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칼럼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윤종범 작가 문학칼럼] 젊음의 한가운데 서서 3

yun jon beom.jpg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잠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여기가 미국이 아닌 한국이라는 착각.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 어디에도 이곳이 미국임을 알리는 표시가 없었고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 또한 노란 머리가 아닌 까만 머리였다. 그런 까닭에 아침 저녁으로 12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던 한국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이라는 착각이 들었던 것은 어쩌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착각은 아주 짧았다. 순간이라고도 할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아늑했다. 그때 나는 따스한 공기가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푸근한 감정이었다.


그녀는 문 앞, 왼쪽 벽 가까이 서 있었다. 나는 문 뒤쪽, 오른쪽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와 나를 잇는 선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각선을 이룰 것이었다. 그 선은 그녀가 나를 향해 조금만 몸을 돌려도 그녀의 시선으로 내 모습이 들어갈 수 있는 완만한 대각선이었지만 그녀의 몸은 앞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밋밋한 엘리베이터 벽에 풀어야 할 난해한 암호라도 새겨져 있는 듯 그녀는 벽에서 좀처럼 눈을 뗴지 않았다. 벽에 기대고 있는 나의 몸은 그녀를 향해 조금 돌아가 있었다. 내가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상 그녀의 옆 모습은 내 시선을 비켜갈 수 없었다.


그녀는 조금 지쳐보이는 듯 했다. 아니면 장시간으로 이어진 여행 때문에 지친 내 눈이 그녀를 지쳐 보이게 했는지도. 그래서일까 그녀의 어깨에 매어져있는 무거운 가방에 손을 뻗어 그 가방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녀가 허락만 한다면 그 무거운 가방을 내 어깨에 매고 그녀의 방까지 운반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한순간 미소를 지은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가방에 손을 뻗어 그 가방을 내 어깨로 옮긴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상상을 했을 때 나는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 놀란 그녀의 눈이 토끼눈처럼 동그래지는 것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은 천천히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내 몸 역시 굼벵이처럼 느렸다. 927호가 어느 방향인지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고 있었다. 그때 엘리베이터를 등지고 있던 내 몸이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스르르 돌아갔다. 배가 고프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본능처럼 무의식 중에 일어난 동작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구름이 달을 가리듯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에 가려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굳게 닫혔을 때 나는 그녀가 한국 사람인지 확인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 짐작대로 그녀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이름이라도 물어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쳐다보는 내 가슴으로 밀려들어왔다. 

   

김민호는 기숙사 방에 있었다. 감청색 모자를 눌러쓴 학생이 긴가민가 하면서 알려준 그의 방은 927호가 아닌 925호였다. 925호 문에 볼펜이 흰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메모판이 걸려있었다.


김민호는 나와 키가 비슷했고 나처럼 금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내 노크 소리에 문을 여는 그에게 내 이름을 밝히자 미안한 표정을 감추기라도 하듯 그는 코에 걸린 안경을 치켜올리며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그의 방은 환한 전등불 아래 깨끗했다. 그렇게 깨끗하게 정리가 된 남자의 방을 내 일찌기 보지 못했다. 그의 방은 남자의 방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허트러진 구석이 없었다. 나의 방문이 예고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맞이하려고 청소를 금방 끝낸 방 같았다. 한 두 시간의 청소가 아닌 하루종일 정성들여 쓸고 닦은 방 같은 느낌이었다. 바닥에 지저분하게 무엇이 떨어져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책꽂이에 꽂힌 책들도 삐져 나온 것 하나없이 가지런했다. 마치 사열을 받고 있는 군인처럼 책꽂이의 책들이 이루는 선이 곧은 일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영훈씨의 비행기 도착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어요.”


사람이 착각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나 역시 잠시나마 엘리베에터 안이 한국이라고 착각하지 않았던가.


“그러셨군요. 다행히 공항에서 구세주를 만났어요.”


한 시간을 맘 졸이며 공항의 의자에 앉아있었던 얘기는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미안해 하는 그에게 미안한 감정을 더해주지 않으려는 박애적인 의도에서가 아니라 입 한 번 뻥끗하지 못한, 휴지처럼 구겨진 내 자존심을 들쳐내 보이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구세주요? 영훈씨는 종교를 가지고 있나요?”


종교가 있냐는 그의 갑작스런 질문은 종교에 무관한 사람의 입에서 구세주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거라고 그가 생각했기 때문일까. 종교가 있냐고 물어본 그의 의중이 무엇이건 내 대답은 없다,였다. 내게는 종교가 없었고 그래서 신이나 구원자는 내 의식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따라 몇 번 절에 가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종교의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절이 위치한, 산림이 울창한 공기 맑은 산이 좋았고 절에서 나오는 야채가 듬뿍 담긴 비빔밥이 좋았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을 뿐이었다. 하느님이나 구원자를 찾아 교회나 절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절 방문이었다.


“저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학생의 성이 구씨였어요.”


“아, 이름이 세주? 그래서 구세주?”


농담을 할 것 같지 않은 진지한 얼굴이 입가에 미소을 띠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구진웁니다, 하려다 말고 나도 그처럼 그냥 소리없이 웃었다. 그의 이름이 구진우든 구세주든 공항에서의 그는 내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던 그는 무엇이 생각난듯 손을 뻗어 책상에 놓인 메모 수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몇 장을 넘기더니 수첩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내 앞에 펼쳐진 수첩에 ‘United Air 2935 오후 3시’라고 적혀 있었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반듯이 놓인 방처럼 그의 글씨도 또박또박하고 반듯했다.


“제가 이렇게 적어 놓고도 6시 비행긴줄로 생각했다면 믿으시겠습까?”


그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한번 탁 쳤다. 정신차려, 뭐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6시 비행기의 승객들이 다 빠져 나왔는데도 영훈씨의 모습이 보이지않자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거니 했죠.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무심코 이 수첩을 펼쳐봤죠.”


검지 손가락이 펼쳐진 수첩을 가리키는 그는 자신의 착각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 역시 잠시 의아했다. 정리가 잘 된 방이나 반듯한 그의 글씨체에서 매사에 빈틈이 없을 것 같은 그가 어떻게 비행기 도착시간을 착각할 수 있었을까? 3을 6으로 착각하는 빈틈은 그에게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 어쨌든 나는 무사히 기숙사에 도착했고 공항에서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는 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한 번의 죄송하다는 말이 모자란 듯 또 죄송하다는 말에 미안하다는 말까지 덧붙이는 그의 앞에서 나는 나 때문에 헛걸음을 하게 해서 내가 돼려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비록 그가 공항에서 나를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공항까지 헛걸음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세 시를 여섯 시로 인식한 착각이 없었다면 내가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도 해야할 자리에서 돼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좀 이상할 뿐이었지만 어쩌면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닐까. 가끔씩 착각이 일어나고 그 착각은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슬프게 또 때로는 화나게 예상치 않은 돌발사고를 일으키고. 각본없는 한 편의 드라마같은 그런 것.


진정 인생은 각본없는 드라마같은 것일까. 그때 문득 내 머릿속에 엘리베이터 안의 단발머리 여학생이 떠오르고 있었다. 예상치 않은 순간에, 각본없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그렇게. 사반세기의 내 인생 어디에서도 내 곁을 스쳐 지나간 적이 없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선 감정이 일지 않았던 사람. 마치 오래된 지우같은 느낌. 그녀와 함께 있던 엘리베이테 안에서 나는 8월의 한 여름에 뜻하지 않게 불어온 봄바람을 들이마시는 기분이 들었음이 새삼스레 상기되었다. 그 봄바람은 도대체 어디에서 불어왔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