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갱목 값보다 못한 광부인생 "내일은 없다"-거대 자본의 광부로 전락한 노다지꾼들(하)

금같은 광석은 보통 두 종류로 존재한다. 지상에 노출된 광석은 쉽게 채취가 가능하다. 그러나 금처럼 다른 물질에 붙어있으면 여러 경로를 거쳐 추출해야 한다. 금은 보통 암석같은 곳에 붙어있다. 금이 달라붙어 있는 암석이 지하 수십 미터에 있으면 우선 갱도를 내어 광석에 도달한 후 채취한다. 캐낸 광석은 금을 분리하기 쉽게 잘게 부순 후 물을 이용하여 불순물을 걸러낸다. 이후 금이 붙은 광석에 수은을 혼합하여 아말감을 만든 후 증류시켜 금과 수은을 분리한다. 수은은 고가이므로 증류기를 통해 사용한 수은은 다시 재사용된다.
감자를 이용하여 아말감에서 금 추출
감자를 사용하여 아말감에서 금을 채취하기도 한다. 이 방법은 광산기술이 앞선 멕시칸들이 사용하던 방법으로 우선 감자를 반으로 자르고 속을 파낸다.
속이 빈 감자에 아말감을 채운 후 나머지 속이 빈 감자를 덥고 철사로 묶은후 불에 굽는다. 한 쪽 감자에는 금조각이, 다른 쪽 감자에는 증발된 수은이 남게된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채굴기술을 전수받은 멕시칸들은 광맥을 찾는데는 천부적인 소질이있어 노다지꾼들은 채광기술이나 감자 사용법 같은 간단한 기술을 이들로부터 배웠다.
옛부터 광부들에게는 “눈은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땅은 두더지처럼 재빠르게 파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성공한 노다지꾼들은 최소한 기본적인 지질학 정도의 지식은 갖추고 있었다. 만약 기본적인 지질학조차 문외한인 경우는 몇 주고 몇 달이고 외지고 척박한 땅에서 자신과 노새의 양식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고생만 했다. 프로급 노다지꾼은 우선 기본적인 지질학 지식을 통해 가능성있는 지역을 확보한 후 자신과 후원자의 이름으로 광권을 확보한다. 이후 후원자에게 자신의 몫을 우선 선택하도록 한다. 후원자와 앞일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보다 19배 무거운 금 갈라진 강바닥에 침전
노다지꾼에게 물은 필수적이다. 금은 물보다 19배 정도 무겁다. 모래보다는 3-4배 정도 더 무겁다. 사금을 캐는 노다지꾼들이 즐겨 찾는 곳은 물이 천천히 흐르는 냇물이 꺾어드는 곳이다. 강바닥이 갈라진 틈을 유심히 살피면서 천천히 파나가면 분명 금싸라기를 건질 수 있다. 이런 곳이라면 전문가나 아마추어를 가릴 필요가 없다. 금을 찾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노다지꾼들은 팔자를 고칠만한 금을 찾지못했다는 뜻이다.
광부들은 광산에서 일하면서 순도가 좋은 광석을 슬쩍한 후 집에서 녹여 재미를 보았다. 좁은 갱도에서 꾸부리고 땅을 파서 다리가 휜 광부들은 말을 타고 멀리 갈 필요가 없이 집에서 금을 채취했다. 우선 집안에 간이 제련시설을 갖춘 후 광석을 녹였다. 일터에서 점심 도시락 상자에 좋은 광석을 가득 담아 일이 끝나면 집으로 몰래 빼돌렸다. 광산주들은 이를 막으려 일이 끝난 광부들을 샅샅히 뒤졌다. 심지어 옷을 벗겨가면서 뒤지기도 했다. 발각이 되면 당장 해고되고 당사자의 명단은 인근 광산으로 통보되어 다시는 광산에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집에서 몰래 제련하느라 증발하는 수은을 너무 마셔 머리칼이나 이가 몽땅 빠진 광부들은 예외였다. 이미 법의 심판이 미치지 않았어도 충분히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증발한 수은 들어마셔 머리칼 이빨이 모두 빠진 광부
