랑스군에 의궤를 약탈당한 1866년 병인양요를 기점으로 계산하면 145년이 지났다는 얘기다.  방형남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금이라도 고국의 품에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지만 반드시 곱씹어볼 점이 있다. 왜 우리 조상들은 145년 전에 의궤를 빼앗겼고, 후손들은 보물의 소재를 알면서도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오지 못했을까.”  


병인양요 때는 우리가 힘이 없어 지구를 반바퀴 돌아 강화도까지 쳐들어온 프랑스군에 소중한 기록 유산(외규장각 의궤)을 빼앗겼다. 조상 탓만 할 수도 없다.  당시 프랑스 국민은 선진국 프랑스의 자만심에다가 한국 알기를 싸구려 상품과 부도덕한 졸부의 나라로 매도할 때였으니까.   


지금은 프랑스에서 한국 기업 제품의 인기는 폭발적이라고 한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LG전자의 세탁기 등이 1, 2위를 다투며 프랑스 소비자들에게 한국 전자제품은 어느덧 명품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한국의 외교관들이 해외에 나가 상대국과 외교문제를 논의할 때에도 자국의 문화를 먼저 꺼내 딱딱한 외교가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간다고 한다. 외교문제는 물론 한국의 문화예술상품의 수출까지도 가능하니 일거양득의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갑다.  

이제는 국력이 곧 문화의 공식으로 되어 가고 있다.   


언제던가 로이터 통신은 아시아의 멋진 도시 12곳을 선정, 발표했는데 내가 자라고 살았던, 나의 젊은 날의 꿈과 추억이 서려있는 서울이 12번째로 선택되었다. 첫번째, 두번째가 아니라 서운하지만 그래도 12번째로 뽑혔으니 자부심을 갖자.

그것도 멋진 도시로 선정되었다는데.   


자랑스러운 조국의 모습이 이제는 자국의 문화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는가 보다.  


5월30일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