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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덕 작가 문학칼럼]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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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

-강위덕

 

나뿐이야 하는 사람

나쁜 사람 되나 봐


동물들은 눈으로 열린 세계 보지만

나뿐이야 하는 사람

덫을 놓고 기다린다


나뿐이야 하는 사람

남의 마음 불 지르고

냄비뚜껑 열었다 닫았다 애를 끓인다

해설

어떤 사람은 항상 미움만 받고 놀림만 받고 삽니다.

주는 것도 없는데 미워 죽겠다 합니다.

홉스는 인간의 이기적 경향을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했고 프로이트는 인간형태의 밑바닥에 나르치시즘과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르치시즘이란 자기도취에 빠진 왕자 병을 말합니다. 거울이 없었던 시절 물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고 저것 보시오, 내 얼굴이 참으로 미남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대신들. 

대신들이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자마마 참으로 미남자이옵니다. 왕자님처럼 미남자를 예전에 본적이 없었사옵니다.

왕자는 스스로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을 흘리자 눈물방울이 물 위에 떨어져 물이 흐트러지면서 자기의 얼굴이 망가졌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누가 나를 망가트렸소. 내 얼굴이 저렇게 찌그러지지 않았소. 누구의 소행이요. 하면서 늙은 대신들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남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사람은 모두 자기도취에 빠져 있거나 자기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일은 자신에게는 중요하지만 타인에게는 구경꺼리에 지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들의 생각과 같이 간주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모든 이의 필수품으로 생각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는 허상이라는 것이 따라 다닙니다.

기하학에서 보조선이 정답을 이끌어 내는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허수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계산과정에서는 진지한 것으로 대접 받듯이, 삶에는 많은 허수들이 있고 실수(實數)가 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의 얼굴은 허상이지만 그 허상이 자기를 만들어 주고 주관적인 자아와 객관적인 자아를 꾸미는데 도움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헤이데거가 존재를 이해하고 있는 존재자가 자기를 구명하여야 한다고 했지만 나르치시즘에 빠져들면 자기를 이해하고 규명하려 하는 바른 눈에서 헤어나질 못합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존재의 모든 진상을 다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존재에 접근하여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보인 그 모습은 존재의 원래 모습이기 보다 보는 우리 쪽의 요구에 의해서 변질된 것입니다.

존재 혹은 사실이라는 이름의 대상은 이렇게 변질된 것이기 때문에 이미 가치적인 색채로 치장된 어떤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주관적인 윤색은 인간의 특성상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인간의 특성이란 인간은 동물로서 자기를 구체적 상황에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적당한 내적 요구에 쫓아서 자연 혹은 사실을 재편성하여 구성하는 것입니다.

Kant가 우리에게 제시한 지식에 대한 해석을 나는 여기에서 적절히 원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은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고, 경험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즉,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적 자료와 우리가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감각적 차원의 시간과 공간과, 오성의 범주들이 한데 어울려 지식을 이룬다고 했듯이 존재와 사실은 우리 각자의 내면적 요구에 따라 재구성되었습니다.

남의 마음에 불질러 놓고 냄비뚜껑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속을 끓이는 것은 둘 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남의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깨닫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