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그 산에는 아직도 황금이 있을까(10)- 아파치 포로 8년만에 풀려나다

Doc Thorne은 이후 근 8년간 아파치들의 포로가 되어 아파치 촌락에서 살았다. 아파치들은 자신들의 귀중한 포로가 달아나지 못하게 12살 정도의 똘똘하고 다부진 소년을 시동겸 감시자로 Doc곁에 부쳐두었다. 그리고 Doc이 다리를 치료해 준 소년도 그의 곁을 맴돌았다. 그는 탈출할 기미만 보이지 않으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나다닐수가 있었다. Doc 은 무료한 시간을 주로 사냥이나 수렵으로 보냈다.
어느날 Doc은 이제 18세의 건장한 전사로 자란 시동과 함께 처음 가보는 낯선 강가로 물고기를 잡으로 나갔다. 그곳 강바닥에는 노란 금덩이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놀란 Doc은 애써 무관심한 표정으로 노란 돌을 주워 멀리 던져버린 후 시동에게는 쓸모가 없는 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 다음에 다시 찾아 올 수 있게 지형을 유심히 살폈다.
어느날 Doc을 포로로 잡은 아파치와 근처 나바호 족은 화평을 맺고 서로 공격을 하지않기로 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두 부족은 대규모 축제를 아파치 촌락에서 가졌다. 이때 나바호 족은 아파치들의 포로가 된 나바호 여인의 몸값으로 양 800마리를 아파치들에게 바쳤다. 밀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마시고 취한 두 부족 전사들 간에는 싸움이 벌어졌다. 아파치들을 제압한 나바호 족들은 아파치에게 바친 양 800 마리와 포로가 되었던 나바호 여인들을 되찾은 다음 자신들의 촌락으로 돌아갔다. 두 부족이 피가 터지게 싸울 때 Doc은 나바호 족들은 아마도 자신을 ‘포로에서 풀어주겠지’하는 생각으로 나바호 부족 틈에 끼어들었다. Doc의 생각대로 나바호족은 그를 풀어주었다. 그가 포로가 된 지 근 8년, 그는 이미 33세가 되었다. Doc은 그의 가족이 있는 뉴 멕시코의 Wingate 요새 근방 Cuvero로 갔다.
황금찾아 전 재산을 탕진
이후 뉴 멕시코의 Lemitar에 정착한 Doc은 작은 진료소를 내고 환자를 돌보면서 생활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그가 보고 온 아파치 촌락 부근 강바닥에 지천으로 깔려있던 금덩이를 주워오는 것이었다. 그가 돌아온지 3년만인 1862년 Doc은 그간 차분히 준비한 제 1차 탐험대를 이끌고 아리조나의 솔트 강변으로 향했다. 그의 동생도 가진 전재산을 탐험대에 투자하고 동행했다. 계절이 겨울이었던지 Doc은 모골론 산에서 눈에 반사된 강한 햇살에 거의 실명할 뻔만하고 그가 기억했던 황금이 깔려있던 강바닥을 찾지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갔다. 몇년 후 Doc은 제2차 탐험대를 조직하고 다시 탐험에 나섰으나 이번에도 허사였다. 당시 뉴 멕시코를 비롯한 아리조나 일대에는 Doc의 황금 탐험은 큰 화제였다. 그가 실패했음에도 그를 따라 Corydon Cooley, Henry Dodd 그리고 Albert Banta 등이 황금 찾기에 나섰으나 모두 실패했다.
전 재산을 황금찾기에 탕진한 Doc은 이후 레미타르의 진료소를 지키며 조용히 생활했다. 1872년 8월31일 그는 46세의 늦은 나이에 Paula Gonzales와 결혼했다. Doc의 군의관이나 군부대와 촉탁의에 대한 기록은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그러나 1866년 4월26일 캘리포니아 민병대의 Thomas P.Chapman 대위가 데려온 3명의 병사를 치료하고 96 달러 (오늘 날 1,000달러가치)를 청구한 것으로 보아 그는 군의 촉탁의사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일생을 슈퍼스티션 산의 황금찾기에 보낸 James Bark는 1890년대 중반 여행비 일체를 부담하겠다는 조건으로 Doc을 아리조나에 초청했다. 그러나 Doc은 ‘이제 여행하기에는 너무 나이도 많다’고 정중히 사양하고 자신은 ‘규모가 작은 약국과 포스트 어피스를 경영하며 근근히 살아간다’고 회신했다. 그는 또한 인생의 황금기를 황금찾기라는 미몽에 빠져 헛되이 보내고 자신은 물론 동생과 친지들의 전재산을 날리고 빚쟁이로 만든데 대한 회한의 세월을 살고 있다고 한탄했다. Doc은 1896년 11월 사망하여 레미타르의 공원묘지에 매장되었다. 그의 묘소 앞에는 나무 십자가가 초라하게 서 있었으나 세월에 퇴색한 나무십자가도 언젠가 쓸어져 바람결에 딩굴다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아파치의 포로가 되어 생활할 때 슈퍼스티션 산 근방 솔트 강에서 본 황금의 실체를 죽을 때까지 잊지못했다.
