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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환 목사 기독칼럼] 미주한인교회 형성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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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은 그 이전까지 하나의 공통 언어를 갖는 인류가 노아의 후손인 셈과 함과 야벳의 3대 후생인류로서 바벨탑 사건 후 전 세계로 흩어진 것을 언급한다. 우리는 명확하게 노아의 3대 후손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이동하였는지 잘 알 수 없지만  한 그룹은 유럽지역으로 이동하였을 것이고 다른 그룹은 팔레스타인땅과 그 이남지역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며 또 다른 그룹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배를 타고 갔든지 아니면 베링해협의 빙하지역을 가로질러갔든지 북미와 중남미로까지 이동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민족은 대개 터키-몽골-만주로 이어지는 북방유목민계열인 알타이어군에 속한 예맥족을 주류로 하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뱃길로 혹은 중국대륙을 매개로 하여 북상한 남방계 민족이 한반도에서 혼합되어 형성된 인종군으로 인식되어 있다. 

국가적으로는 고조선을 시발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왕조 그리고 일제시대를 지나 지금은 대한민국과 북조선 공산정권으로 정립되어 있는데 고려와 조선시대 때 간헐적으로 만주와 사할린 그리고 중국과 일본으로 그것도 대개는 비자발적인 차원에서 민족의 이동이 있었다.    


여기에 반하여 1903년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한민족의 미국 진출은 자발적 이동의 성격을 갖는다. 주지하는대로 우리민족의 미국지역 이동은 크게 세번의 물결이 있어 왔다. 

첫 물결은 1903년부터 1925년까지로서 주로 하와이 노동자 이민과 그들의 필요로 초청받아 고국에서 온 ‘사진결혼 신부들’의 이민이 그것이다. 

이 첫번째 미국이민의 물결은 미의회의 동양인 차별법의 제정으로 인하여 중단되어 1940년대까지 소강기를 맞이 하였다. 

두번째 미국이민의 물결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한국에 주둔한 미군들에 의하여 형성된 군인가족들의 미국 이주와 더불어 유학생들의  미국이동이 그것이다. 

이들이 그 다음에 오는 본격적인 한인이민의 물결에 비하여 수적으로 열세하나 제3의 이민물결이 미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교두보의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세번째는 1960년대 가족이민법의 제정으로 인하여 기존 미국에 정착한 한인들이 고국의 가족들을 초청할 수 있는 문호가 열림으로 인하여 미국으로 들어온 경우이다. 

두번째 이민의 물결과 세번째 이민의 물결이 성격상으로 다른 것은 세번째 이민의  물결은 한국에서 어느정도 학력과 경제적 재력을 갖추어 이주한 것에 있다.

이제 한민족의 미국이주는 1903년을 기점으로 100년을 넘어섰다. 

이제 우리는 위의 세번에 걸친 한민족의 미국이민  물결과 더불어 함께 형성된 미주한인교회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서 미주내 한인교회의 존재의의에 대해서 숙고해 보고자 한다. 

1903년에서 1950년대 이전까지의 첫번째 한인의 미국 이민물결에  있어서 주된 거주지는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주에 집중된 것이었다. 

어떤 민족이든지 그들이 머물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두가지 요인, 즉 미는 요인(pushing factor)과 당기는 요인(pulling factor)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첫번째 미주한인의 이민에서 미는 요인은 구한말 한국의 정치.경제적 사정의 열악함에서 찾는다. 

특히 오랜 가뭄과 기근으로 대부분의 백성이 궁핍하고 절망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음에서 모종의 돌파구가 필요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속에 있을 때 주로 주한 미국선교사들의 설득과 주선으로 하와이에서 노동자들이 필요하다는 소식과 더불어 단기간에 돈을 벌어 귀향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 주어 한민족 이주의 매력적 요인으로 작용한 듯 하다.    

그리하여 주지하는대로 1903년부터 1905년까지 여명의 한인이민자들이 하와이에 노동자로 들어왔는데 이들중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었다. 

그 이유는 주한 선교사들이 주로 하와이 이민을 적극 홍보하고 주선한 것과 상대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미지의 땅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일종의 모험심이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들 첫번째 이민물결 속에는 한국에서 교회를 봉사하던 직분자들과 더불어 목회자들도 섞여 있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기도소를 비롯하여 전도소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까지 세우게 되었고 그래서 그 시대 한인공동체의 영적, 사회적 구심점은 바로 교회였다. 

이것이 왜 100년이 지난 미주한인 이민사회에서 교회가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기관이며 공동체로서 자리매김해 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이해된다. 

어느 선교학자는 미주내 비백인 소수인종 중에서 한인들이 가장 교회중심의 독특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필자도 그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