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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나귀가 발견한 '실버 킹 은광'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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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x Creek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곳에서 Sam C. Miller가 살쾡이를 죽여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다른 이야기로는 이곳에서 군인들이 소를 많이 도살하였는데  소의 체인이  많이 발견되면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34명의 워커대원은 1863년 5월 10일 모임을 갖고 “광산에 멕시칸 노동자 출임금지등 인종차별적인 안”을 의결했다. 새로 취임한 아리조나 주지사는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도시 이름은 당시 저명한 사학자 William H. Prescott를 기려 Prescott라고 지었다. Lynx광산에서는 이후 근 200만 달러어치의 금을 산출했다. Lynx광산이 개발되면서 처음으로 광권이 등록되고 광산업에 대한 합법적인 행정체계가 이루어졌다.


2백만달러의 황금이 나온 링크스 금광

Lynx 광산 초기 워커일행은 사금 매장지를 큐빅 에이커 당 18센트에 매도했다. 사금 매장지를 산 사람은80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당시 금 시세는 아운스당 18달러. 광부들은 하루 대략 20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나 어떤 운 좋은 사람은 11일간 일하고 3,600달러의 수입을 보았다

1880년대중반 영국인 B.T.Barow-Mastick는 계곡 상류에 작은 댐을 세우고 30인치 짜리 파이프를 2 마일 가량 설치한 후 수력으로 사금을 채취했으나 얼마 후 홍수로 시설이 모두 파괴되기도 했다. 아무튼 하사얌파 일대에 황금열풍을 일으켰던 워커는 1867년 시력을 잃고 캘리포니아 월넛 클릭에 있는 조카의 ‘Manzanita 목장’에서 지내다 1876년 10월 27일 파란만장한 모험과 도전의 장엄한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캘리포니아의 산 호아퀸 강과 새크라멘토 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참나무가 가득 들어선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1달러 은화주  중단하자  불황맞은 아리조나

남북 전쟁 당시 은의 가치는  윗돈을 주고 거래될 만큼  시세가 좋았다. 연방정부는 은 1 아운스를 1달러 29 센트에 구매했다. 금 1 아운스 가격은 은의 값보다 16배 높은 20달러 64센트였다. 그러나 연방정부가 1873년부터 5년간 1달러 짜리 은화를 주조하지 않자 미국의 동부와 광산촌 서부는 다시 불화가 시작되었다. 은광업자들이 애써 캐낸 은 값이 폭락하고 판매처를 잃자 서부의 광산업자 특히 아리조나는 극심한 경제적 불황에 휩싸였다. 서부가 경제적 혼란에 처하자 동부의 연방정부는 1878년 은을 다시 구매하고 1달러짜리 은화를 주조했다. 특히 1890년 Sherman Silver Act 가 의회를 통과하여 정부의 은 구매량을 배로 늘리자 아리조나는 다시 숨통을 트고 불황에서 헤어났다. 그러나 동부에 뿌리를 둔 연방정부의 은화주조 금지등 일련의 조치는 아리조나 를 비롯한 서부인들에게 심한 배신감을 심어주고 이같은 불신은 이후 아리조나의 주 승격에도 미묘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1873년 거대한 은광이 발견되면서 은광 근방에 Superior 타운이 생겼다. 군인들이 Stonemen Grade에서 캠프 피날까지 이어지는 새 도로  공사에 동원되었다. 군인 Sullivan도 작업하는 군인 들 틈에서 열심히 땅을 고르고 있었다. 순간 삽날에 윤이 나는 까만 바위돌이 실려나왔다. 흙과 함께 멀리 던지려던 설리번은 웬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까만 돌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돌에 묻은 지저분한 흙을 털어내자 의외로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져왔다. 이후 설리반은 ‘의문의 까만 돌’을 프로렌스에 사는 친구 Charles Mason에게 보여주고 공사장 어디 쯤에서 주운 이 돌의 정체는 무엇일까하고 의문을 표시한 후 부대로 복귀했다.


공사판에서 주운 ‘까만 돌의 정체’는 무엇이냐

Charles Mason은 까만 돌을 본 순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Mason은 이 사실을 같은 농사꾼 친구인 Isaac Copeland, Bill Long, 그리고 Ben Reagan에게 말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4명의 농사꾼들은 나귀에 양식과 물을 싣고 장총으로 무장한 채 까만 돌을 찾으러 길을 나섰다. 이들은 설리반이 언급한 지역을 샅샅히 뒤졌으나 메이슨이 말한 것과 같은 까만 돌은 눈에 뛰지않았다. 어설푼 모습의 농사꾼들을 본 아파치들이 공격해왔다. 4명의 농사꾼과 아파치들간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으나 결사적으로 대항하는 농사꾼을 피해 아파치들은 퇴각했다. 그러나 총소리에 놀란 나귀 한 마리가 고삐를 끊고 달아나 버렸다. 4 사람은 나귀를 찾아 주위를 돌아다니다 산자락 부근에 듬성듬성 박힌  까만 돌을 밟고 서있는 나귀를 발견했다.

