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환 목사 기독칼럼] 미주한인교회 형성 이야기 6

1940년대까지 하와이를 포함하여 미주 한인인구는 이미 언급한대로 대략 8천여명선으로 집계되고 주된 거주지역은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지역에 집중되었는데 이 시대에 있어서 미주한인교회의 대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미주한인들에 대한 종교적 구심점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미 어느 선교학자가 묘사하였듯이 미주한인사회는 미국에 있는 비백인종가운데 가장 ‘교회중심의 소수인종'(church-orientd ethnic group)으로 특징지어진다.
그 이유는 이미 언급한대로 초창기 미주한인 이민자들을 모집하였던 주한 선교사들의 주도적인 역할로 인하여 미주이민에 응한 대다수의 한인들은 바로 한국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처음 하와이 이민자들은 하와이로 향하는 선상에서 평신도 지도자들의 인도 속에 예배를 드렸고 하와이에 도착하여서도 이들은 예배처를 정하고 예배를 드렸다.
1906년 하와이를 방문한 재한 감리교 선교사 존스는 그 당대 재 하와이 한인 중의 3분의 1이 기독신자였던 것으로 증언하고 있고 김원용은 1913년대의 한인 중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 신자였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1903년부터 1914년까지 하와이 지역에 설립된 예배처는 24개나 되는 것으로 김택용 목사는 그의 책 <재미 한인교회 75년사>에서 기술할 정도로 초창기 재 하와이 한인이민자들의 대부분은 바로 교회중심의 생활을 유지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재미 한인사회의 초창기에 이민자들이 교회중심이었던 것은 미주 이민자들의 주된 구성원들이 이미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인 것과 더불어 미국사회 자체가 기독교적 문화권 속에 있기 때문에 이미 기독교 신자들로서 미국에 온 한인이민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미 존재하는 미국 교회건물을 임대하여 쉽게 종교적 행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창기 재미 한인이민교인들의 종교적 필요를 도와 준 미국 주류교단으로는 감리교회와 장로교회를 특히 거론할 수 있다.
초창기 미주한인교회의 대 사회적 역할은 두번째로 교회가 곧 한인사회의 정치-사회적 구심점이었던 점에 있다.
이것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구성한 한인회 성격의 동회를 설립한 주된 인물들은 바로 기독교인들이었던과 초창기 한인회의 지도자들 중에 목회자들이 많이 있는 것에서 그 예를 들 수 있다. 동회는 그 시대 한인회였고 영사기능을 관장했으며 경찰기능도 수행하였다. 나중에 동회는 여러 다른 단체와 통합되어 대한인국민회로 태동되는데 이것은 해방 이전까지 항일단체의 성격으로 바뀌게 된다.
미주한인교회가 이 시대 한인사회의 정치-사회적 구심점이 된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와 더불어 부정적인 요소들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한인사회의 구심점이 되었던 지도자들의 성향에 따라 한인사회가 분열된 것 만 아니라 교회도 동일한 분열의 전철을 밟게 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이승만 박사와 관련된 것으로서 1920년대 하와이 한인사회가 반 이승만 박사파인 국민회파와 친 이승만 박사파인 동지회로 나뉜 것과 더불어 기존의 하와이 한인 감리교회를 탈퇴하고 이승만 박사가 독립적인 교회인 한인기독교회를 설립함으로써 교회가 분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로스엔젤레스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는데 나성 한인장로교회 교인중에서 이승만 박사를 추종하는 교인들이 1924년 분립하여 자유교회를 세웠다가 1930년 이후부터는 나성 한인감리교회로 계승되었다.
이와 같이 재미 한인교회들 가운데서 반복되는 한인교회들의 현기증 나는 교회분열의 현상은 한국인들의 사회심리 현상적 차원에서 더욱 심층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세번째로 재미 한인교회의 대 사회적 역할은 문화적 공헌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초창기 한인교회는 이민자들이 새로운 미국문화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도록 여러 영역에서 도움을 주었던 기관이다. 대부분 목회자들이 이민자들의 언어소통의 창구역할을 담당했고, 교회에서 자녀들을 위한 한글학교와 성인들을 위한 야간학교를 개설했으며, 교회주보는 나중에 발전하여 신문이나 잡지발행으로 이어졌다. 교회는 미국교단의 도움을 받아 사립학교를 세워 자녀들의 교육기회를 제공했고 기숙사를 설립하여 공부에 전념할 숙소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잊을 수 없는 재미 한인교회의 대사회적 공헌은 조국에 대한 일제 강점기 동안 교회가 곧 항일운동과 독립운동 그리고 더 나아가 독립운동 자금의 주된 재원이었던 점이다. 이덕희는 일제 강점기 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의 3분의 2를 하와이 한인사회, 특히 교회가 담당했던 것을 기술할 정도로 1945년대까지 재미 한인교회의 대사회적 역할은 매우 긍정적이고 컸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