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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프레스캇'을 수도로 만든 '링크스'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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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파즈에서 대박을 터뜨린지 얼마 안되어 Weaver는 노다지꾼 A.H Peeple  일행을 안내하여 전설적인 산사나이 Jacob Reddeford Walker 일행이 지난 길을  뒤따랐다. 1863년 8월 일행은 오늘날 콩그레스 접경지역 Antelope Hill 근방에서 야영했다. 멕시칸 노다지꾼들도 Weaver의 야영장 근방에 머물렀다. 한방중 돌풍이 몇 차례 불었다. 다음날 아침 멕시칸 노다지꾼은 밤새 달아난 노새 몇 마리를 찾아나섰다. 멕시칸 노다지꾼들은 노새의 발자취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산 정상에는 달아난 노새 몇 마리가 대접처럼 움푹 파인 곳에서 어슬렁대고 있었다. 노새에게 다가선 멕시칸 노다지꾼들은 순간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노새의 발굽 밑에는 감자 알만한 황금알들이 흙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침도 거른 채 멕시칸들은 열심히 금덩이를 주웠다. 각자  4000 달러 상당의 황금알을 노새 등에 실은 멕시칸들은 뒤도 돌아보지않고 멕시코로 향했다. Weaver와 Peeple 일행은 멕시칸들이 황금을 줍던 자리에서 계속 금을 캤다. 일 에이커 땅에서 약 25만 달러의 금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 광부는 간단하게 잭 나이프로 자갈사이를 헤집어 금을 줍기도했다. Rich Hill이라는 광산 이름은 노새를 찾아나선 멕시칸 노다지꾼들이 불러 생겨난 이름이다.


백인 최초로 겨울철 시에라 네바다를 넘은 워커 

프레스캇을 아리조나 연방영토의 첫 수도로 만든 전설적인 산사나이 Joseph Reddeford Walker는 1798년 테네시의 로안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1821년 Becknell이 이끄는 산타 페이 원정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그는 이후 유능한 비버 사냥꾼 겸 모피상인으로 이름을 날린다. 모피 산업이 한창 전성기 때 워커는 캘리포니아에서 비버 사냥을 하기위해 사냥꾼대원을 이끌고 한 겨울 백인 최초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기도했다.

 6피트의 장신에 몸무게 200 파운드가 넘는 거구의 워커는 일생을 모험과 도전으로 살아온 개척민이었다. 부와 모험을 찾아 워커를 따라다니던 Daniel Conner 라는 젊은이는 이후 자신의 회상기에서 어떤 노련한 산사나이와 나눈 워커에 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침 우리는 로키산맥 남쪽 정상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옆을 지나는 선배에게 대장 워커는 어떤 사냥꾼들이 지나간 흔적을 찾아 올라갈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워커는 남이 지나간 자리를 다시 밟지않아요. 그는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만들어요.’ 라고 대답했다.”

1861년 워커는 캘리포니아에서 노다지꾼을 모아 코로라도 강 연안으로 금을 찾아 나섰다. 어느 때는 코로라도 강 근방에서 열심히 땅을 뒤지던 워커 일행은 며칠 후에는 뉴 멕시코의 산타 페이에서 어슬렁거렸다. 아리조나 지역을 평정하고 뉴멕시코에서 전투를 벌이던 칼튼 장군은 탐광사업에도 흥미가 많았다.

1863년 칼튼은 워커 일행에게 아리조나 북부지역에서 작업할 것을 권했다. 마침 아리조나의 연방영토 초대 지사 John Goodwin이 일행과 함께 아리조나 땅에 들어섰다. 당시 힐러 강변에서는 힐러 시티에 이어 라 파즈, 리치 힐에서 연신 노다지가 터져 신문은 그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다.


인디안 추장 볼모로 잡고 아파레치아 산맥 넘어

아리조나로 향하던 워커 일행은 뉴 멕시코의 실버 시티 가까이에 있는 오래된 산타 리타 구리광산 근방을 지나게 되었다. 일대는 노후한 아파치 추장 Mangas Coloradas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다. 코로라다스의 전사들은 산타 리타 산에 몸을 숨기고 인근에서 광석을 찾는 워커 일행을 시도때도 없이 괴롭혔다. 워커일행은 또한 코로라다스의 부하들이 지키고 있는 험준한 아파레치아 산맥을 넘어야 아리조나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고심하던 워커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늙은 코로라다스 추장을 아파레치아 산맥을 무사히 넘을 때까지 인질로 삼자는 것이다. 아파레치아 산맥은 1710년 처음으로 스페인 지도에 등장했다.