메이슨과 그의 친구들은 우선 프로렌스로 가져가기 쉬운 까만 돌을 주웠다. 무게가 나가는 돌은 멀리 던져버렸다. 실제 이들은 질이 우수한 까만 돌은 버리고 운반이 용이한 저급의 까만돌을 샘플로 가져온 것을 나중에 알았다. 메이슨 일행은 정체불명의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까만 돌의 정체를 밝히기로 하고 샌 프란시스코의 광물연구소로 샘플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운반비와 실험비와 기타 부대비용을 포함하여 총경비가  12,000달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가나한 농사꾼 4 사람은 이일은 ‘자신들의 능력 밖’ 이라고 생각하고 마을에 사는 사업가를 찾아가 밥값이나 주고 샘플을 사달라고 간청했다. 이 사업가는 일언지하에 딱한 4명의 농사꾼 청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러나 마을에는 노다지꾼 경험이 있는 몇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메이슨 일행이 가져온 까만 돌을  본  이들은 메이슨 일행의 거동을 유심히 살폈다. 메이슨 일행이 마을 사업가에게 푼돈을 요구했다 무참히 거절당하자 이들은 메이슨 일행에게 아주 꿈같은 제안을 했다. 까만 돌을 캐고 판매하는 모든 경비를 자신들이 부담하고 이익은 반씩 나누자고 했다. 1875년 Silver King Mine 회사가 설립되고 첫 번째 캐낸 ‘까만 돌’ 은광석을 판매하자 이익금이 무려 50,000 달러에 달했다. 

이들 노다지꾼 사업가 중 유마에서 온 James Barney는 메이슨 과 그의  농사꾼 지분을 모두 사겠다고 제안했다. Barney는 Copeland의 지분을 30,000 달러에 샀다. 다음 흥정대상인 Long은 10만 달러를 요구하자 거래는 깨졌다.  Barney는 대신 1877년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광산을 운영했다. 1888년까지 실버 킹 광산에서는 약 6백만 달러의 은을 캐냈다. Superior의 실버 킹 광산 근방에서는 연달아 은광이 터졌다. 특히 Glole에서는 은과 함께 구리광산까지 터져 옛 광산촌 Globe는 오늘까지 건재하다. 그러나 여타 광산촌은 짧은 번영을 누리다 곧 탐욕스런 인간의 기억에서 영 사라져 버림받은 여인같은 유령촌으로 전락했다.

Globe는 1873년 Anderson 형제들이 은광석을 캐면서 생겨난 도시이다. 은광은 오늘날 Radium이라 불리우는 Pinal Creek에서 시작되었다. Globe라는 이름은 한 광부가 지름이 9 인치나 되고 모양이 꼭 공이나 지구 모습을 한 광석을 캐면서 생겨났다. 이 은광석은 순도는 99%로 시가 12,000 달러나 호가 되었다. 그 이후 광부들은 이 마을을 Globe 라고 불렀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광부들이 은광을 발견했다. 그러자 한 광부가 이 “광산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하지?”라고 다른 광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광부는 “이 사람아. 이 광산은 지구만큼 넓어.”라고 소리치면서 Globe라는 도시의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Globe는 1878년 5월2일 측량기사 A.J.Pendleton 에 의해 설계되어 정식으로 Globe라는 시의 이름을 얻었다.

옛 스페인과 멕시칸들은 Pinal 산맥을 중심으로 매장된 막대한 양의 광석을 캐려했으나 아파치들의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1820년대부터 이지역을 지나는 산사나이들도 몇 차례 시도했으나 아무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후 1864년 프레스캇에서 목장과 광산을 운영하던 King S. Woolsey가 대규모 탐험대를 조직하고 이 지역을 탐험했으나 그역시 실패했다. 

1861년 Corydon E. Cooley는 군의관 Thorn으로부터 아리조나 중부에 있는 테가 넓은 멕시칸 모자처럼 생긴 외딴 산에는 금이 지천으로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Thorn은 아파치족에게 생포되었다가 중상을 입은 아파치를 치료해 주고 풀려났다. 그가 살려준 아파치는 생명의 은인인 Thorn을 금이 지천으로 깔린 ‘뚝 떨어진 외딴 산'(butte)으로 데리고 갔다. Thorn은 이곳에서 금을 주웠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듣고 Cooley는 이 지역을 한 번 찾아보아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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