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환 목사 기독칼럼] 미주한인교회 형성 이야기 2

한인의 미주이민 물결에서 첫번째 물결에 해당하는 1903년이래 하와이 이민물결은 2003년에 이민 100주년을 맞이하였고 그사이 이민 5세까지 배출하였다.
미국 본토에 정착한 한인이민의 성격은 그 광활한 지리적 분포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결속력도 떨어지고 이민역사의 연속성도 미약한 반면 하와이 이민은 밀착된 지리적 환경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대를 이어 살아온 특수한 이민정황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하와이 이민은 미주한인 전체역사의 축소판으로서 이민자가 새로운 땅에 와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음에서 하와이 이민역사에 대한 조명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한인의 하와이 이민이 가능한 첫번째 법적 근거는 1882년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에 있을 것이고 그것을 기초로 20년 후 고종황제는 한인들의 미국 이민을 허락하게 되는데, 1902년 12월 22일 인천을 떠난 첫 이민선을 시작으로 1905년 7월까지 7,200명의 한인이 하와이로 들어왔다. 1905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하여 외교권이 상실당하게 되는데 이 일로 하와이 이민은 중단되고 그 이후의 이민은 이미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들의 가족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소위 ‘사진 신부’들이 1920년대까지 유입되는데 그 이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공식이민은 중단되었다. 이런 면에서 하와이 이민의 역사는 1920년대 이전과 이후의 변화된 성격이라는 잣대에서 논구되어야 할 것이다.
하와이 왕국은 1898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그 이전의 대외정책이 변화를 받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해외이민자에 대한 정책의 변화이다. 미국은 하와이를 자국영토로 만들면서 기존의 계약노동이민을 불법화하고 당대 50달러를 소지하거나 생활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입국시키는 새로운 입국정책을 정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1903년에 하와이에 입국하는 한인들은 ‘계약문서’ 없이 50달러를 지참하고 구두계약으로 들어온 이민자들인데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이 50달러를 지참하고 들어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와이로 들어 온 한인이민자들은 거의 다 농장에서 일을 했는데 오아후 사탕수수회사의 기록에 의하면 한인들은 사탕수수농장에서 경작하는 동안 한 달에 26일간 일하고 13달러의 생활비를 선불받고 경작에 필요한 농기구, 비료 그리고 물의 공급을 받았다.
1905년의 경우 32개의 농장에 한인이 4,900명이 있었던 것으로 집계되었고 이 중에서 한인이 제일 많이 모여 있던 농장은 오아후의 에바농장으로서 대략 500여 한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1910년 인구센서스 통계에 의하면 재 하와이 한인수는 4,500여명으로 기록되었다.
1903년 하와이로 이민온 한인들은 곧이어 1905년 국권상실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이들은 조국의 국권상실의 원인이 백성들의 무지에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자녀교육에 열을 올리게 된다. 1910년 통계에 의하면 하와이 한인자녀들 중 164명이 공립학교에 다니고 106명이 사립학교를 다닌 것으로 기록되어 당대 타 소수인종과의 대비에서 한인들의 높은 자녀 교육열을 보인 것으로 하와이 이민사가 이덕희는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독특성은 재 하와이 한인들은 그들의 열악한 사정 속에서도 독자적으로 사립학교를 세워 자녀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것인데 미국 감리교 선교부의 도움으로 한인소년기숙학교를 세우고 1918년까지 운영하다가 이후 이승만 박사가 세운 한인여자 기숙학교와 한인기독교로 흡수되었다.
재 하와이 한인이민자들은 농장에 도착하자 마자 독자적인 단체인 ‘동회’를 조직하고 자체 ‘경찰’을 세워 자신들의 마을의 질서와 친목을 유지했고 이 동회를 기반으로 신문을 발행했으며 이미 언급한 자녀교육을 위하여 학교를 세우고 한글교육과 성인교육을 추진하였다. 현재의 한인회 격인 동회는 1905년 이후 항일단체의 성격을 띄고 여러 단체들의 통합과정을 거쳐 미본토에서 결성된 대한인국민회로 태동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언급할 것은 하와이 이민 초창기 정착과정에서 형성된 이민사회의 전반에 걸쳐 기독교인들과 교회의 역할이 절대적인 성격을 띈 것을 잊을 수가 없다. 1902년 첫 이민선에 탔던 한인이민자들 가운데 인천 내리감리교회 교인 28명이 승선하였고 이들은 배에서 예배를 드렸고 호놀룰루항에 내릴 때는 신자가 58명으로 늘어나 있었다고 이덕희는 기술한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 1903년 3월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는 정규예배가 시작되었고 재 하와이 한인교회 첫 교회인 에바농장교회가 설립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