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칼럼] 봄이 오는 소리

매일의 둔한 듯한 삶에서 잠간 사이에 변해지는 시간들을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인생이 이렇게 소리도 없이 흘러 간 것을 돌이켜 본다면 수십년의 세월도 삶이라는 이름으로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하겠지요. 예리한 판단으로 사라진 인생을 논한다고 해서 이미 흘러 간 그 세월이 돌아올리도 없고 그저 이 길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었구나 생각 하면서 묵묵한 걸음걸이로 깊이 있는 사색을 누리며 사는 것이 차라리 보람된 길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피닉스에서는 봄이 오는 소리도 못 듣고 산과 들에 봄기운이 솟아 오르는 것도 모른채 지나치기 쉽습니다. 추운 겨울이 없었으니 겨울이 가는지 봄이 오는지 무감각하게 흘려 보내는 것이 싫어서 꽃망울 피는 삼월, 파릇파릇 새잎이 돋아나는 봄을 산뜻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지난 3월6일이 경칩(驚蟄)이었습니다. 이때면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리고 추위에 움크리고 있던 개구리도 나와서 활동을 한다는 경칩. 일년에 한번씩 오는 봄이지만 그냥 흘려 보내고 싶지않아 홀가분을 떠는 기분입니다.
어린 소녀시절에 봄이 와도 산과 들로 놀러 나가는 것을 할 줄 모르던 나에게 늘 나가자고 하던 안자라는 동네 친구가 있었습니다. 안자는 혼자서라도 밭으로 언덕으로 훨훨 다니다가 집에 돌아오면 나에게 먼저 들려 다녀온 이야기를 자랑 삼아 그렇게 재미있게 말을 많이 합니다. 어느 날, 안자와 함께 따라 나갔다 온 그 밭둑길들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눈앞에 선하게 닥아 올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 뛰다가 잔디밭에 펄쩍 누워 저 높은 맑은 하늘을 바라 보면서 우리는 언제나 빨리 클까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엄마한테 꾸중 들은 얘기며 동생하고 싸운 얘기며 미운 친구 얘기까지 어린 소녀들의 얘기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다 목청을 높여서 “고향의 봄” 이라는 노래도 부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한참 노래를 부르다가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나물을 캐자고 합니다. 그때의 안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들판에 나가 나물 캐고 뛰어 노는 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었을 것 같아 안자에게 고맙게 생각 합니다. 공부하는 것은 나에게 와서 배워 가지만 뛰어 놀고 나물캐는 것은 나에게 가르쳐 주던 착하고 고마운 친구. 봄이 오면 그 넓고 시원한 밭둑길이 그리워집니다.
우리는 둘이 다 딱히 시골로 찾아갈 고향이 없으니 그 때의 놀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눈부시게 맑은 봄날 그 시절들이 마음 속에 담고 사는 추억 속의 고향. 꽃을 시샘하는 쌉싸름한 봄 바람이 살랑거리며 뺨을 차갑게는 했어도 그 시절의 추억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들녘사방에 피어 있던 야생화들이며 밭둑 가장자리에 소리없이 피어있던 자그마한 이름모를 꽃들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남편의 고향이 통영이라는 어느 아름답게 사는 부부와의 대화가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나폴리 라고 부른다는 통영이 늘 가고 싶어서 다음에 고국을 방문할 때면 꼭 찾아 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는 남해 바다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얕으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가 생각만 해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뒷산에 올라가면 바위틈 사이로 피어나는 조그마한 꽃들을 볼 수 있는데 일반 사람들은 그 꽃을 보지 못하고 관심없이 그냥 지나친 다고 합니다. 바위틈을 헤집고 나오는 꽃을 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평화롭고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귀한 꽃을 꼭 보고 싶습니다.
초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유난스럽게 커다란 달이 떠 올라 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달력을 보니 벌써 보름달이 떠 오른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갑니다. 밤이되니 유난히 밝은 달빛이 아까워서 남편과 함께 뒷마당에 나가 옛이야기에 빠졌습니다. 박목월 시인의 시 한줄이 떠 오릅니다.
산은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03. 15.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