서부 광산촌에서는 “매 분마다 광산주가 바뀐다.”고 할만큼 광권 거래가 활발했다. 서부 이곳 저곳에서 노다지가 터지자 순진한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자신의 일생을 광산에 걸었다. 이런 허점을 이용하여 광산 주권을 파는 행상인이나 사기꾼들이 극성을 부렸다. 사기꾼들은 미리 점찍은 도시에 나타나 있지도 않는 도시의 있지도 않는 광산의 주식을 판 후 다음 열차 편으로 다른 도시로 사라졌다. 당시 서부에서는 광산 사기꾼들의 신상정보를 의무적으로 금융당국에 신고토록 되어있으나 너른 천지에 그들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한물 간 광산을 팔아먹기 위해 광산주들은 별별 기발한 방법을 다 동원했다. 순진한 투자자를 발가벗기기 위해 빈 껍질만 남은 광산에 다른 광산에서 퍼온 광석을 섞어넣고 좋은 광산으로 위장했다. 이것도 모자라 어떤 악덕 광산주는 자신의 샷건에 금가루를 장전한 후 금을 캐던 광벽에다 총질을 했다. 금가루 박힌 광벽을 좋은 광산이라고 순진한 사업가를 속이는 것이다. 이런 수법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외관상 금이 박힌 것을 확인했어도 못미더운 사업가는 광벽에 있는 암석을 다이나마이트로 깨보라고 요구한다. 뛰는 놈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법. 그러면 광산을 팔지못해 안달인 광산주는 다이나마이트 머리 부분에 금가루를 바른 후 터트린다. 이런 수법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광산을 사고 싶어하는 사업가는 자신이 준비한 다이나마이트를 손수 가지고 다녔고 아예 전속 지질 전문가를 대동하기도 했다. 광산촌의 지역 경제는 이처럼 광산이 매도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다.
금은 금염화 상태로 왕수에서 용해된다. 또한 금염화는 물에 용해된다. 쓸모없는 광산을 팔기위해 광산주는 세척기를 이용하여 암석이나 강바닥의 갈라진 틈에 물에 용해된 금염화를 주사하여 가치있는 광산으로 위장했다.
한물간 광산 처분하려 갖가지 사기수법 등장
백인 정착민들로 부터 빼앗은 말을 타고 약탈로 살아가는 아파치(아파치라는 말은 주니 인디안들의 “적”이라는 뜻이다.) 들이 들끓고 방울뱀이나 전갈이 횡행하는 불모의 땅 ‘아리조나’에 백인들이 하나 둘 모여든 것은 1854년 Gadsden이 미국 연방의 대표로 멕시코의 소노라 이북 서남부 땅을 사들이고 부터다. 아리조나의 철도부지를 목적으로 불모의 땅을 매입할 때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으나 불모의 땅은 얼마 후 엄청난 보화가 쏟아져 나오는 서부개척의 전초지가 되어 신생 미국에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다.
1500년대 뉴 스페인의 스페인 황실에서는 뉴 멕시코 주를 설립한 후 Espejo 나 Onate 같은 정복자들을 오늘의 아리조나에 보냈다. 이들은 불모지에서 금, 은 등 광맥의 흔적은 발견했으나 여러가지 여건상 발굴은 아예 시도 조차 못했다. 이후 몇몇 선교사들도 소규모로 채굴을 시도했으나 여러가지 절차로 더 이상 진전을 보지못했다. 그러나 이 광대한 불모지에서 금은 보화가 쏟아지자 백인 자본가들이 몰려들고 이들을 따라 광부들이, 또 장사꾼들이 몰리자 이들을 보호하려 군의 요새가 들어서면서 불모지는 지상낙원의 오아시스로 변했다. 또한 정착민들을 괴롭히던 아파치들은 그들의 터전을 잃고 멀리 인디안 보호구역에 유배되면서 오랜 인디안의 땅에는 장총과 마차를 모는 백인들의 세상이 되었다. 이곳에는 땅에서 캐낸 금은 보화를 빼앗아가는 황제도 없고 일정한 몫을 요구하는 교회도 없었다. 땅에서 나온 재화는 발견하고 캐낸 이들의 몫이었다.
아리조나에서 처음으로 곡괭이로 땅을 파내려간 사람은 “아리조나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Charles Poston과 독일 출신 광산 기술자 Herman Ehrenberg이다. 이들은 1854년 미국이 아직 공식적으로 이 지역을 접수도 하기 전에 나타나 광맥을 탐색했다. 오클라호마에서 선착순으로 땅을 차지하던 것을 생각하고 두 사람은 샌 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이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탄 배는 난파되어 멕시코 해안 Guaymas로 흘러들었다. 당시 두 나라는 국경문제로 예민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국경 침입죄로 수감되었으나 다행히 Poston의 달변으로 석방된 후 곡괭이를 들고 아리조나에 나타났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