두 병사와 잃어버린 슈퍼스티션 산의 황금이야기
맥 다우웰 요새에서 막 제대한 캐나디안 프렌치 계 병사 두 사람은 이곳 대서부보다 임금이 높은 동부로 가는 대신 아직도 일확천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아리조나에 남기로했다. 두 사람은 곧장 실버 킹 광산의 감독 Aaron Mason을 면담하고 일자리를 청했다. 메이슨은 두사람이 광산 일에는 문외한임을 알고 두사람을 잡석을 고르는 잡역부로 채용했다.
어느날 풋나기 두 병사는 슈퍼스티션 근방을 돌아다니다 이상한 돌을 주웠다. 두사람은 이돌을 들고 광산으로 돌아와 메이슨 감독에게 ‘도대체 이돌의 정체는 무었이냐’ 하고 물었다. 메이슨은 “이 돌은 황금석이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두 병사는 ‘놀리지 마시요.’ 하고 대답하자 메이슨은 ‘동네 가계로 가면 아운스당 20 달러를 줄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길을 찾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황금덩이
흥분한 두 사람은 곧바로 ‘이상한 돌’을 들고 동네 가계로 달려갔다. 상당한 돈을 마련한 두 병사(이 병사들의 이름은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는다)는 본격적으로 노다지를 캐기로 작심하고 나귀 두 마리와 야영에 필요한 장비를 84 달러에 산 후 슈퍼스티션 광산으로 향했다. 풋나기 노다지꾼 두 사람은 도시를 빠져나가기 전 잠시 일했던 실버 킹 광산에 들렀다. 이들은 아직 현금으로 바꾸지 않은 황금덩어리를 저울에 달고 기록한 종이와 그간 일하고 받은 임금을 함께 단지에 담아 메이슨에게 맡긴 후 나귀를 몰고 산으로 향했다. 야영하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주위에는 물도 넉넉하고 두 사람은 완전 무장한 채 희미하게 난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은 남쪽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솔길은 갑자기 북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슈퍼스티션 산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가기로하고 산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오솔길은 두 사람을 남쪽 대신 험한 바위산으로 안내했다. 가도 가도 길은 점점 더 가파르고 험했다. 한동안 산을 오르자 폭포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더 전진하기를 포기하고 폭포를 비껴나가 킹광산으로 돌아가려고했다. 바위산을 기어오르고 작은 동굴을 지나자 황금덩이가 널려있는 깊은 협곡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가져갈 수있을 만큼 황금을 챙긴 후 협곡을 빠져나와 간신히 실버 킹 광산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메이슨에게 약 10일간의 일정으로 슈퍼스티션 산에 가서 황금을 더 주워오겠다고 말하고 길을 떠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2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후 오늘의 Quarter Circle -U 목장 근처에서 등에 총을 맞고 발가벗겨진 채 사지가 절단된 백인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 주위에는 금을 가지러 산에 올랐다 돌아오지 않는 병사 중 한 사람의 모자가 딩굴고 있었다. 살해된 시체는 아파치의 살인 풍습과 비슷했으나 주위에는 말발굽이 어지럽게 나있어 모두들 백인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브러푸 스프링 근방에서는 등에 총을 맞고 죽은 채 발가벗겨지고 사지가 절단된 백인 시체 한구가 또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굴려넣은 후 매장했다. 두 병사를 살해한 범인은 이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Aaron Mason 가문 후손들은 메이슨이 두 사람에게 슈퍼스티션 산의 광산을 찾으라고 시켰으나 한 사람은 광산을 발견하고 샌 프란시스코로 달아났다가 메이슨에게 잡히기 전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