1710년 당시 소노라 일대를 선교하던 키노 신부는 일기에서 아파레치아는 “북쪽과 북동쪽이 콜로라도 강 북서쪽에 이어져있다.”라고 처음 언급한 험준한 산맥이다.

마침 야영지에는 북군의 West 장군 (모우리 사건 조사단 단장 역임)의 부하 일부가 지나다가 합류했다. 워커의 묘책을 실행하기 위해 Jack Swilling과 북군 3명이 백기를 들고 Pinos Altos산으로 노추장 망가스 코로라다스를 만나러 떠났다. 워커의 묘책을 충실히 수행한 Jack Swilling은 이후 호호캄 인디안들의 관개수로 유적을 보완하여 피닉스라는 대도시를 창건했다. 스윌링은 투산 일대로 흘러왔다가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아파치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민병대를 조직하고 장교로 활동했다. 남군이 아리조나를 장악하자 스윌링의 민병대는 남군에 흡수되고 스윌링은 졸지에 남군 중위 계급장을 달았다. 스윌링은 헌터대위의 명령으로 북군 포로를 리오 그란디까지 호송하던중 부대를 이탈한 후  워커의 노다지꾼에 합류한다.

Pinos Altos에 도착한 스윌링은 추장 망가스 코로라다스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백기를 달고 온 스윌링 일행을 의심하는 아파치 전사는 아무도 없었다. 코로라다스 추장은 내심 백인과의 끊임없는 소모전에서 어떻게 하면 종족을 보호할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중 이었다. 스윌링은 백인대장이 추장과 휴전회담을 원한다는 뜻을 전하고 추장이 원한다면 백인대장이 있는 요새를 방문해 협의할 수 있다고 정중히 방문을 청했다.

배석한 코로라도의 전사들은 백인들은 본래 믿을 수 없는 종족이니 절대 백인부대를 방문해서는 안된다고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망가스 코로라다스 추장은 ‘이처럼 휴전을 청하는 백인 대장의 요청을 거절하면 더 큰 전투가 일어나 아파치 전사들과 부녀자가 희생된다’ 고 말하고 부대방문을 허락했다. 코로라다스 추장은 스윌링을 따라 백인 부대로 향했다. 아파치 전사 20여명이 코로라다스 추장을 앞뒤로 호위하고 따랐다. 부대에는 휴전을 의미하는 백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정문보초들이 일행을 마중했다. 곧이어 나타난 장교가 추장에게 예를 표하면서 정문안으로 밀고 들어가자 정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뒤따르는 아파치 전사들을 막았다. 이것이 추장과 전사들이 나눈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이 되었다. 백인 병사들은 노추장을 즉시  부대 영창에 가두어 버렸다. 스윌링은 노추장을 회담장까지 유인해 오는 그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한편 감옥에 갇힌 노추장을 한밤중 불빛으로 스쳐본 웨스트 사령관은 지나가는 말로 옆에 있는 부하가 들으라는 듯 “나는 저 늙은이가 죽었으면 좋겠다. 저 늙은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백인들이 길에 피를 뿌려야만 했나.” 라고 중얼거렸다. 그가 바라던 대로 보초는 다음 날  새벽 망가스 코로라다스 추장을 사살했다. 그리고 사령관은  탈옥하려던 추장을 부득히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병사들은 죽은 추장의 목을 자른 후 시신은 시궁창에 던져버렸다. 머리부분은 골상학을 연구한다고 물에 삶은 후 해골은 뉴욕의 연구소로 보냈다.


워커와 34명의 대원들 링크스 금광을 개발

스윌링을 포함한 워커일행은 무사히 아파레치아 산맥을 넘어 투산으로 향했다. 투산에 들러 일행은 양식 등 보급품을 노새에 싣고 다시 하사얌파 강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근방을 열심히 뒤지던 34명의 워커 일행은 1863년초 드디어 오늘의 프레스캇에서 북쪽으로 수마일 거리인 Lynx Creek에서 대박을 터트렸고 이후 그들이 안내해온 지사는 이 일대에 수도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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