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불임의 땅 '노다지'를 잉태하다-빈민가에서 살다 간 "아리조나의 아버지" 포우스턴 (상)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조으는 듯 서있는 선인장 사이로 뿌연 먼지가 길게 꼬리를 문다. 아스라이 떠도는 먼지 사이로 힘겹게 굴러오는 포장마차가 보이고 입에 허연 거품을 문 황소가 버겁게 끄는 달구지, 그리고 등에 가득 짐을 실은 노새가 비틀대며 뒤를 따른다.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아파치와 살을 태우는 듯한 더위, 숨이 멎을 듯한 추위를 헤치며 묵묵히 걸어온 길이 얼마인가. 1,000여 마일 머나먼, 길도 아닌 길을 따라 오는 동안 겨울은 봄이되고 봄은 벌써 여름이 되었다. 멀리 산자락에 늘어선 광부들은 짐을 싣고 불원 천리 찾아온 화물 수송대를 향해 감격의 환호를 지른다. 환호 소리에 놀라 황무지 덤불에 몸을 숨기고 있던 들새들이 놀라 푸드득 더운 하늘로 날개짓을 한다.
물도 없어 나무도 짐승도 살기를 거부하는 땅, 오늘의 아리조나 중남부에 백인들이 나타난 것은 오직 황무지 땅 속에 뭍힌 재화를 찾으려는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탐욕에 생사를 내던진 인간들은 오직 탐욕만을 향해 생명의 서식을 거부하는 황무지를 방황하다 누구는 탐욕을 거머쥐고 누구는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황야의 모래바람에 육탈된 백골을 뉘여야만했다.
미국 영토로 편입된 황무지에 노다지 찾아나서다
1855년 미국과 멕시코 간에 Gadsden 조약이 체결되고 멕시코 중남부 땅이 미국 영토가 되면서 이 황무지에는 노새 등에 곡괭이를 얹은 백인들이 서서히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보다 일년 앞서 샌 프란시스코의 세관에 근무하는 Charles D. Poston은 독일 출신 광산 기술자 Herman Ehrenberg와 함께 오늘날의 아리조나 중남부에서 힐러강까지 탐광하며 광석을 모으기도했다. 멕시코의 영토를 사들인 미국은 1855년 측량기사 William H. Emory에게 미국과 멕시코 간의 새로운 국경을 측량하도록 했다. 이때 Emory는 “새로 미국에 편입된 땅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내려온 많은 노다지꾼을 볼 수 있다. 또한 나의 대원중 일부는 Arivaca 근방에서 옛 스페인 사람들이나 멕시코 인들이 개발하다 방치한 광산이나 제련소의 잔해를 발견했다.”라고 본국 정부에 보고했다.
조약 체결당시 오늘날의 아리조나 중남부 지방에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은 오직 아파치를 피해 온 멕시칸 주민 300여 명이 있는 투산뿐이었다.
1775년 스페인 황실이 인근 인디안들의 준동을 막기위해 세운 투산은 1850년대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의 기록에 “아주 작고 지저분한 멕시칸 마을이었다.” 그래도 당시 광산은 수비대가 주둔한 투산 근방 50마일 이내에서 개발되었다.
아파치가 두려워 투산 근방 50 마일 이내에서 광산 개발
척박한 황무지에서 노다지를 캔다는 것은 광부들에게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언제, 어디서 무자비한 아파치들이 광부들을 공격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길 뿐이었다. 또한 주위에는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오직 ‘설 설’ 기어다니는 방울뱀과 전갈, 그리고 승냥이, 서로 먹이감을 발견했다고 보내는 아파치들의 검은 연기가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피어오를 뿐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황금열풍에 휩쓸렸다가 재미를 보지못한 노다지꾼들이 발길을 옮긴 곳이 미국에 새로 편입된 황무지였다. 이들은 옛 스페인이나 멕시칸들이 포기한 광산을 찾아다녔으나 별다른 소득을 보지못했다. 설사 질이 좋은 광석을 캐냈다 하더라도 철도 등 운송 시설이 전무한 상황에서 광석을 제련소까지 운반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떠돌이 노다지 꾼들은 별다른 재미를 보지못하고 사라졌다.
