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칼럼] 나의 보물 영문 타자기

결혼을 하면서 달라지는 여자의 일생, 누가 뭐라고 하든 최종결정은 바로 내가 택한 인생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관문이다. 어떤 난관에 부딪히건,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든, 나의 결정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세상이다.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다가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너무도 다른, 상상도 못하던 인생살이가 시작된다는 것을 그 누구인들 미리 알고 결혼을 했을까.
친한 친구들 다섯명은 아무도 먼저 결혼을 한 친구가 없었다. 모두들 너무 개성이 강해서일까? 친구들은 연애문제 또는 결혼문제 등 무슨 결정을 할 때면 항상 나의 의견을 먼저 요청하곤 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한마디 했다. “너희들 결혼 다 시키고 나서 나는 제일 마지막에 결혼할거다. 적어도 30살 이전에는 결혼 안 한다. 그 나이까지는 할 일들이 좀 많다” 한마디를 던졌다. 친구들이 모두 입을 모았다. ‘어디 두고 보자. 저렇게 큰 소리는 쳐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보라지?!’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한 나는 내가 꿈꾸는 일의 기반을 다듬어 놓고 결혼 하고 싶었다. 꿈꾸던 일이라는 것이 문학계에 훌륭한 선생님들을 소개 받아 놓았으니 한참 더 배우고 싶었다. 이미 자작시(自作詩)를 들고 쟁쟁한 선생님들 앞에서 낭독까지 했으니 나의 꿈은 훨훨 나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란 것이 뭐길래 2년 동안 사랑의 속삭임에 빠져서 친구들 말대로 나는 제일 먼저 결혼을 하고야 말았다.
시어머님 모시고 막내 시누이도 함께 사는 생활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새장 속에 갇혀 사는 느낌이었다. 마음대로 나가 다니던 생활도 끝, 친구들과 아무때나 만나 희희낙낙 하던 생활도 끝, 친정 가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니 그동안 누려왔던 나의 사생활은 그야말로 끝, 끝, 끝이었다.
이제 갓 결혼한 새댁이 지금까지의 ‘나’를 포기하고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야 하는 정체성에 휘말리고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 (詩)는 이런 나의 마음을 한껏 위로해 주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울려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중략-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중략-
무엇인가를 계속 해야겠다고 찾던 중 창간된지 얼마 안된 주부생활이라는 잡지사에서 지역별 기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는 겁도 없이 이력서와 함께 보내라는 나의 글을 첨부해서 보냈다. 당선되었다는 편지를 받고는 너무도 기뻐했다. 내 생활에 어떤 활력소가 불어 오는 것 같은 신선함이라고 할까. 원고지에 글을 채워 넣으면서 기사를 보내는 날이 그렇게 기쁜 날이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은 퇴근 길에 영문 타자기를 사서 들고 왔다. 한옥집이었으니 가운데 마루방 한켠에 놓아 주고는 심심 할 때 배워보면 어떠냐고 한다. 미국에 갈 준비도 하고 있었으니 이참에 영문 타자도 배워 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뚜덕뚜덕 두들기면서 혼자 배웠지만 어느덧 제법 속도를 낼 정도로 발전해 갔다. 신혼주부가 새내기 기자생활에 영문타자까지 배우게되는 행운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렇게 배워 두었던 영문타자 솜씨가 미국에 와서 요긴하게 쓸 수 있었으니 “나”를 찾고 싶어 외로움과 싸웠던 그 시절이 더욱더 고마워졌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상도동 집의 마루방에서 처음 배웠던 영문타자기는 그렇게 해서 나의 귀한 보물이 되었다. 시카고 다운타운의 최고의 경제구역이라고 일컬어지는 직장에서 일 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었고, 국제적인 비지니스의 감각을 배우게 해 준 첫 직장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인간은 길을 가는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살아 남기위해서 계속 걸어야 함을 깨달았다. 인생은 계속 걸어야 행복하고, 더 걷지 못할 때에 절망을 느끼게 하는 것을 경험해 보았다.
누군가는 운명은 앞에서 날아 오는 돌이라고 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고 잡아서 되던질 수도 있다는 말이 가슴에 새겨지는 순간이다.
03. 24.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