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김 원장 칼럼] 우리가 우리를 아껴야

오래전, 한국인이 숫자적으로 적었을 때에는 한인을 보면 무조건 반가워 하고 서로 내 일처럼 돕던 때도 있었다. 1975년도 이후 한인 이민 숫자가 급증하면서 한인 사회에 온갖 비리와 불신, 헐뜯는 일까지 같은 민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험난하게 지내는 것을 보았다.
어쩌다가 우리는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믿을 수 없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얕보는 생각이 우리를 저질 민족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그 어느 나라의 문화에 비교해도 자랑스러운 문화를 가진 우수한 민족이다. 문화는 곧 그 나라를 알리는데 가장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국에 우리의 우수성을 다 심어 놓지도 못한 채 필요없는 일로 서로 다투고 ‘나’만 잘 살겠다고 남을 헐뜯고 상처주는 일도 서슴치않고 성공하겠다는 욕심에 만 열심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지난 봄, 중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일본계의 친구가 자기 학교에서 다민족 의상을 소개하는 패션쇼를 개최한다면서 한복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나중에 친구가 하는 말이 여러 학생들이 서로 일본의 기모노를 입는 모델을 하겠다고 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미워하고 비난만 할 일이 아니고 그들이 어떻게 오늘과 같은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지를 배워야 한다. 6.25 전쟁 후에 몰려 온 극도의 가난으로 세계의 원조를 받고 있을 때, 일본은 한 손에 스시를, 다른 한 손에는 문화를 들고 세계를 향해 일본을 심어 주었다는 말이 오늘의 선진국을 만들게 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서로를 헐뜯고 해치는 일은 쉽게 하면서, 아끼고 존경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를 못한 것이 우리의 민족성인가 생각해 보는 날들이 많아졌다.
국민은 물론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해외에 나와 있는 한인들까지 우리 모두 ‘나 하나부터가 잘못이었구나’ 하고 인정할 때 우리민족도 세계 속에 제대로 서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그 옛날 무기도 없던 시절, 남자들은 맨몸으로 농사에 쓰던 낫자루를 들고, 부녀자들은 치맛자락 속에 돌멩이 몇개로 희생을 치르면서 그 많은 침략을 견디어온 선조님들 때문에 우리의 조국을 지키고 있으니 참으로 자랑스러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
이제는 무엇인가 달라지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서로를 아낄줄 아는, 근본을 잃지않고, 우리의 정신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미국 땅에 심어주어야 하는 어려움을 함께 이겨 나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하고 하찮은 일로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신경전을 하고 나면 외로움이 몰아친다. 그리고는 거기에 빠진다. 외로움에 빠지면 병이 생긴다.
흔히들 말하는 우울증이라 한다.
최근에 국내에서 끊임없이 일어난 사건들은 국민들을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난 세월호 참사 때문에 온 국민이 마치 우울증에 걸린 듯 침체 속에 빠졌었다.
총리 후보로 정부에서 지명한 문창극 후보로 인해서 나라가 시끄러웠다. 정몽준 전 시장후보 아들의 “미개한 국민”이라는 말에 온 국민들은 또 흥분했다. 확실히 우리는 뜨거운 냄비 근성을 가진 민족인가 보다. 제대로 다 읽지도,동영상을 다 보지도 않은 채 잘못된 여론에 쉽게 흔들리면서 한 지성인의 인격을 갈기갈기 짓밟고 헐뜯어 놓았다. 조그마한 두뇌 속에 무엇을 잔뜩 채우면서 살아 왔을까? 그런데 왜 가슴은 점점 비어간다고 할까? 소용없는 것들로 머릿 속을 채워서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싸우고 싶어하는 유전자 탓인가?
최근에 입국한 월드컵 축구단 선수들에게 어느 과격한 팬이 ‘엿 먹어라’하면서 사탕엿을
뿌렸다고 한다. 비록 1승도 못하고 돌아 왔지만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 돌아 온 젊은 선수들에게 ‘다음에 더 잘하자’하고 안아 줄 수는 없었을까? 국민들의 열망을 안고 싸운 그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에 시달렸을까를 생각해 볼 수는 없었나? 이기고 지는 일에만 열을 올리고 용기를 주고 칭찬을 해 주고, 아껴주는 일에는 너무 야박하다.
삶이 아무리 고달픈 것이라고는 하지만 항상 메마름 속에서 남탓만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를 아껴 주면서 어려움을 딛고 선진국민으로 커 나가느냐, 영원히 하류 국민으로 남느냐는 바로 ‘나’에게 달려 있다.
06. 30.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