“아리조나의 아버지”라고 추앙받는 비운의 사나이 Charles Debrille Poston 이 중남부 황무지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은 1856년 투박에 대규모 광산 회사를 차리고부터다. 1825년 4월20일 링컨 대통령의 출생지 인근인 켄터키의 에리자베스타운에서 태어난 포우스턴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고아 포우스턴은 운좋게 카운티의 서기 Samuel Haycraft의 조수가 되어 여러가지 행정업무를 익히며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했다. 이후 테네시로 이주하여 테네시 최고재판소의 서기가 된다. 1851년 캘리포니아 샌 프란시스코에 황금열풍이 일자 포우스턴도 샌 프란시코 행 역마차를 탄다.
광산 찾아 아리조나를 찾은 포우스턴
샌프란시스코에서 세관에 새로운 직장을 마련한 포우스턴은 마침 1853년 미국과 멕시코 간에 영토매매 흥정이 벌어지자 미국에 편입될 영토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 출신 재력가와 교분을 튼다.
1853년 말 포우스턴은 프랑스 출신 재력가의 후원으로 독일 계 광산 기술자 Herman Ehrenberg와 함께 미국 영토가 될 황무지를 향해 배를 타고 샌 프란시스코를 떠난다. 두 사람이 탄 배는 멕시코 연안에서 난파되어Guaymas항 근처 해안으로 밀려든다. 국경침입죄로 구금되었던 두 사람은 포우스톤의 달변으로 석방된다. 포우스턴과 에렌버어그는 Xan Xavier del Bac과 Ajo를 지나 힐러 강 일대를 돌며 내용물이 풍부한 광석을 수집한다. 두 사람은 또한 힐러 강과 코로라도 강 합류지점에 있는 유마 요새까지 이르러 인디안 추적보다 광산추적에 더 관심이 많은 사령관 Samuel Heintzelman 대위와 의기투합한다.
포우스턴과 에렌버어그는 기암절벽 사이를 도도히 흐르는 코로라도 강을 건너 샌디에고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로 여정을 잡았다. 코로라도 강의 나룻터 사공은 독일에서 이민 온 L.J.F Jaeger였다. Jaeger가 부른 두 사람의 배삯은 25 달러. 무척 비싼 값이었다. 포우스턴은 에렌버어그와 무엇인가 잠시 상의하더니 간단한 측량도구와 종이 연필등 필기도구를 꺼냈다. 그리고 코로라도 강 건너편 캘리포니아 쪽을 유심히 살핀 후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려넣었다.
유마 요새 사령관과 교분을 나누다
나룻배를 타는대신 무엇인가를 그리는 손님이 궁금해진 뱃사공 Jaeger는 포우스턴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요?”하고 물었다. 귀찮다는 듯 포우스턴은 퉁명스럽게 “좀 가만히 계시요.”하고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계속 강 저쪽을 살피며 무엇인가를 그려 넣었다. 궁금증이 더한 Jaeger가 조심스럽게 다시 묻자 포우스턴은 지금 신 시가지 도시계획 초안을 잡는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불쌍한 Jaeger는 한층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무슨 도시요?”하고 재차 물었다. 포우스턴은 약간은 건방진 태도로 “코로라도 시티”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강 건너편에 신도시 코로라도 시티를 건설하러 기본 설계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굳이 강을 건너가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했다. 신도시에서 좋은 몫을 잡으면 일생 삿대질을 하지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Jaeger는 이제 포우스턴의 두 다리를 잡고 애원해야 될 입장이 되었다. Jaeger는 두 사람에게 강을 건너가서 천천히 주변을 살피라고 말하고 두 사람을 돈을 받지않고 건너주겠다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못이기는 척하고 나룻 배를 탔다. 무사히 샌디에고까지 도착한 포우스턴은 이후 ‘코로라도 시티’의 황당한 도시계획을 어떤 얼빠진 샌디에고 주민에게 1만 달러에 팔아 광산을 마련하는 자금으로 유용하게 썼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포우스톤은 가방 가득 담아 온 광석 조각을 들고 재력가를 찾아다니며 “신천지”에 있는 광산에 투자할 것을 열심히 권했다. 그러나 아파치가 횡행하는 불모지 “신천지”에 거금을 투자할 재력가는 아무도 없었다. 실의에 빠진 포우스톤을 구한 것은 오하이오의 신시내티로 전보된 하인첼맨 소령의 한 통의 편지였다. 지역 사령관으로 영전한 하인첼맨 소령은 ‘유력한 재력가’를 소개하여 주겠으니 한번 방문하라고 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