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라이프칼럼] 친구야

가끔씩 지나간 날들이 그리울 때면 항상 네 모습이 떠 오르곤 하지. 그 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잊지 않고 너와 나누었던 얘기들이 생각나는 것은 따뜻한 그리움을 찾고 싶어서인가 보다. 친구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찡해지는 것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싱싱하던 젊은 시절에야 매일 만나도 즐겁고,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지 해도해도 끝없고, 보기만 해도 웃음부터 나오던 시절이었으니 가슴이 찡하다는 말의 뜻도 모르던 시절이었겠지.
경은아, 초등학교 시절부터 너의 해맑은 조용한 미소가 나를 지금까지 붙잡고 있어. 자라나면서 우리들의 그 미소 뒤에 숨은 외유내강(外柔內强)의 성격을 서로 발견하고는 우리는 서로를 더 좋아하게 되었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서로를 묶어 두고 있는가 보다. 공부하는 것도 혼자는 안된다고 너희 집, 나의 집으로 다니면서 나란히 앉아 공부했고 둘이는 무엇이든지 함께 해야 되는 줄 알았지 지금은 너는 서울에서 대학 강단을 떠나지 않고 후학들을 기르다가 은퇴했고 나는 건강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아리조나의 벌판에 서서 네 별하나 내 별하나를 밤하늘을 향해 세어보고 있는 초라한 몰골이 되었구나.
몇년 전, 모국에 다니러 나갔다가 조선호텔 커피숍에서 여전히 배실배실 웃으면서 조용조용 얘기하던 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만큼 살아 보았으니 그동안 겪어 본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건강하게 사회에 잘 적응하고 가정 잘 지키면서 각자의 분야에서 강인하게 살아 왔다고 자부심이 대단했지.
네가 살아 오면서 제일 보기 싫은 사내는 내 앞에서 한 말과 돌아서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한 것이 너무 다를 때 꼴불견이라고 하면서 낄낄 웃었지. 오죽 못났으면 그렇게 밖에 자기를 표현할 수 없었겠느냐고.
적어도 우리는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실망을 주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또 약속했었지.
경은아, 몇년만에 한 번씩 나오는 내가 밉지만 아쉽다고 이틀을 연속 만나 별의 별 이야기들을 다 나누었지.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조금씩만 더 잘해 주면 아무 탈없이 검은머리 백발이 될 때까지 살텐데 너무나 이혼율이 높아져 가정파탄 뿐이 아니고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나쁜 길로 나가는 것이 염려라고 했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내와 남편, 모든 정성을 다 해도 모자랄 것이 없을텐데 안타까운 일이야. 검은 머리가 어느 새 흰 머리로 덮히고 팽팽하던 얼굴에 주름 살이 늘어나는 것을 보는 것만도 가슴 한 쪽이 아려온다. 경은아, 너도 그러니? 흘러간 세월 돌아 보다가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도 자신만만하고, 패기에 넘치던 세월, 친구들에게 늘 둘려싸여 호탕을 부리던 그 모습은 어디로 다 갔을까. 노안으로 변해가는 세월을 탓 하다가 그만 쓰라린 가슴을 주체못해 짠한 눈물이 흘러 내리더구나. 그 많은 세월 아프다는 아내 살려내느라 저 얼굴에 세월을 남겨 놓았구나 생각하니 모두가 내 잘못이라 생각하니 더 아프다.
요즘에는 귀 거 래 사(歸 去 來 辭)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해 본다. 학창시절에 너와 함께 많이도 읽었던 세계의 명시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생각나지?
<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의 호도로, 진흙과 나뭇가지로 작은 집 짓고, 아홉 이랑 콩밭 갈고 꿀벌도 치며, 벌이 노래하는 숲속에서 홀로 살리…> 너무도 아름다워.
귀거래사 하면 도 연 명(陶 淵 明)의 시(詩)가 우선으로 꼽히겠지?
<발길 멎는 아무데서나 쉬다가도, 문득 고개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아는구나. 석양이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려는데, 나는 홀로 선 소나무를 어루만지고 상념에 잠겨 서성이며 돌아본다. 어찌 가고 머무름을 자연의 섭리에 마음대로 맡기지 아니하고, 이제 새삼 허둥지둥 분주하게 욕심내어 어디로 가려는가?>
친구야, 이렇게 멋진 고향으로 돌아 갈 날도 우리에게 있을까?
04. 29. 2013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